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패닉 -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팬데믹 시리즈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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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우리는 전 지구적 위기에 놓여있게 될 것인가?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전염병이라는 새로운 위기 앞에서 많은 나라들이 속수무책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가장 선진적이라고 자부했던 경제와 정치 시스템을 자랑했던 나라들도 연달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극단적 봉쇄조치도 새로운 재확산으로 인해 완벽한 방어책이 아님이 드러났다. 우리는 명확한 해결책이나 출구전략 없이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치료제와 백신만 바라보며 무력함에 빠져있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1949)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새롭게 생각해야 하고 돌아보아야 할 이면의 진실들을 들추어낸다. 현상 그 자체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역학을 조명한다.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는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아닌,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을 고민하게 해 준다.


지젝은 서문에서 부활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했던 말로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나를 만지지 마라"는 말이다. 만질 수 있는 인간이 아닌 사랑과 연대로 묶는 존재로 임재할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금 우리에게 적실한 요청이다. 직접적인 대면이 아닌 내면을 통해 서로 접근하는 현실. 


저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현실을 파악해야 함을 촉구한다. 감영병은 그저 자연의 우연성으로 발생한 것이며, 아무런 숨겨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거대한 사물의 질서 가운데서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한갓 종에 불과함을 인식함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이러스가 유행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들을 자세하게 분석하는 일이다. 저자는 그것이 어떤 다른 음모가 아니라 일반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전 지구화, 자본주의 시장, 부유한 자들의 잦은 이동 등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 지구적 고통 앞에 우리는 같은 배에 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주요 관심사다. 저자는 현재의 상황 가운데서 국가의 틀을 넘어서 연대와 협력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지구공동체로 함께 이 어려움을 극복할지,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차별로 퇴행할지 선택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로 인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악화시키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지젝은 이러한 관점으로 구체적인 예시들을 제시하고 실제적 대안을 모색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더욱 확장된 관점으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통찰을 얻게 된다. 더불어 이 책에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세 편의 특별 기고문이 실려있다. 이를 통해 조금 더 지금 현실을 반영한 글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역자의 해설은 저자의 통찰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며, 우리의 상황에 적합하게적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가 지금 정말로 슬퍼하고 있는 일은 우리의 생활양식 전체의 갑작스러운 종말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 상실을 애도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다. - P12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는 우리의 욕망을 새롭게 발명하는 일이다. 우리는 욕망의 좌표들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 P13

사랑의 기적이란 당신이 내가 파악할 수 없는 기적으로 남아 있는 한에서, 또한 나에게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한에서 당신이 나의 나 됨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 P18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기반들 자체를 흔들어놓을 것이며, 엄청난 양의 고통은 물론 대불황the Great Recession 보다 더 극심한 경제적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길은 없고, 새로운 ‘일상normal’이 옛 우리 삶의 잔해들로부터 만들어지거나, 이미 조짐이 선명하게 보이는 새로운 야만에 접어들게 될터다. 이 감염병을 하나의 재수 없는 사건으로 여겨서, 우리의 건강관리 체계를 약간만 조정한 채, 그 결과들을 삭제하고 예전처럼 매끄러운 일 처리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과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경고했음에도 우리를 아무 대비 없이 파국에 빠지게 만든 우리 시스템은 뭐가 잘못된 것일까? - P19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기에, 우리는 시장 메커니즘이 혼란과 기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대다수에게 ‘공산주의적‘으로 보이는 조치들이 전 지구적으로 고려될 것이다. 생산과 분배의 조정이 시장의 조절력 바깥에서 진행될 것이다. - P28

우리가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지금 유행하는 감염병이 자연의 우연성이 가장 순수하게 발현한 결과요, 그냥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아무 숨겨진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다. 더 거대한 사물의 질서 한가운데 인간은 특별히 아무런 중요성도 없는 한갓 종에 불과하다.
코로나바이러스 집단감염이 가하는 위협에 대처하는 과정에서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당국에 긴급 원조를하며 협조를 구했다. 선의와 인간적 도리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단순한 사실때문이었다. 한 집단이 감염된다면 다른 집단도 불가피하게 고통받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학으로 번역해야 할 현실이 여기있다. 지금이야말로 "미국 (또는 다른 누구든) 먼저!" 라는 모토를 버려야 할 때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반세기도 전에 설파했듯 "모두 다른 배를 타고 왔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같은 배에 타고 있다. - P31

감염병의 결과들을 처리하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는 힘들고 소모적인 노동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일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의미 있는 노동이고,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어리석은 노력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만족을 가져오는 노동이다. 한 의료노동자가 초과근무 때문에 완전히 기진맥진할 때, 한 요양보호사가 벅찬 임무에 지쳐버릴 때, 그들은 강박적으로 경력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피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치는 것이다. 그들의 피로는 보람 있고 값지다.
- P43

우리는 그저 바이러스의 위협에만 대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파국들이 우리 눈앞에서 어른거리거나 이미 벌어지고 있다. 가뭄, 폭염, 태풍 등 그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이 모든 경우에 해답은 공포가 아니라 효율적인 전 지구적 협력을 어떤 형태로든 구축하는 굳세고 간절한 노력이다 - P59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은 생명의 하부층위sub-layer, 즉 죽지 않고, 어리석으리만치 반복하며, 유성생식을 하지 못하는 바이러스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하부층위는 항상 거기에 있어왔고, 어두운 그림자처럼 늘 우리와 함께 존재하면서 우리의 생존 자체에 위협을 가하고,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터져버릴 것이다. - P70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은 시장 중심 지구화의 한계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국가 주권을 주창하는 국수주의적 포퓰리즘의 훨씬 더 심각한 한계 또한 알려준다. - P89

국가의 지배력을 개선하기 위해 전 지구적 경제 위기를 촉발하는 일이 정말로 자본과 국가권력의 이익에 부합할까? 평범한 국민들뿐 아니라 국가권력 자체도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는 증거들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이 증거들이 정말로 한갓 책략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 P97

지금 이 현실은 이미 상상된 적이 있던 그 어떤 시나리오도 따르지 않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필사적으로 새로운 대본들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 인식의 지도 그리기를 건네줄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들,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그려줄 현실적이면서도 파국적이지 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희망의 지평선, 그리고 펜데믹 이후의 새로운 할리우드가 필요하다 - P172

우리가 어떤 길을 갈지, 이 선택은 과학이나 의학과 상관없는, 철저하게 정치적인 선택이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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