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아모스는 네 가지 이유로 『구약성서』 예언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첫째, 아모스 이전에도 모세,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등 예언자로 불릴 만한 인물이 여럿 있었지만, 정작 예언 내용을 성경의 독립된 한 책으로 만든 것은 아모스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문서 예언의 효시’라고 불립니다.

둘째, 아모스는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예언 활동을 전개한 몇 안 되는 예언자에 속합니다. 『구약성서』에서 북왕국을 상대로 활동한 예언자는 아모스와 호세아 둘뿐이었습니다(호세아는 북왕국 출신, 아모스는 남왕국 출신이지요).

셋째, 7장 10?17절에는 베델 제사장 아마샤와 극적인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아모스는 실로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인물이었습니다.

끝으로, 아모스에게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점은 그의 신관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신의 윤리적 성격을 처음으로 뚜렷하게 부각시킨 예언자였습니다

아모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란 독립된 인격으로서 자신의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설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힘을, 진정한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임을 공언하면서 직업 종교가나 종교 조직 따위에 자신의 삶을 의지한다는 것은, 결국 땅에서 발을 뗀 채 남의 등에 업혀 살고자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선포한 만인사제주의의 핵심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모스의 설득력 있는 설명 방식은 기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야훼 신의 성격에 대한 철저한 인식,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비범한 통찰 그리고 주변 정세와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아모스의 예언은 ‘내용이 형식을’, ‘사상이 문체를’ 결정했다고 봐야 합니다.

아모스는 예언자로서 부름 받기 전에 이미 당대의 정치 문제와 사회 현실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즉 정신적인 일, 사상적인 일을 하려면 먼저 충분한 노력을 투입해 인문학적 식견을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인간을 모르고서 어찌 신을 알겠습니까. 신의 계시란 인간의 노력과 인내가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1861?1930)는 『전도의 정신』에서 전도자는 다방면의 세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도자는 우주 만물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 나타내 보일 직책에 있으므로 이 넓은 우주에 전도자가 몰라도 좋을 지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첫째, 경제학과 사회학 등 사회과학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도자는 사회의 지도자이며 사회를 하나님이 정하신 진리로 이끌어 갈 책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를 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둘째, 자연과학을 연구해야 합니다. 과학은 물질의 원리와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이를 배우면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법칙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셋째, 인문학, 특히 역사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역사학은 인류 발달의 기록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환히 나타내 보이는 학문입니다. 역사학은 인간성의 폭과 깊이에 대한 이해를 높여 관용의 정신을 갖게 합니다. 역사학은 국민은 인류보다 작으며 인류 전체의 발전은 한 국민의 발전보다 긴요한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전도자는 역사학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인류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끝으로, 이상적인 전도자가 되고 싶다면 성서의 원어를 비롯해 성서 자체를 충분히 연구해야 합니다. 성서를 연구하지 않고 전도에 나서는 것은 수학 지식 없이 천문학을 연구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아모스는 결코 편협한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 인류, 각 민족을 동등하게 보고 동일한 윤리적 척도로 판단하는 보편주의자였습니다. 야훼를 전 인류의 신, 전 우주의 신으로 파악함으로써 아모스는 『구약성서』에서 처음으로 유일신 개념을 확립한 예언자라는 영예를 누리게 됩니다.

정의는 야훼의 성격에서 핵심적인 요소였습니다. 야훼는 추종자들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정의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야훼는 다른 민족에게는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이스라엘에는 낮은 기준을 제시하진 않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누린다면 그들에게는 그만큼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이 적용됩니다

아모스가 제시한 정의는 법률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직, 공정, 성실, 순수, 자비, 동정 등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이며 초보적인 도덕률이었습니다. 특히 시민적 도리, 상도의, 이웃 사랑 등 사회정의를 강조했습니다. 아모스에게 압제와 부정은 단순한 도덕률 위반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신에 대한 범죄행위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정의로운 행위는 그 자체로 야훼에 대한 참다운 예배의 일부였던 것이지요.

