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강조한, 마음 다잡는 공부를 삼십 년 넘게 했더라도 위기 앞에서는 여전히 겁을 먹고 헤매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사실, 그것이 이학규 발언의 핵심이다.

자신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실감한다

공부란 나의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민낯 그대로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단들이다.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나는 법입니다.

허균

허균은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이 나는 법이라고 썼다. 대장부뿐 아니라 공부하고 꿈꾸는 삶을 사는 누구나 그럴 것이다.

어려서 깨달아 기억을 잘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재주만 믿고 게으름을 부리다가 늙으면 세상에 그 이름도 들리지 않는다.

이서우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홍길주

책 내용을 전부 외웠는데도 그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전에 읽은 책의 정수를 잘도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 그럴까? 홍길주는 사람마다 성취가 다른 건 깨달음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훌륭한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똑같이 노력해도 덜 이루는 사람이 있고 더 이루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외면이 올바른 대처는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까지 가 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깨달음이 느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도 있겠다.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만부

"유치가치"有恥可恥,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뜻의 네 글자가 나를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한다.

"무치역가치"無恥亦可恥, 부끄러운 일이 없다면 그 또한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만부는 부끄러운 일이 있어도 부끄러워해야 하고, 부끄러운 일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자가 옳으면 후자가 옳지 않아야 하고, 후자가 옳으면 전자가 옳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내 보잘것없는 식견과 하찮은 지식으로 어찌 감히 책을 저술하는 축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다만 한두 가지씩이라도 기록하여 더 잊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나의 뜻이다.

이수광

나는 암기를 통해 효과를 보았지만 아이는 그런 적이 없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공부는 참 어렵다. 공부 방법을 아는 건 더 어렵다. 공부 방법을 남에게 설명하는 건 더 어렵다.

"아이가 잘 외우지 못하더라도 용서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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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06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주보다 부지런함보다 깨달음이 가장 높은 위치군요.
깨달음을 주는 책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