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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 알렉산더 슈메만의 주의 기도 해설 ㅣ 비아 시선들
알렉산더 슈메만 지음, 정다운 옮김 / 비아 / 2020년 4월
평점 :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이내 내면과 영혼 가운데 깊은 울림이 있다. 빠르게 진행할 수 없다.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는다. 한 구절 한 구절 기도하며 읽어 내려간다.
녹록지 않은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를 짓누르는 무게가 크게 느껴진다.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삶에 켜켜이 쌓인 문제와 어려움.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를 옭아맨다.
다시 외쳐본다. "우리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가 어떠한 모습이든. 내가 경험한 아버지가 어떤 이미지든. 이 순간만큼은 따스하다. 눈물이 맺힌다. 그동안의 쓰림, 억울함, 불편함, 죄책감. 파도처럼 우리의 내면을 요동치게 한다. 그러나 편안하다. 기쁘다.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라서 너무 좋다. 참 다행이다.
우리의 주기도는 이미 너무 익숙하다. 습관적이다. 감동이 없다.
하지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찬찬히 묵상해보면 참으로 고귀하고 영광스럽다.
다시 우리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알렌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 1921~1983)은 정교회 사제이자 신학자다. 그는 특히 예배학의 대가이며 전례 신학(Liturgical theology)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슈메만에 대해서는 아번에 비아에서 출간된『우리 아버지: 알렌산더 슈메만의 주의 기도 해설』의 후반부에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슈메만은 아무 의미 없이 읊조리던 주기도문에 생명력을 더한다. 그는 아주 짧은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말한다. 아니 기도의 정수, 복음의 핵심을 보여준다. 추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아버지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한다.
답답했던 우리의 마음이 시원하게 적셔진다. 욕심 가득했던 이기적인 우리가 이내 아버지의 사랑으로 충만케 된다. 자연스레 우리는 우리 또한 사랑해보겠노라고 고백한다.
한 구절 한 구절 지나칠 수 없다. 밑줄 긋고 색을 칠하고 인덱싱을 하고 메모를 한다. 눈으로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에 새겨야 하는 책이다. 기도함으로 인도하는 책이다.
주의 기도는 이 모습 그대로 2천 년 동안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세계 어느 곳에서든, 누구든 이 기도를 입에 담는 순간, 그는 한때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그 말로 기도를 하는 것이 됩니다. 이 짧은, 언뜻 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기도가 그리스도교의 심장으로 향하는 가장 좋은 길인 이유, 이보다 나은 길은 없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 P12
복음이 그러하듯 이 기도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 자신, 우리 자신의 필요와 질문, 우리의 순례의 여정을 위한 기도가 되어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도의 핵심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언제까지나 가장 중요한 것, 궁극적인 것, 가장 높은 곳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 P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신성한 사랑 가운데, 세계 곳곳에 스며들어 세계를 끌어안는 그 거룩한 사랑 가운데 있다는 신앙을 표현합니다. 또한 세계에 사랑이 임했고, 세계가 그 사랑을 가리키고 반영한다는 신앙을 표현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말을 통해 인간의 영광과 운명이라는 궁극적인 소명이 하늘에 있음을,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며 그분의 집임을 고백합니다 - P18
종교적 경험Religious experience이란 가장 순수한 형태로 거룩함을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소나마 이를 경험해 본 이는, 그 경험이 우리의 모든 생애를 관통해 내면과 삶에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를 아는 이들은 우리가 이를 진정으로 갈망하고 있음에도 우리 내면에 어떤 관성, 나약함, 존재의 협소함으로 인해 무엇보다도 성스러운 것, 가장 높고 순수하며 거룩한 것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그 성스러움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압니다. - P24
복음은 우리 삶이 그분의 빛으로 가득할 때, 그분에 대한 앎, 그분께 받은, 그리고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할 때 그 나라가 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 거룩한 생명 가득한 삶을 사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죽음까지를 포함한 모든 것이 새로운 빛 속에 드러나게 되리라고, 지금 여기의 삶이 영원 그 자체로, 즉 그분 자신으로 채워 지리라고 말합니다 - P36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너무도 독특한 이 말이 우리의 입 밖으로 나올 때, 우리는 무엇을 기도하는 것일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말을 통해 지금 여기, 오늘 이곳, 현재 처한 환경에서 그 나라와 만나기를, 평범한 하루, 고단한 오늘에 "아버지의 나라가 여기 가까이 왔다"는 말이 울려 퍼지기를, 우리의 삶이 그분의 나라의 권능과 빛으로 채워지기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능력이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 P37
이 간구는 바로 신앙의 궁극적인 척도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앙이 풍요로운지 피상적인지, 자신의 종교성이 풍요로운지 거짓인지를 식별하는 기준이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분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가장 열렬한 신자조차 (늘 그러지는 않더라도) 자주 아버지의 뜻이 아닌 ‘나‘의 뜻이 이뤄지기를 구하고, 갈망하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 P42
종교의 역사,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배신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범하는 잘못,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패가 꼭 배신과 같지는 않습니다. 죄는 참회하면 되고, 실패는 바로 잡으면 되며, 병은 회복하면 됩니다. 진정한 배신은 계속해서 ‘나의 뜻‘, 혹은 ‘우리의 뜻‘을 ‘아버지의 뜻‘으로 대체해 버리는 일이며 이편이 가장 나쁩니다. - P45
아버지의 뜻이 ··· 이루어지게 하소서.
다른 무엇보다 이 말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도록 도와주시기를 구하는, 이를 헤아릴 힘을 내려주시기를 구하는 말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이더라도 결국 그 뜻을 식별하게 해 달라고, 우리의 머리로 하는 추론, 우리의 마음, 우리의 뜻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달라고 우리는 간구합니다. 어렵고 고되며, 견디기 힘들어 보이는, 혹은 불가능해 보이는 그분의 뜻을 우리가 받아들이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합니다. 아버지께서 갈망하시는 것을 우리 또한 갈망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 P46
성경의 상징에 따르면 그분은 두 번째 아담으로서 그렇게 음식에만, 물질적 생명에만 의존하는 상태를, 그 무거운 짐을 심판하시며 극복하십니다. 그분이 스스로 이 의존에서 벗어나심으로써, 음식을 먹는 일은 필멸하는 세상의 노예가 되는 일이 아니라, 다시금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을 받는 일, 거룩한 생명, 자유, 영원과 연합하는 사건이 됩니다 - P53
빵을 받고, 생명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그 목적,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선물이 주어지는 목적을 잊곤 합니다. ‘우리 아버지‘, 그분을 아는 것, 그분을 향한 사랑, 그분과 친교를 맺고, 그분을 영원히 기뻐하는 것이 우리가 생명을 받은 이유,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이 궁극적인 삶을 복음서는 "풍성한 생명"(요 10:10)이라고 부릅니다 - P55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의 기도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이 기도를 기억하는 한, 이 기도를 말하고 또 말하는 한 우리의 삶은 언제까지나 그분의 나라를 향해 열릴 것이고, 그분의 권능으로 채워질 것이며, 그분의 영광으로 빛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둠과 증오에 맞서게 될 테고, 악은 그 힘을 잃을 것입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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