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원전 1210년경 가나안에서, 그 자체로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문화적이며 어느 정도 정치적인 실체가 존재했으며, 그들은 바로 그 이름으로 이집트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 P305
2. 이 이스라엘은 그 당시 가나안의 다른 민족들 가운데 충분히 잘 건립되었고, 이집트의 지식 집단은 그들이 자신들의 지배권에 도전할 수도 있는 세력으로 인식하였다. - P305
3. 이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다른 국가들처럼 하나의 조직된 국가체제를 구성하지 않았고, 다소 느슨하게 묶인 사람들- 즉, 하나의 민족적 집단-로 구성되었다. - P307
4. 이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지배 아래에 있는 저지대에 위치하지 않았고, 보다 변경 지대인 멀리 떨어진 중앙 산지에 자리를 잡았다. - P307
정착 시기와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의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서 고고학의 가치를 부인하려는 자세는 반드시 거부되어야만 한다. - P322
이스라엘의 출현은 복잡한 과정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다른 민족 집단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 P322
그 지역의 정착민들은 그들의 기원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초기 단계에서는 그들 스스로가 하나의 이스라엘 국가에 소속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 P322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태동시켰던 핵심을 제공한 인구 집단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용어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 P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