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술은 자전적 내력을 세세하게 회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행위에 시종일관 초점을 맞춘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가진 회담을 전하는 1:18-24에서도 동일한 관점이 유지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결국 갔다고 인정하지만, 이런 양보마저 게바와 야고보 두 사도만 거명함으로써 그 의미가 축소된다.
바울의 사도직의 기원에 대한 회고적 진술은,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교회를 핍박했다는 언급과 함께 끝난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전에 박해자였고 이제는 사도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한 유대 지역 교회의 증언을 언급한다(1:23).
유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사실(24절)은 자신의 사도직이 인간적 출처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직접 온다는 바울의 주장을 확인하는 데 일조한다.
어떤 계산법이든 이 예루살렘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여행이 빈번했기 때문이거나 바울이 권위자들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고, 바울이 이미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사도적 임무를 예루살렘 권위자들이 확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행 자체가 계시의 결과로 이루어졌다(2:2).
바울은 예루살렘의 합법적 지도자들을 "거짓 형제들"과 구별하지만, 이 만남에 대한 그의 보고 방식은 그가 두 집단 모두와 독자적임을 강조한다. 그는 "거짓 형제들"에게 전혀 복종하지 않았지만, 그가 인정한 지도자들도 그의 복음 이해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대교 율법을 철저히 따르던 이들이 이방인들과의 식사를 곤란하게 여긴 이유는, 이방인과의 교제가 본질적으로 반대할 일이어서가 아니라, 차려진 음식이 음식법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등의 정확한 본질이 무엇이든, 바울이 판단하기에 이런 행동은 복음 자체에 대한 공격과 다름없었다. 게바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식탁 교제 곧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하는 식사가 계속되려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 음식법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바울은 이런 반대 때문에 예루살렘 지도자나 친밀한 동맹자들과 맞서는 상황에 처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저항한다. 그는 자신의 타협 거부를 갈라디아인들이 모방해야 할 모델로 은근히 제시한다.
2:7에서 바울이 "무할례자에게" 전한 복음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전한 복음을 구별한 것은 내용상의 구별이 아닌 청중의 구별이다.
바울의 사도직에 부여된 유일한 요구는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는 것인데(2:10), 이는 예루살렘의 궁핍한 신자들을 가리킨다(롬 15:26을 보라; 참고. 행 11:27-30; 요세푸스 『고대사』 20.51-53, 101).
이 요구와 바울이 이 요구를 열심히 수행했다는 보고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유대 전통은 공동체 안의 약자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기 때문에, 가난한 자에 대한 보살핌은 서로 친숙한 관계로 결속되어 있다는 인식을 보여 준다.
수사학적 측면에서, 이 회고 단락은 자신의 사도직이 인간 권위자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유래했다는 바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추가 증거를 제시한다.
바울은 자신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승인을 구했다고 인정할 때조차, 여전히 그들의 지위가 자기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주장하고(2:6), 그들이 자신의 사역을 전적으로 지지했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예루살렘 권위자들에게 복종하는 동시에 그들과 거리를 둔다.
바울은 율법과 그리스도를 상호 배타적 영역으로 이해한다.
율법과 그리스도가 칭의에 상호 보완적이라고 이해하는 교사들에게 맞서, 바울은 율법과 그리스도가 상반되고 그리스도에게만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고 단언한다.
전통에 대한 열심을 포함하여 바울이 이전에 소중하게 여긴 모든 것이 그리스도 때문에 죽었고(참고. 빌 3:2-11), 그의 새로운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동으로만 배타적으로 정의된다.
갈라디아서의 나머지 내용은, 바울이 이 급진적 가치 재평가를 순전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그 영향력이 개개인 신자를 넘어서는 복음 자체의 필수 요소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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