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성장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익혀야 합니다. 그것들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습니다.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을 익히면서 자기혐오의 씨앗이 생깁니다. 자신 안에 없는 것을 ‘훌륭한 것’, ‘옳은 것’이라 믿고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위장은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신경 써서 자신을 포장하고 그것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고 황홀해지는 이유는 ‘이 모습이라면 타인이 감동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조금 안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애自愛로부터 발생하고 집착은 자기애自己愛로부터 생긴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싫다고 느끼는 사람과 친구인 척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거기서부터 넘쳐나는 애정에 이끌리는 것이 진짜 친구다.
누구하고든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면 누구하고도 사이좋게 될 수 없다.
누구하고도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면 파괴적인 사람과도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가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서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혼자서 상대에 관해서 자기 마음대로 상을 만들어 강요하는 행동은 상대에게 굴욕감을 줍니다.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이 느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대립을 일으키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 거라고 짐작할 수도 있는데,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닙니다. 파괴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파괴적인 태도의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창조적인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조건입니다.
집착하는 사람은 결코 집착하는 대상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타인에게 받아들여진 경험을 갖지 못한 사람은 타인에게 상을 강요하는 방법 외에 다른 것을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타인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준비한 분류표의 어딘가에 적당히 배치해서 이해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인간관계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파괴적 태도’라고 부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거나 혼자서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야말로 당신을 다른 사람에게 종속하는 원인입니다.
자만하면 자신의 실력 부족은 모른 체하고, 문제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립니다.
자애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중하게 여기는 것과 반대로 자기애는 자기혐오로부터 생깁니다. 자기혐오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래야 한다는 모습을 미리 고정해 놓고 그 모습과 어긋난 자신에게 혐오감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호감을 받으면 당신의 자원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애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똑같이 자기 자신을 유지하려는 근본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 욕구를 인정하고 거기에 따르는 것이 자애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스스로 그 몸을 중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친구 만들기의 대원칙입니다. 누구하고나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면 친구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강요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누구하고든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강요하는 사람과도 만나서 사귄다는 말입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애의 부정으로 생긴다.
표면적인 평온을 지키기 위해서 불쾌한 강요를 참으면 ‘친구인 척’을 강요당하게 되고 당신의 중요한 친구 네트워크가 순식간에 오염됩니다.
자기애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타인의 장점을 욕망하는 것이 집착이다.
자기애자의 두 번째 전략은 불안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먹이가 되어 줄 사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용모, 상냥함, 총명, 자산, 학력, 지위, 능력, 강함, 신분 등 무엇이든지 좋으니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목표로 정해 그의 장점을 수중에 넣어서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려는 야비한 욕망을 품습니다. 타인에 대한 이런 욕망이 집착입니다.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대등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는 친구입니다.
파괴적인 태도와 사랑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파괴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집착할 뿐입니다. 파괴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의 마음에 든다는 말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집착당한다는 뜻이고, 집착당한다는 말은 소유당한다는 뜻입니다.
자기애자가 취하는 전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장하고 위장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자원과 시간을 확보하려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많은 자원을 획득하고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확보해 자신의 위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전력을 다하느라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없어집니다. 자신의 불안을 억누르기 위한 위장에 쫓기는 인간은 타인을 짓밟으려 하고 타인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쓸 수 없게 됩니다.
위장에 봉사하기 위한 자원과 시간을 획득하느라 분주한 것이 이기심이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자립’한 것이다.
누구하고도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면 파괴적 태도가 당신을 끌어당기게 된다.
서로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는 말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늘 탐구하고 자기가 만든 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 상태가 자애입니다. 인간은 원래 자신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자기혐오에 빠지는 아기를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가까이 옵니다.
‘공포’에는 원인이 있지만 그 원인을 스스로 은폐하면 ‘불안’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정신의 결함 때문에 기묘한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의 불가피한 일이며 정신적으로 완벽한 성인聖人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어떤 형태의 ‘장애’를 갖고 살아갑니다. 적어도 나이를 먹으면 어딘가 몸 상태가 나빠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인정하고 자애하는 동시에 자신을 인정할 수 없어 자기혐오에 빠지는 두 가지 측면을 갖습니다. 이 경우 자애와 자기애가 한 명의 인간 안에서 경합하고 애정과 집착이 갈등합니다. 집착은 종종 애정으로 오인됩니다.
의존할 곳을 점점 줄여 소수의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에게 종속하는 상태입니다.
이기심은 자애에 반합니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이익에 휘둘리면 자신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이치에 맞게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자립에는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창조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창조적인 태도를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그 사람과도 친구를 하면 됩니다. 물론 친구의 모든 친구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중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과 친구를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친구의 친구와 친구가 되면, 친구의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를 소개받으세요. 이렇게 해서 한 명이던 친구가 세 명으로 늘고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막대한 수의 친구가 생깁니다.
상대의 파괴적 태도에 대응하지 말고 창조적 태도에 말을 걸어야 한다.
파괴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 배후의 창조적 태도에 말을 걸면 그 사람이 분노할 수 있다.
자립한 사람은 혼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곤란하면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러한 인간관계를 잘 관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간관계는 화폐를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만들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성장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익혀야 합니다. 그것들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습니다.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을 익히면서 자기혐오의 씨앗이 생깁니다. 자신 안에 없는 것을 ‘훌륭한 것’, ‘옳은 것’이라 믿고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사람’,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위장은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신경 써서 자신을 포장하고 그것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고 황홀해지는 이유는 ‘이 모습이라면 타인이 감동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조금 안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애自愛로부터 발생하고 집착은 자기애自己愛로부터 생긴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싫다고 느끼는 사람과 친구인 척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거기서부터 넘쳐나는 애정에 이끌리는 것이 진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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