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결함이 있으면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집니다. 돈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는 데 결함은 치명적입니다.

돈을 쌓아 두기보다도 의존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편이 더 유용하고, 돈을 사용하더라도 의지할 사람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쪽이 현명한 방법임은 분명합니다. 돈만으로 연결된 관계는 정말로 곤란할 때는 의지가 되지 않습니다.

화폐는 손쉽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장치다.

화폐는 신뢰 관계 없이 교환을 가능하게 한다.

화폐를 사용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물건을 제공하게 된다.

화폐는 타인과 신뢰 관계를 만들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화폐는 사람과의 굴레를 끊어 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상대와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리면 자신이 필요한 것이 손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필요한 물건을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서 얻으려고 관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도 큰일입니다.

이럴 때는 적당한 형태로 상대와 관계를 유지하다가 서로 소원해지면 그대로 손에서 놓으면 됩니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이 화폐로 가능합니다. 현금으로만 매개되는 관계로 전환하면 악연을 끊으면서 관계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선택지가 풍부해지는 것=자유가 아니다.

성공은 가능한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늘 무수한 선택지가 있다.

무수한 선택지 중에서 옳은 선택을 한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인생에서 선택은 어느 쪽이 정답인지 모릅니다. 이 ‘모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문제없습니다. 그러나 ‘정답을 모른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면 냉정을 잃게 됩니다. 냉정을 잃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이 없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결말을 맞게 됩니다.

선택이라는 설정 자체가 위험하다.

선택이라는 상황에 내몰린다면 그 자리에서 도망가야 한다.

불가피한 선택에 직면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어떻게 선택하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가 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에 따른다.

어느 쪽인가를 선택한 이상 다른 선택지는 이미 닫혔다고 여기면 안 된다.

자유는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풍요는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를 계속 지켜 나가는 용기를 갖는 것과 ‘이기’를 구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기적인 사람과 자유인은 정반대입니다. 자유인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 비해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을 잘 관찰해 보면 자기 자신을 심하게 미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나쁜 아이’라고 믿고 있어서 그 자기혐오를 감추기 위해 자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고집하고 자신의 이익이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침범당하면 자신의 가치를 빼앗기고 능욕당한 것처럼 격노하는 것이 이기주의자의 행동 패턴입니다.

이기주의자는 자기 자신을 싫어한다.

이타주의자도 자기 자신을 싫어한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도 이기주의자와 똑같이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믿습니다. 그 자기혐오를 감추기 위해 자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것도 똑같습니다. 단 이기주의자와 달리 이타주의자는 이유도 없이 타인에게 이익을 줌으로써 ‘면죄’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이타 행위는 야비한 이기적 행위와 겉으로만 정반대이고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자유인은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습니다. 자유인의 목표는 계속 자기 자신으로 있는 것, 자신이 성장하고 싶은 방향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싫다고 느끼는 것은 거절하고, 싫다고 느끼는 사람과는 사귀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주저하지 않고 도와줍니다.

자유인의 모습은 때로 이기적으로, 때로 이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인의 행동은 자애自愛에 근거하지 자기혐오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자유인은 자애自愛 상태에 있고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자라고 싶은 방향을 향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장은 혼자 결심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주위에 많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자립하고 있지 않아서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타인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도와줄 사람을 한 명이라도 늘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관계는 ‘주어야 받는’give and take 관계가 아닙니다. 주어야 받는 관계는 주지 않으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정말로 곤란해져 자신이 줄 것이 없을 때는 버림받고 맙니다.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곤란을 겪고 있으면 도움을 줄 친구, 그런 친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그 사람 자신의 ‘도’道의 궁극이다.

당신의 인생의 목적은 다른 누구와도 다르다.

개성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개개인이 자기 욕망대로 행동하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각각의 사람이 나아가야 할 도는 다르고 그 궁극 또한 다양해서 그 모든 것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뭔가를 강요당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된 명제를 자기 인생의 목적이라고 여기는 자체가 자유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인생의 목적은 기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인생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어떤가는 느낄 수 있다.

꿈은 인생의 목적을 향해 가는 이정표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자기가 바라는 모습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으면 몸이 스스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그렇게 하면 꿈을 실현할 행운이 다가왔을 때 틀림없이 잡을 수 있습니다.

언어로 표현한 부정형을 몸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몸은 부정을 제외하고 받아들인다고 봅니다.

꿈은 긍정형의 이미지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꿈을 꾸고 강하게 염원하는 것은 좋지만 그 꿈에 집착하면 거꾸로 몸이 긴장해서 움직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꿈은 즐겁게 꾸는 것이지 비장한 결의로 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필사적이 되면 세상일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그럼에도 꿈을 이미지화하고 꿈을 위해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데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꿈을 꾸고 있다고 합시다. 그 꿈을 달성하는 자체는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는 그 꿈을 이미지화해서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 있습니다. 몸의 움직임이 당신을 성장시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마련이고, 그때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추상적인 ‘꿈’은 성취되면 곧바로 사라진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므로 무엇인가를 손에 넣어도 거기서부터 기쁨을 직접 느낄 수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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