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이후에 이러한 상황은 점차 변화되었다. 행위 주체(subject)들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P14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권리들, 또는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고 여긴 권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과거에 묶어두는 모든 속박들을 서서히 깨뜨렸다. - P14

행위 주체들은 과거에신성하다고 여겨진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그야말로 무제한적으로 해방시켰다. - P14

구원의 확신은 우리가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확신을 지니고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23

구원의 확신은 인간의 노력의 열매도 아니고, 우리가 의무들을 꼼꼼하게 다 행했을 때 주어지는 상도 아니다. - P23

우리가 이 땅의 보화들, 삶의 기쁨들, 대중의 칭송, 학계에서의 명성,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는 예술 작품들을 비롯해서 이 땅에있는 어떤 것에서 구원의 확신을 찾아 보아야 헛수고일 뿐이다. - P23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 양심의 고발들과 죄의 무게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 P23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P23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죽음과 심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 P23

이 모든 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다. 우리는 흔히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이다. - P24

신학은 영혼의 질병들을 고쳐줄 처방을 해야 한다. - P30

신학은 우리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죄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삶의 환난들 가운데서 인내와 소망을 지니며, 죽음을 앞두고도 찬송을 불러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 P30

우리에게 존재하는 각각의 기능은 자신이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것 속에서 쉼(안식)을 얻는다. - P32

의지는 오직 선에서만 완벽한 쉼을 얻고, 우리의 감각은 아름다운 것들에서 완벽한 쉼을 얻는다. - P32

마찬가지로 지성은 오직 참된 것,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유일한 진리이신 하나님에게서만 쉼을 얻는다. - P32

믿음은 과학적인 논증에 의해서 훼손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증될 수도 없다. - P37

믿음은 언제나 참되거나 참된 것으로 여겨지는 계시, 권위, 신적인 말씀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믿음의 확신은 언제나 믿음의 열매, 즉 어떤 이유에서든 이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순종하는 믿음의 열매다. - P37

과학적 확신은 합리성에 의거하기 때문에 믿음의 확신보다 더 보편적인 토대를 지니지만, 개인에게 미치는 힘, 즉 영혼이 믿음 안에서 자신의 대상을 받아들여서 서로 결합되는 힘에 있어서는 후자(믿음의 확신)가 전자(과학적 확신)보다 월등하게 앞선다. - P43

과학적인 확신은 화형장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믿음의 확신은 아주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 심령에 뿌리를 내리고서, 우리의 실존을 이루고 있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다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고 박멸될 수 없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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