할례는 격리된 행동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를 개인에게 부여한다(3절).
율법을 지키는 것은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뜻이고,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지 않음을 의미한다(2:17-18을 보라).
5:6은 새로운 논점을 도입하는 것 같다. 바울은 청중의 기대대로 할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을 맺는 대신, 무할례든 할례든 중요하지 않다는 한결 급진적인 주장을 제시한다. 여기서 바울은 3:28의 세례 문구를 재현한다(6:15도 보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자리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할례를 받든 받지 않든 그 자체는 조금도 유익을 주지 못한다.
할례는 격리된 행동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를 개인에게 부여한다(3절).
율법을 지키는 것은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뜻이고,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지 않음을 의미한다(2:17-18을 보라).
5:6은 새로운 논점을 도입하는 것 같다. 바울은 청중의 기대대로 할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을 맺는 대신, 무할례든 할례든 중요하지 않다는 한결 급진적인 주장을 제시한다. 여기서 바울은 3:28의 세례 문구를 재현한다(6:15도 보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자리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할례를 받든 받지 않든 그 자체는 조금도 유익을 주지 못한다.
"육체"("self-indulgence", NRSV)에 대한 경고에서 명확히 드러나듯이, 율법에서 벗어난 자유가 윤리적 무질서를 의미하지 않는다.
바울 서신에서 자유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는 항상 특정 존재로부터 자유롭지만 동시에 특정 존재에게 예속되어 있다(예. 롬 6:15-23을 보라).
"서로 종노릇하라"는 명령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한계를 극적으로 역설한다. 하지만 기독교 공동체 안의 종살이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상호 관계이기 때문에, 이 종살이는 또한 근본적으로 인습을 거부한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라는 인용문은 레위기 19:18에서 유래한다. 복음서 전승에서 예수님은 이 계명이 하나님 사랑 바로 다음에 온다고 인정하신다(마 22:39; 막 12:31; 눅 10:27). 야고보서는 이 계명을 "최고의 법"이라고 부르고(2:8), 바울은 로마서 13:9에서 이 계명을 다시 인용한다.
바울은 5:16-26에서 성령의 삶과 육체의 삶 사이의 이분법을 전개한다. 바울이 인간의 몸 자체를 비하하는 유사 영지주의 논증에 가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가 ‘육체’라는 용어를 여러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이 본문에 포함된 구체적인 악덕과 미덕은 수도 많고 다양하지만, 공동체 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된다.
바울이 이 목록을 마무리하는 방식에서도 이 목록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악덕 목록은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에 들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에서 절정에 이른다.
범죄한 이들을 회복하는 책임이 공동체 전체에 있지만(1a절), 각 개인은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1b절)
6:14-17에서 바울은 논쟁에서 돌이켜 이제는 자신의 복음 이해를 강력하게 재진술한다. 그는 시작하면서 자신의 견해와 교사들의 견해를 대조한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육체, 아마 그들의 할례를 자랑하기를 바라지만, 바울은 십자가만을 자랑할 것이다
6:14-15은 갈라디아서 전체에서 증언된 확신을 다시 한번 간추린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인과 공동체, 사실상 세상 전체에 단 하나의 배타적 주장을 제시한다는 확신이다.
바울은 마지막 호소에서 자신의 복음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기 몸의 "흔적"을 얘기한다. 이 흔적은 바울이 수고하며 견뎠던 박해를 상기시킨다(참고. 고후 11:23-25). 바울은 이 흔적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그가 종이 된 것을 나타내는 낙인을 갖고 있다고 선언한다(예. 롬 1:1; 갈 1:10; 빌 1:1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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