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질문을 던졌다. "물속의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네. 그 이유를 아는가?"
심상찮은 질문엔 묵묵부답이 올바른 응대이다. 이서구는 입을 다물었고 박지원은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보이는 게 다 물이니 그런 게지."
물은 곧 책이다. 책으로 가득한 방에서는 책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일 년이면 백 권의 책을 읽는다는 뜻이었다. 잠깐 우쭐했다가 이내 기분이 나빠지고 슬퍼졌다. 최근 십 년만 계산하면 천 권의 책을 읽은 셈인데, 그럼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생각은 진부했고 쓰는 글은 뭉툭하고 평범했다. 책을 읽었으나 제대로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없었다. 책상물림이라는 표현도 과했다. 나는 방 안에서 뒹굴뒹굴하며 책장만 넘기는 자에 불과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박지원의 말대로 방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겠다.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객관적인 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박지원은 방 바깥에서 방 안을 보았고, 이옥은 방 안에서 방 바깥을 보았다.
둘의 공통점, 두 사람 모두 책에 의존하지 않은 채 불멸의 글을 남겼다.
그러고 보면 방 안과 방 바깥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정신이 살아 있다면 눈과 몸의 위치 따위는, 그리고 눈과 몸을 보조하기 위한 수백, 수천 권의 책은 아예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
억지로 해석하기보다는 의문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
홍대용
우리? 그저 냄새나는 가죽 주머니 속에 든 문자가 남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지. 나무와 땅속에서 들리는 매미와 지렁이 울음소리가 시 외우고 책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겠나?
박지원
남보다 책을 많이 읽었거나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병폐가 있다. 은연중에 주위 사람을 무식자 취급하는 버릇이다
박지원은 나 같은 인간에게 주먹 한 방을 날린다. 그런 너는 도대체 뭐냐고 물으면서. 박지원은 말한다. ‘당신과 나,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냄새나는 가죽 주머니일 뿐이다. 문자가 조금 섞여 있긴 하지만 99퍼센트는 더러운 냄새로 가득 차 있지.’
밤은 낮의 나머지 시간이다. 비 오는 날은 맑은 날의,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 시간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일이 뜸하므로 공부에 힘을 쏟을 수 있다.
허균
백 리 길을 가려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하루 만에 도착했다. 수레와 말과 하인과 마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혼자서 헤매다가 여러 날이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다. 두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길을 간다면 누가 일찍 도착할까? 후자일 것이다. 이미 헤맸으므로 갈림길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익
이익의 글을 읽고서야 깨닫는다. 아마도 그건 불가능한 바람이었을 터. 똑바로 걷기만 했으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에 아예 도착하지도 못했을 터이다.
늘 반듯했던 그 사람은 시민들의 반듯하지 않은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길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자, 헤매어 보지 않은 자는 때론 정말 무섭다.
책의 종류에 관계없이 첫 권은 대개 더럽다. 둘째 권부터 마지막 권까지는 깔끔하다. 나는 선비들의 버티는 마음이 부족한 것을 느끼며 탄식한다.
이덕무
이덕무의 말은 지당하다. 선비들은 공부하는 책을 마땅히 끝까지 읽어야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필요하다면 천만 번이라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반듯하고 훌륭한 선비의 말에 슬쩍 딴지를 걸고 싶다. 읽다 그만두는 것도 공부의 한 방법이 아닐까?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닌 이상 상대를 감동시킬 수는 없다. 그럴 때 작업실이 따로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일이, 공부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다른 일보다 딱히 더 중요할 이유는 없다.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살지만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고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익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독서 혹은 공부가 과연 나쁘기만 한 걸까? 경전의 의미를 알기 위해 하는 공부, 나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하는 공부는 과연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닌 걸까?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의 존재를 의심하고, 여름벌레는 얼음의 실재를 믿지 않는다.
장유
최근 읽은 심리학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남들보다 높게 평가한다고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아무튼 장유의 주변에는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장유는 그런 무리를 우물 안 개구리와 여름벌레라 부른다
자신이 아는 좁은 세계에 만족해 세계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우물에서 벗어나고 얼음을 보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주희는 옛사람 중 가장 굳세고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친구나 제자 들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 그 즉시 고쳤습니다.
이황
어쩌면 그들은 내 원고에서 일말의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고치면 좋아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그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찼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허약한 마음 때문에.
