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눕고 밥 지어 먹을 집 한 칸이 없어서, 사랑하는 연인은 결혼을 못하고 부모와 자식은 뿔뿔이 흩어진다.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울고 싶은 밤, 견우성 직녀성이 서로를 보며 빛난다. 견우와 직녀도 내 집 마련을 못했나 보다. 그래서 그리 슬피 울었나 보다.

그런 적 있어요.
언젠가 여름날, 쏟아지는 장대비를 우산으로 피하다가 우산 따위 소용없게 다 젖어 버린 날, 에라, 모르겠다, 몸을 맡긴 적 있어요.

어느 겨울날,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머리로 손으로 어깨로 받다가 그저 눈사람이 되어 버린 적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온몸을 적시는 눈비는 두 팔을 벌려 맞이했건만, 몰아치는 저 바람 앞에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네요. 뿌리 없이 흔들리는 보잘것없는 인생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바람이 불면 나도 모르게 온몸으로 버텼네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 번은 제대로 살아 보려고.

너를 모욕하는 세상을 벗어나 흰 바람벽 안으로 숨고 싶은 네 마음을 모르지 않아. 그러나 너를 모욕한 이들을 원망하기 전에 네가 세상을 모욕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렴. 스스로를 높이기 전에 네가 누군가를 너만큼 높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렴. 혹시 세상보다 먼저 네가 벽에 벽을 치지는 않았는지, 한 번만 의심해 보렴.

때론 정의를 위해서, 때론 사랑을 위해서, 때론 자존심을 지키려, 때론 오직 분에 못 이겨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아니요!"
내가 외치면 세상이 따라서 ‘아니요!’ 하고 합창해 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외로워질 줄이야……. 스스로가 처량해지며 다 소용없구나, 절망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떠오르는 얼굴 하나.
그것이 부모든 자식이든 애인이든 예수든 석가든 마르크스든, 절대 이성, 영원 회귀, 리비도, 유전자 기타 등등 무슨 상관이랴. 아직 내가 붙잡을 동아줄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도 내가 잡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너는 왜 자꾸만 내 동아줄이 썩었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냐?

저녁이면 들르는 참새방앗간, 집 앞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산다.
온종일 바람난 마음을 용케 붙잡은 내가 기특해서 한 잔, 아직도 늙지 않고 일어서는 마음이 대견해서 또 한 잔.
하루가 저문다.

사랑을 할 때 처음,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기뻤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치고 사랑만 한 것이 어디 있나요.

아쉽게도 그런 사랑을 한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이젠 다 끝났다고 슬퍼했는데, 아! 아직 나무가 될 날이 남았네요.

시간은 늘 야속한 줄만 알았는데 시간이 하는 일도 제법 근사하구나. 가는 시간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나는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나무를 키우고 나무에 새를 깃들인 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나는 모르는 누가 나 모르게 한 일이다.
그래서 다 고맙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울음이 목까지 차오른 날, 엄마는 또 산소로 달려가서 울었다. 엄마, 엄마, 나 어떡해! 묏등에 얼굴을 묻고 얼마나 통곡했을까. 문득 엄마는 깨달았다. 엄마는 없구나, 내가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날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구나. 그 뒤로 엄마는 혼자서 견뎠다.
엄마의 무정이, 삶을 뒤흔드는 바람에 맞선 유일한 몸짓 결가부좌였음을 오늘에야 알았다.

불가사의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 중인, 그러므로 언제든 다시 전쟁이 시작될 수 있는 한반도에 살면서도 돈 걱정, 교육 걱정, 취직 걱정에 건강 걱정까지 전쟁 걱정만 빼놓고 다 한다. 세계 분쟁 지도에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위험 지역인데도, 거기 사는 우리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아프리카를 불쌍히 여기며 평화롭다 자부한다.

전쟁을 끝낼 노력은 눈곱만큼도 안 하면서 전쟁이 일어날 리는 없다고 믿는 이 순진한 신앙!

부디 세상이 우리를 배반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천동 같은 화산"이 진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뒷북’은 치지 말아야 할 텐데.

우주학자 마틴 리스가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란다.
그러니까 막 따지고 들어가면, 나도 당신도 모두 별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단 얘기다.
그래서일까, 저녁 하늘에 반짝이는 총총한 별을 보면 그리운 애인인 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시 구절이 떠오르고, 평소에는 먼지만도 못하게 여겼던 나도 당신도 한없이 그리워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누구는 재미있다고 하고, 누구는 피곤하다고 하고, 누구는 소심하다고 하고, 누구는 자신만만하다고 하고, 누구는 젊다고 하고, 누구는 삭았다고 하고, 누구는 부럽다고 하고, 누구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모두 다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모르는 사람한테서 시인에게 문자가 왔대요.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낯선 이의 문자 앞에서 시인은 지난 시절을 떠올렸대요. 아무 데에도 의지할 수 없었던 시절을.

서점에 선 채로 시 한 편을 다 읽었어요. 잠시 움직일 수 없더군요. 가슴에 쥐가 나서 가만있었어요.
일 분쯤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면 당신도 끝까지 읽어 보세요. 아마 나처럼 당신도 가만히 있게 될 거예요. 가슴에 쥐가 나서 어쩔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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