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브리지, 다리를 놓는 것이 리터러시일 수 있습니다. - P65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체제에, 또 다양한 담론이 쉼 없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지금의 사회에 맞는 메타라고 생각하는데요. - P65
이 관점에서 보자면, 나한테 리터러시 자원이 많이 있다는 것은 타인을 깔볼 자격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능력이 많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 P65
다른 면에서 보자면, 다리를 놓아야 하는 책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 P66
가르침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주체가 동일한 언어를 쓰지 않음이 전제가 됩니다. 생각의 지평 사이에, 또 언어 간에 도약이 있는 상황에서만 가르친다는 행취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 P68
이런 점을 개념화한 용어가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 예요. - P71
좁은 욕실에서 노래를 부르면 자기 목소리가 울려서 성량이 풍부해진것 같잖아요. - P71
그렇게 소리가 잘 울리도록 설계한 방을 에코 체임버, 즉 반향실이라고 하거든요. - P71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해줄 사람들로 소셜미디어의 관계를 구축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한 커뮤니티에만 가입하면 자기 목소리가 합리적이고 대세라고 느끼게 되죠. - P71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요. 저 또한 이런 ‘반향실 효과‘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중요한 건 자신이 만든 온라인 공간이 세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P71
세계는 소셜미디어로 축소될 수 없어요. 그렇게 느끼는건 분명 착각이죠. - P71
초텍스트성의 시대에는 해석의 기준이 되는 경전, 독트린이 또다시 사라집니다. - P83
문자가 없었던 비텍스트성의 시대와는 반대로, 굉장히 많은 텍스트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죠. - P83
대부분의 영역에서 최종적 권위를 가지는 문헌, 즉 궁극적인 레퍼런스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 P83
어떤 경우라도 지켜야 한다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라고 하는 경전은 더 이상 출현하기 어려워요. - P83
흔히 말하는 거대담론이 해체된 대신 특정한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텍스트의 기능, 언어의 권력이 굉장히 중요해졌습니다. - P83
말씀하신 것처럼, 문자와 관련된 읽기와 쓰기라는 행위가 키워주는 가장 큰 역량이 추상화하는 힘입니다. - P101
추상화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거기에 담길 수 있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 P101
그런데 추상성이 높다는 것은 그저 여러 개를 아무것이나 막 담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 P101
그렇게 되면 의미가 붕괴되니까요. 모순되고 충돌하는 것들이 마구 담기면 의미를 갖는 것 자체가불가능해지죠. - P101
그래서 추상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체계적이고 정교해져야 해요. - P101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리터러시는 개인적인 역량이 아니라 사회적인 역량이에요. - P138
그런데 이 리터러시의 역량을 개인화해버릴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어요. - P138
특히 영상과 달리 텍스트는 추상성의 문제 때문에 진입장벽이 더더욱 높아서 양극화를 피할 수가 없죠. - P138
결국은 책 읽는 인간과 책 안 읽는 인간, 이렇게 나뉘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문화자본이 계급적으로 분배되는 거죠. - P138
단순화시켜 말하면, 매체에 따라 우리 뇌의 활성화 패턴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어요. - P151
패턴이 달라진다는 것은 우리 뇌가 달라진다는 것, 우리 몸의 습속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P151
그렇기 때문에 글이든 동영상이든 당장 필요한 지식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은 인간의 몸과 매체가 맺는 관계의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고, 매체의 강점과 한계, 매체가 우리 머릿속에서 일으키는 변화, 매체의 사회적 영향 등을 무시하는 것이죠. - P151
처리 과정 없이 산출물이 나올 수는 없잖아요. 매체를 사용할 때 수반되는 경험을 무시하고 써먹을 수 있는 지식만 결과로 보는 것도 위험하고요.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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