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장하는 바는 마음 속에 쉽게 떠오르는 자동적인 반응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질문들에 포괄적인 수준 이상으로 대답할 수 있으려면, 먼저 성급히 ‘해결책’으로 비약하지 않고 애통하고 자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욥기는 우리의 태평스러운 신앙생활이라는 새장을 흔든다. 하늘과 땅에는 우리가 철학, 심지어 ‘기독교‘ 철학에서 꿈꾸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수수께끼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신약성경은 이 모든 내용을, 같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하셨고 하실 일과 관련하여 언급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님이 계신다. 그분은 죽음을 통해 새 생명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셨다. 만사를 바로잡으셨고, 결국에는 해결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욥기는 구약성경에 서로 전혀 다른 (최소한) 두 차원이 있음을 계속해서 일깨워 준다. 이스라엘 이야기, 혹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있다.
이 언약이야기는, 창조주 하나님이 한 민족을 부르셔서 인류 구원과 창조세계 회복의 동역자로 삼으신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그 백성이, 즉 모든 인류를 죽이고 있는 ‘우상숭배와 불의‘라는 최초의 바이러스를 온 인류에게 감염시킨 질병 보균자‘인 그들이 포로기라는 암흑을 통과하여 새 생명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들려준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님은 "때가 찼다"라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성경의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의식하고 살던 청중들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이 이제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혹은 적어도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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