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를 뗀 이후부터 나는 죽 경쟁하는 인간으로 살았고, 나를 부추기는 아드레날린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미 잘 연마된 나의 경쟁적 본능이 내 주변의 경쟁적이고 소비주의적인 교회 문화 때문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닫고 있다고 했다.

경쟁적인 목사에서 명상하는 목사에 가까운 어떤 존재로 내가 발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고 나는 물었다. 사람들과 특별한 안건 없이도 함께 있을 수 있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입하지 않으면서 직접적인 인도는 성령이 하시게 하고, 나는 인내하며 부드럽게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성숙한 삶으로 안내하는 목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기도와 의식이 기본적인 틀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내버려두는 목회적 관계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자유를, 그와의 관계를 통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고 있었다.

장로교는 기도와 예배, 성인과 예술가, 나라와 대륙 사이의 거대한 연속성 안에 나를 이식해 주었다

목사의 자리는 잘 배우면서 훈련받아야 하고, 고통을 겪는 남자와 여자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자세히 알아야 하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직장과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도 이해해야 하는 자리였다.

오순절파와 장로교는 둘 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선물이었다. 서로 긴장 관계에 있는 반대 극이 아니라 연속체를 이루는 양극이었다.

의도적인 안식일을 만들어서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더 깊이 이해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냥 하루 쉬는 것은 ‘사생아 안식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이제 막 지나온 창조의 주간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제 막 지나온 거룩한 주간에 주의를 기울였다. 언제나 우리가 놓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식일은 다시 기억하는 날, 우리가 어디에 있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날이 되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서 주신 선물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