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를 읽으며, 나는 늘 고여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조금씩 흘러왔음을 깨닫는다. 언젠가 지금의 절망도 바다에 몸 풀 날 있겠지. 아무리 느려도 흐르기만 한다면.
다음번에 마음이 지옥이 되면 그땐 꺼내 보겠어. 작은 새장인지 커다란 울산 바위인지 꺼내 보면 알겠지. 어쩌면 이쑤시개보다 작을지도 몰라. 고 작은 게 쿡쿡 쑤시는 걸 못 참고서 난 죽는다고 울었는지도 몰라.
몸만 아픈 게 아니야. 삽질이란 게 참 이상해. 하다 보면 마음이 막 아파.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나,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근데 또 그래서 막 삽질을 하게 돼. 그러다 보면 산만 한 흙더미가 다 옮겨지고 커다란 구덩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지. 잠깐은 뿌듯해. 하지만 오래가진 않아. 왜 이 짓을 했는지 여전히 모르겠거든. 왜 사는지 모르겠는 것처럼 영 모르겠거든.
세상은 빛나는 졸업장 앞에 예의를 지키지만 나는 생의 어둠 속에서 만난 "작은 빛들"에게, 그 빛을 밝혀 준 이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어요.
내가 넘어지지 않고 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그들 덕분이니까요.
마음이 굳어 버린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 봐야 괜한 노여움이나 살 줄 알기에 다들 입을 닫는다. 몸이 굳는 것보다 그게 더 무섭다. 내 마음이 굳는 것, 굳은 내 귀가 두려워 사람들의 입이 굳는 것.
세상에서 제일 지키기 힘든 법, 그러나 안 지키면 너도 나도 다 죄수가 되고 마는法(법): 사랑법.
어디 시만 그런가. 잘하려고 기를 써도 안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아무 생각 없이 한 것이 뜻밖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 마치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보기 싫은 사람만 자꾸 마주치듯이. 그래서 괴롭지만 그래서 살맛이 나기도 하는 것처럼.
요즘은 맛난 것만 골라 먹든 고소한 생선 알을 통째로 집어 먹든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때는 안 하던 배앓이를 툭하면 하는지. 왜 식구들의 왕성한 식욕이 걱정스럽던 그때의 가난한 밥상이 이리도 그리운지.
그래, 앞으론 나도 눈치 보지 않겠어. 이렇게 써도 되나 저렇게 살아야 하나, 이리 힐금 저리 흘금 하지 않겠어. 살인, 강도, 강간, 사기, 탈세, 뇌물, 야합……. 뭐 이런 나쁜 짓만 아니라면 어때, 나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 보는 거야.
그런다고 누가 뭐라 하진 않겠지, 큰일이 나지도 않을 거고, 군소리를 좀 듣거나 지금보다 조금 더 외로워질지는 모르지만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겠지, 괜찮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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