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능력을 지닐 때 존재 이유가 있다. - P6

만약 사회학이 어떤 한 개인의 삶도 설명할 수 없다면, 혹은 그 연구대상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완벽하게 유리되어 있다면, 사회학은 학자라는 전문가 집단의 호사스러운 말잔치가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 P6

대학과 학자를 둘러싸고 있던 ‘특별보호명령‘이 해체되었을 때, 호사가들의 허망한 지식 견주기나 사회조사기법의 현란한 테크닉에 의해 살해당할 지경에 처한 사회학이라는 학문은 그 마지막 비상구를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있는 능력의 회복에서 찾을 수 있다. - P6

좋은 삶은 선물 받을 수도 없다. 좋은 삶은 삶의 주인의 오랜 습관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 P17

좋은 삶은 착한 삶과 동일하지않다. 착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바보‘는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 모독하지 않는 소박한 방어의 삶을 사는 것이지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 P17

좋은 삶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선한 의지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 P17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 P17

현실은 선한 의지만을 가진 사람을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그 사람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의 현실적 삶은 좋은 삶이라기보다, 빈한한 삶에 가깝다. - P17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교활해서는 안 되지만 영리할 필요는 있다. - P17

영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P17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우리는 좋은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을, 그리고 좋은 삶을 훼방 놓는 악한 의지의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공격술을 모두 터득할 수 있다. - P17

좋은 삶은 그래서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요구한다. - P18

좋은 삶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능숙히 사용해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 - P18

각자의 절실함이 공통감각共通感覺 sensus communis 속에서 서로 만나기 위해 우리는 자칫 왜곡되기 쉬운 기억이 아니라 세속의 리얼리티와 마주하는 다소 고통스러운 순간이 필요하다. - P20

좋은 삶을 기대하는 유토피아적 희망은 삶의 무시무시한 리얼리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먹고 자란다. - P20

듣기 좋은 말은 때로는 거짓이다. 몸에 좋은 약은 불가피하게 쓴 맛을 지닐 수도 있다. - P20

아름답게만 보이는 세상도 사실은 환영일 수 있다. 세상은 분명 아름답지만 언제나 세상이 아름답지는 않다. - P20

세상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추하고, 사람들은 선한 만큼이나 악하다. - P20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도 있지만, 짐승만도 못한 인간도 있는 법이다. - P20

이러한 세속의 양면성을 드러내는삶의 리얼리티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라는 환등상幻燈像의 등불을 끄게 만드는 힘의 근원 거창하게 말하면 유토피아적 희망, 소박하게 말하자면 좋은 삶에 대한 기대는 약간은 가슴 쓰라린 세상의 리얼리티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 P20

공통감각을 상실한 애절한 신세타령이 아니라 삶의 보편성에 의한 공명을 지향하는 사회학은 이럴 때 쓸모 있는 학문이다. - P20

비판이란 본래 투덜대지 않으면서도 세상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비판 고유의 능력은 세속이라는 리얼리티와의 용감한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 P21

상식에는 없는 올바름을 갖추고도, 양식은 상식과의 경쟁에서 대체 왜 늘 지고 마는 것일까? 이유는 상식과 양식의 말투 차이에 있다. 상식은 상냥하고 어루만져 주는 어투를 사용하지만, 양식은 공식적이고 엄격하고 훈계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 P31

상식이 나를 무조건 이해해 주는 연인 행세를 한다면, 양식은 냉정한 심사위원과도 같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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