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즐거움을 도외시한 비평적 독서는, 생트 뵈브의 말마따나 무미건조로 점철된 특별한 종류의 즐거움만을 제공할 따름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비평가는 독자에게 작품 전체의 흐름을 이해시키거나 새로운 방식에 따라 거듭하여 읽기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유한다

천천히 책을 읽고, 대상을 봤을 때 처음으로 파악한 의미를 경계하며, 무턱대고 책에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책을 읽을 때 나태함에 젖지 않게 해 준다

조급함도 금물이다. 조급함은 나태함의 또 다른 모습이다

느린 독서는 애초에 읽어야 할 책과 읽어서는 안 될 책을 구분해 준다.

‘천천히 읽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보편적 독서의 기술이 될 수 없고, 다만 다양한 작품에 따른 서로 다른 독서의 기술들이 있을 뿐이다

책 읽는 즐거움을 도외시한 비평적 독서는, 생트 뵈브의 말마따나 무미건조로 점철된 특별한 종류의 즐거움만을 제공할 따름이다.

천천히 책을 읽고, 대상을 봤을 때 처음으로 파악한 의미를 경계하며, 무턱대고 책에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책을 읽을 때 나태함에 젖지 않게 해 준다

조급함도 금물이다. 조급함은 나태함의 또 다른 모습이다

느린 독서는 애초에 읽어야 할 책과 읽어서는 안 될 책을 구분해 준다.

‘천천히 읽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보편적 독서의 기술이 될 수 없고, 다만 다양한 작품에 따른 서로 다른 독서의 기술들이 있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생각을 담은 책에 맞는 독서법은 다음과 같다.

지속적인 비교와 대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보편적 생각은 작가가 수많은 생각과 세세한 관찰을 쌓아 가며 도착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비평가는 독자에게 작품 전체의 흐름을 이해시키거나 새로운 방식에 따라 거듭하여 읽기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유한다

철학자를 읽는다는 것은 그 철학자를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비교하는 일이다. 그리고 바라보는 작업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 감정인지, 감정적인 생각인지, 감정과 생각이 혼재된 상태에서 도출된 생각인지를 본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그것이 사상가의 정신으로부터 천천히, 순수하거나 거의 순수한 상태의 생각이 쌓여 도출되는 관념적 생각인지를 본다

언제나 작가와 거리를 둔 상태라면 작가의 내면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단지 작가의 말을 재단할 뿐 진정한 읽기는 할 수 없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자. 무엇이 점차 드러나는가? 글이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처음 봐서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작가는 생각보다 훨씬 덜 단호하다

다시 한 번 읽고 주의 깊게 살피면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말을 이끌어 나가는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작가의 수많은 잠언을 비교하다 보면 그의 방식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그가 어떠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때만 가능하다.

한 저자의 기술 방식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언제든지 저자와 대치한 상태에서 그 방식을 뒤집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재미있는 놀이로 우리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작가를 가장 밑바닥까지 소유하는 행위다. 작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다른 방향으로는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지를 알게 해 줄 뿌리나 씨앗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진정으로 작가를 알게 된다.

찾고자 하는 즐거움은 바로 사유의 즐거움이다. 작가의 생각과 거기에 섞여 드는 우리의 생각을, 우리를 자극하는 작가의 생각과 그를 해석하는 우리의 생각을 모두 따라가며, 그리고 아마도 이 모든 생각을 배반하며 우리는 사유의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관건은 즐거움으로, 여기에는 수많은 불경스러운 즐거움이 존재한다

독자는 처음으로 모순을 찾아낼 때 즐거움을 느끼고, 다음으로는 그 모순을 해결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작가를 이겨 내기 위해서는 작가를 작가 자신과 맞붙이고 또한 작가 자신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

철학자인 한 작가를 읽는다는 것은 계속하여 그와 토론하는 일이다. 이때 토론에는 개인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매력과 위험이 가득 차 있다

진정한 지적 행복이란 바로 정신적 자유이다

지적 작업에서 필요한 것은 포기도 승리도 아니다. 포기하면 언제나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고 승리는 언제나 공허한 법이다. 한 사상가와 마주해서 자신을 알려면 언제나 정중하면서도 너그러울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옳았음을 알아야 하며 마지막에 이르러 그와 명료하게 뜻이 일치해야 한다. 또한 작가가 틀렸음을 알고 그 앎에 감사를 표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자가 생각의 씨를 뿌리듯 감정을 다루는 작가는 감정의 씨를 뿌린다. 무엇보다 작가는 우리가 감동하기를 바란다. 감동이란 작가가 작품 속 등장인물에게 내맡긴 감정을 독자와 나누는 일이다. 이것은 일종의 감염으로, 우리가 창조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정신 상태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자신을 내던진다고 내가 명명한 행위는 무엇보다 감정을 다루는 작가를 대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상상으로 가득한 작품을 생각한다는 건, 등장인물이 자연스러우면서 진실임 직한지를 자문하는 행위다. 그리고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을 맛보듯 등장인물들의 진실함을, 즉 그들의 도덕적 삶이 얼마나 잘 집약되어 있는지를 음미한다

소설 읽기는 두 번째 순간, 즉 판단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시간을 전제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폭넓은 인간관계를 겪어야 하는데, 이는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습관을 통해 생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가장 강한 감정은 바로 우리가 살면서 본 것들을 소설에서 다시 볼 때 생겨난다. 그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명확하고 더욱 두드러진 방식으로 말이다

진정으로 좋은 소설이라면, 소설은 반쯤은 무기력하게 벌어진 손아귀에서 벗어난 삶을, 우리한테서 멀어지는 삶을 포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는 또한 허구를 판단하고 그것이 좋을 때 더욱 즐기기 위해 우리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독서는 이처럼 우리에게 자기 자신의 심리를 분석할 수 있기를 요구하며, 훌륭한 독자는 심리 분석이 가능한 사람을 말한다

독서는 우리가 의식하는 바를 엄중히 살피기를 종용하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에게 검토하는 습관을 길러 준다. 좋은 독자라면 이미 허구의 등장인물들을 비교할 때, 그 인물을 우리가 아는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과 비교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 권의 책처럼 읽어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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