이황은 젊은 벗이자 만만치 않은 적수였던 기대승에게 이렇게 썼다. "진정한 굳셈과 용기는 제 주장을 강하게 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상대의 올바른 말을 그 즉시 따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굳셈과 용기이지요."
선비가 경전과 역사책을 읽을 때는 세월을 두고 차근차근 해 내가야 한다. 올해 『서경』書經을 읽었으면 내년에는 『시경』詩經을 읽고 그다음 해에는 『주역』周易을 읽는 식으로.
유만주
오에 겐자부로는 한 명의 작가를 정해 놓고, 대략 삼 년 동안 그 작가의 책이나 관련 연구서만 읽는 독서법을 젊은 시절부터 지켜 왔다고 한다. 그는 단테, 엘리엇 등을 독서법대로 읽어 나갔고, 그 결과 단테와 엘리엇에 정통한 아마추어가 되었다
그대는 늘 조급하니 서두릅니다. 공부를 하면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기대합니다.
이황
고민 없이 써 내려간 글에는 매력이 없으므로 굳이 읽을 필요 또한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조급한 마음에 수십 권의 책을 서둘러 읽어 치우는 것은 한 권도 읽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글을 읽을 때는 푹 익게 하는 것이 으뜸이라고. 한 줄 한 줄 천천히 생각하며 읽으라는 뜻이리라.
한 해의 첫날, 성인聖人의 책을 처음 보았다. 지난날의 잡스러운 생각들이 홀연 녹아 사라졌다.
허균
훌륭한 책이란 무엇인가? 독자의 시야를 트이게 하고 다른 세계를 보여 주는 책이다.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은 공부하는 이들의 꿈이다
정약용의 글은 내게 위로를 주었다. 떠 있는 삶이 꼭 슬픈 것은 아니며, 공자 또한 한때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다니는 삶을 꿈꾸었으며, 떠 있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움과 동의어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그의 글은 마른 손바닥을 적시는 빗물 같았다.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이 나온다. 이별한 것도 아닌데 외롭다. 힘들여 일한 것도 아닌데 피곤하다.
유만주
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성공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이 더 많다. 나는 그들을 반면교사 삼기로 한다. 삐딱한 내 머리엔 이런 의문도 든다. 그들은 정말로 실패한 걸까? 어쩌면 나는 그들을 정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들의 깊이 가라앉았던 삶, 사실 그건 떠다니는 삶의 변형은 아니었을까?
공감, 애정, 사랑이 인간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자명한 이치인 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알 테니까.
공자가 그토록 강조한 인仁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애정일 것이다. 예수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성인聖人의 말까지 인용할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백성들 마음에 조금의 원망이라도 생긴다면 그건 임금 그대의 잘못, 하늘이 그 벌로 그대의 자리를 빼앗으리라.
김시습
공부가 뭐 별건가? 배우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던 것들, 그것들을 문자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업 그리고 몸으로 실천하는 작업일 뿐이다.
공부를 꼭 고생스럽게 해야만 하는 걸까요? 때론 한가하게 쉴 필요도 있습니다.
이황
고리타분하고 근엄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이황은 솔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과도 우아하게 잘하고 훈계도 기분 나쁘지 않게 조근조근 잘도 퍼부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공부만 하지 말고 한가하게 쉬기도 하라는 문장이다.
대숲에 바람이 분다. 대나무는 무심하게 바람을 느끼고 반응한다.
장유
장유의 글?실은 중국 송나라의 성리학자 정자程子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기는 하지만?은 아름답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대나무가 바람을 대하듯 살라는 의미다. 모든 아름다운 행동은 단순해서 더 실행하기 어렵다.
그나저나 옛사람들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공자는 냇물을 보며 "지나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감탄했고, 중국 북송 시대의 유학자 주돈이는 "잡초 또한 나와 뜻이 같으므로 뽑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내 주위에도 대나무가 있고, 냇물이 있고, 잡초가 있다. 내게 그것들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니 내가 공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밖에.
대나무는 꼿꼿하면서 빛을 발하지는 않는다. 곧으면서도 잘난 체는 하지 않는다.
김매순
국민은 정치인의 선거 공약에만 등장하는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건 숙명이기도 하고, 권리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하다. 이웃이 아픔을 겪는 것, 그건 내 잘못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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