아모스는 예레미야보다 150년이나 앞서 이스라엘 종교의 정신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모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은 우리에게 희생 제물이나 곡식 제물, 십일조 따위가 아니라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정의를 행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호세아의 여러 특징은 아모스와 비교함으로써 한층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예언자는 먼저 출신지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아모스가 남왕국 유다 출신인 데 반해, 호세아는 북왕국이 배출한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호세아가 북왕국 출신임을 말해 주는 분명한 증거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예언자가 사마리아 왕을 "우리 왕"이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7:5) 둘째, 「호세아」에는 전편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깊은 동정이 흘러넘치는데, 이것은 동족에 대한 호세아의 사랑이 표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의 문장은 강직·단순하고 절제된 퓨어 스타일로 유명하지만, 호세아는 이 점에서도 그와 대조적인 면모를 드러냅니다. 호세아의 문장에는 분노와 슬픔, 부드러움과 심각함이 교차합니다. 야훼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믿음과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실망, 좌절이 아무런 논리적 구조 없이, 그때그때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걷잡을 수 없이 휘감겨 들어갑니다. 논리가 있다면 그것은 ‘감성의 논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호세아의 문체 또한 그 사람됨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야훼는 일찍이 아직 어린 이스라엘에 사랑을 베풀어,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끌어올린 바 있습니다.(11:1) 마르지 않는 야훼의 사랑이 멸망이 임박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방식으로 역사할 것인지에 대해 호세아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 즉 야훼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리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호세아는 논리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심정의 사람이었고, 설교자라기보다는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예언은 「아모스」처럼 잘 짜인 논증이라기보다는 감정의 흐름에 따라 자유로운 필치로 서술한 것이었습니다.

야훼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이지理智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정하고 자애로운 아버지로서의 야훼’를 전 존재로서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호세아는 야훼의 사랑을 어린 자식을 애지중지 보살피는 부모의 모습으로 그립니다.

‘인애’란 히브리어로 ‘헤세드’이고, 사랑 관계에서 기대되는 충성, 헌신, 친절, 경건, 은혜, 신실 등을 뜻합니다. 호세아는 ‘야훼를 아는 것’을 말할 때 머리로 하는 단순한 지적 인식을 훨씬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식 주체인 인간의 전 존재가 던져지는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야훼를 아는 것’은 신을 한낱 관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긍휼의 야훼에게 충실한 사랑과 헌신으로 응답하는 것이며, 이 관계를 통해 비로소 터득할 수 있는 자신과 이웃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친절과 성실로써 도덕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호세아가 본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도덕적 의무로 결합된 사랑 관계입니다. 그것은 법률적 정의의 규범을 초월합니다. 야훼의 긍휼과 이스라엘의 성실한 충성 및 이웃에 대한 친절에 의해 성립되는, 경건에 기초한 결합입니다. 야훼와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이 공동체의 결합 매체 또는 사회적 통합의 원리가 곧 ‘헤세드’입니다. 이 헤세드는 야훼에게서 이스라엘로 향할 때는 은혜, 긍휼이고 이스라엘에서 야훼께로 향할 때는 경건, 충성이며 이스라엘 백성 서로에게 향할 때는 친절, 사랑, 배려입니다. 히브리 정신에서 이 세 가지는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야훼를 사랑하는 것’과 ‘야훼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4:1, 6:6)

이스라엘에 대한 아버지 야훼의 하염없는 사랑이야말로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이라 보고, 신앙상의 모든 문제를 여기에 집중시킵니다. 요컨대 그는 안에서 밖으로의 접근 방식을 통해 모든 신앙 문제를 생각합니다.

아모스는 도덕의 토대 위에서 종교를 세우고자 한 반면, 호세아는 종교에서 도덕을 끌어내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모스는 도덕적 논리의 관점에서 신앙 문제를 생각한 반면, 호세아는 야훼의 깊은 은혜에 대한 내밀한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도덕적 진실을 도출한 것입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모두 신앙생활의 건전성을 판별하는 시금석을 그 ‘행위’라고 보았습니다.(「아모스」 8:7, 「호세아」 4:9) 이스라엘은 행한 바에 따라 야훼 앞에서 심판을 받게 마련이며, 이스라엘이 저지른 부패, 압제, 범죄 등은 이스라엘이 야훼를 떠났음을 보여 주는 가장 뚜렷한 증거였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보편적 도덕률을 파기한 행위 자체에 심판을 가했지만,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야훼에게 진실하지 못한 결과 보편적 도덕률을 위배한 것이라고 파악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회적 정의 문제 이전에 ‘그들과 야훼의 관계’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음을 통찰한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를 오직 신의 대지에 성실히 뻗어 내리는 일, 그것이야말로 히브리 종교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행위는 믿음의 결과요 종속변수일 뿐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근본에 힘쓰는 일’(무본務本)이야말로 헤브라이즘의 본령입니다.

