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인간의 욕망을 종교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통해 발달했다
신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컸지만 그리스 사회가 발달하면서 인간 세계와 한층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종교를 자신들의 사상과 무관한 것으로 보았지만 도덕철학이 출현하면서 신의 영향력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금 부상했다.
추상적인 개념에 있어서 플라톤은 넓은 범주에서 생각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꼼꼼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플라톤의 사상은 세상에 대한 생각을 토대로 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한층 세속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자연 세계를 연구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정반대 방식으로 우리가 지식을 얻는 과정에 대한 이론을 성립했다. 그는 동물과 식물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관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출발한다고 결론지었다.
처음으로 논리학에 대해 공식적인 연구를 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전제, 소전제, 결론으로 구성되는 삼단논법을 발전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고난 실용적인 경향과 자연과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를 지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만큼 도덕철학에만 헌신하지 않았다. 주변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과정을 살피면서 그는 존재를 구성하는 본질에 의문을 가졌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자신의 이론을 정치철학으로 발전시키며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조직하는 법을 탐구했다.
플라톤의 공화국은 일종의 권위주의 도시국가로 이데아론의 미덕을 갖춰 검증을 받은 특별한 철학자 겸 왕이 나라를 통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한층 체계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가능한 정부 형태를 분석하고 ‘누가 통치하는가?’(한 개인인가 아니면 선별된 일부 혹은 다수인가?), ‘누구를 대변하는가?’(본인들 혹은 국가?)의 척도에 따라 분류했다.
그는 국가의 진정한 구성 형태를 군주정, 귀족정, 혼합정(혹은 입헌제)으로 식별했다
이들은 모두 공익을 위해 통치하지만 비정상적이 되면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으로 바뀐다.
선택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혼합정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 형태이며 변형된 양식 중에는 민주정이 제일 낫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덕으로서 윤리와 중용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해 꼭 필요한 자질을 알고자 노력했다
중용적 사고는 초기 그리스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고대 이카루스의 신화에서 보듯 ‘무엇이든 과도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중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다. 그는 덕의 범주를 극단적으로 ‘좋고’, ‘나쁘고’로 나눈 것이 아니라 중용이라고 불리는 최적화된 중간 범주를 두었다
아름다움은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정의하고자 애쓴 유일한 덕이 아니다. 그는 꽤 단순해 보이는 물음을 던졌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미학이 시작되었다. 덕으로서 보자면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는 개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을 인식하는 편이 더 수월하다.
회의론은 극단적인 형태의 상대주의이며 철학적 논쟁의 타당성을 가장 순수하게 부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론은 20세기 논리를 토대로 한 철학과 과학철학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학파의 창시자 에피쿠로스는 ‘훌륭한 삶’을 행복과 만족의 추구로 보았다. 그는 삶의 목표를 마음의 평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잡았다.
에피쿠로스주의는 인체를 포함해 모든 것들이 쪼개질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에피쿠로스주의는 후에 기독교와 이슬람 철학에 밀려났지만 그 원칙의 상당수가 현대 과학과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에서 다시 등장했다.
계몽주의가 도래하기 전까지 철학자들 대다수가 감각과 이성은 별개로 신체와 정신에 각기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세상에 대한 타고난 지식이 과거 존재의 기억이기에 영혼의 불멸을 입증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우리가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은 신체가 수명을 다하면서 사라지지만 사고를 지배하는 영혼은 신체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기에 부패할 수 없으므로 불멸이라 주장했다
불멸의 영혼에 대한 믿음은 대다수의 종교에서 핵심 사상을 이루며 동양철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철학의 마지막 학파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현한 스토아 학파로 키니코스 학파가 제안한 단순함의 덕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상에서 발전한 사상이다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 키티온의 제논〔엘레아의 제논과 혼동하지 말 것〕은 자연이 유일한 실체이며 우리는 그 일부이므로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활용해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파괴적인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에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던 로마인들은 스토아주의가 그들 문화의 윤리와 잘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의 사상가들이 받아들였다. 스토아는 로마제국의 보편적인 철학으로 성장했다.
위대한 동양철학자들은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들과 대략적으로 같은 시대에 존재했지만 도덕을 강조한 그들은 아테네 철학에 더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