호세아는 특히 야훼가 이스라엘에 베푼 ‘첫사랑’에 주목합니다. 야훼는 마치 광야를 여행하며 기갈에 허덕이던 길손이 뜻하지 아니한 포도송이를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하듯 민족 형성 초기의 이스라엘을 심히 반갑게 여기며 사랑을 쏟았습니다.(9:10)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바알을 숭배한 죄로 야훼에 대한 청순한 첫사랑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아침 안개, 새벽이슬처럼 그 사랑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6:4)

호세아는 항상 야훼에 대한 에브라임의 태도와 향배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이스라엘 죄의 본질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죄의 뿌리를 한층 더 철저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모스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의를 지적하고, 정의가 행해지지 않는 한 어떠한 의식도 야훼 앞에서 무의미하다고 선언했습니다.

호세아는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철저히 인격적인 관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둘의 관계를 인격적인 것으로 파악할 경우, 예언자에게는 여러 가지 비유적 표현을 사용할 여지가 생깁니다.

야훼는 이스라엘을 ‘아들이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아들로 선택한 것입니다.(11:1)

이스라엘이 야훼와의 계약을 위반할 경우 야훼는 아들이라는 이스라엘의 특권을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들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오직 그가 야훼에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동안, 다시 말해 도덕성을 유지하는 동안으로 한정되었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야훼의 아들이라는 점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그가 부자 관계를 강조한 것은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어린 시절, 야훼가 친히 교육을 베풀던 시기를 언급할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하염없는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을 여실하게 표현하려면 부자 관계 이상의 긴밀한 관계, 즉 부부 관계의 비유를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남편인 야훼와 아내인 이스라엘이 결혼했다는 비유, 다시 말해 남편으로서의 민족신 개념은 호세아가 처음 창안한 것이 아니며,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하는 개념도 아닙니다. 아버지로서의 민족신 개념과 마찬가지로 남편으로서의 민족신 개념 역시 그 뿌리는 이방 종교에 있었습니다. 이미 이방 종교에서도 신과 백성은 종종 남편과 아내로 이해되곤 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방 종교의 결혼 비유는 지극히 조야한 육체적 의미만을 지니고 있었을 뿐 전혀 정신적인 내용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종교 역시 이방 종교와 같은 수준으로 타락할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이전의 어떤 예언자들도 얻을 수 없었던, 다시 말해 외부에서 오는 기계적인 계시로는 얻을 수 없었던 중대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즉 야훼의 본질은 정의라기보다는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착잡한 감정은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심정을 반영합니다. 즉 죄와 부정을 보고 한때 증오가 타오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아내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태복음」 5:8)라는 예수의 말처럼 고결한 사랑의 예언자 호세아는 자신의 청순한 사랑으로 야훼의 심정, 야훼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근동 사회에서 장성한 아들은 그 집의 노예와 마찬가지로 천한 일을 맡아보았고, 아들과 노예는 가장 앞에 설 때 모두 조신하게 삼가는 자세를 취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정한 사랑을 표시하는 대상은 ‘어린 아들’뿐이었습니다. 호세아가 이스라엘을 아들에 비유한 것도 어린 시절에 국한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신을 섬기려고 야훼를 버리고(4:10), 야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9:17), 미련한 아들처럼 행동했다는 점(13:13)에서 죄를 범했습니다. 이에 야훼는 예언자를 보내 돌이킬 것을 타일렀고(12:10), 수만 가지 율법을 기록해 주었건만, 그들은 이를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8:12)

행위의 열매 이전에, 야훼에 대한 충성스런 사랑이란 ‘뿌리’가 선행한다는 것을 간파한 호세아는 더욱 위대한 사랑의 예언자이며, 신앙의 본질을 통찰한 믿음의 예언자입니다.

야훼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하는, 인간으로서는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절대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야훼의 심정이 인간의 심정과 닮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호세아의 견지에서 볼 때, 신의 의義는 피조물인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인격적인 의가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733년에 아람, 유다, 이집트, 앗시리아 등과 정치·군사적으로 복잡한 국제 관계에 휘말립니다.(7:9) 그러나 이스라엘은 야훼에게 돌아오지 않고 이집트, 앗시리아 등을 기웃거리며 외세에 의존하려 합니다.(7:11)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호세아는 귀머거리가 된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고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날은 오고야 맙니다. 사막에 몰아치는 죽음의 열풍과도 같이 앗시리아가 나타나 마침내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1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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