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많은 말들은 임박한 심판의 불가피성에 대한 통찰로 각인되어 있다. - P394
이때 항상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고 행동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심판이 올 것이며 심판은 와야 한다는 점이다. - P394
그러므로 "돌이킴" 에 대한 요청은 예레미야의 선포의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 P394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는 바로 상투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종종 거의 체념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인식에직면한다. - P394
그러나 너희는 듣지 않았다(렘 29:19). - P394
돌이킴과 그것에 따른 재앙에서의 벗어남의 가능성이 이스라엘에 주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기회를 붙잡지 않았다. - P394
소명 비전으로부터 그의 생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 말씀은 줄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레미야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 P403
또한 그가 빠져들게 되는 갈등들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러한 하나님의 말 씀을 강조하는 상징 행위들을 통해 유발된다. - P403
그리고 그가 인내해야 했던 외로움이나 고난도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그의 주변 세계가 반응한 결과였다. - P403
예레미야는 그가 예고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단순히 받아 들이지 않는다. - P404
그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되고 숙명적인 길로부터 벗어 나도록 노력하고 그들이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 P404
그래서 "돌이킴"이란 낱말이 그의 말의 중심적 요소가 된다. - P404
즉, 돌이킴에 대한 요청,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다는 사실 확인, 미래에 돌이킬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끝으로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사로잡힘을 되돌리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예고 등이다. - P404
여기에서 이제 특별히 강조되어 나타나는 사실은 예레미야의 심판 선포에서 구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 P404
왜냐하면 종국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이 계획하고 계시는 바가 재앙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이다. - P404
하나님은 포로 기간이 끝나게 하시고 이스라엘과 유다를 모으시고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 P405
그리고 그런 다음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 P405
하나님은 토라를 그들의 마음에 새겨 이스라엘이 더 이상 그 언약을 파기할 수 없게 하실 것이다. - P405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모으실 것이고, 그들에게 이스라엘 땅을 돌려주실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어 언약 관계를회복시키실 것이다. - P423
하나님이 이미 귀환의 때에 관해 예고하신 바와 같이(11:19), 돌이킴을 통해서 사람들은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만들어야 한다(31절). - P437
참으로 다시 한번 말한다. 즉, 하나님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죽는 자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돌이키라. 그러면 너희가 살게 될 것이다"(32절). - P437
이제 그의 이웃 나라들이 더 이상 치명적인 가시와 찔레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진술(24절)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 모든 말씀은 이스라엘과 연관된다. - P439
그리고 여기에 이어서 나오는 구원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흩어져 있는 곳으로부터 모을 것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고된다. - P439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열방의 눈앞에서 자신의 거룩함을 입증하실 것이다(25절). - P439
이스라엘의 선택은 단순히 특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것은특별한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를 의미한다. - P490
요나서는 오바댜서에 대한 중요한 보충,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교정을 포함하고 있다. - P510
오바댜서에서는 유다를 위한 구원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주제가 되었다. - P510
이와는 달리 여기에는 하나님 구원 행동의 다른 측면이 분명하게 부각된다. 즉, 그것은 이방인을 위한 구원이다. - P510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 - P510
나훔서는 하나의 시편으로 시작했고(나 1:2-8), 하박국서는 하나의 시편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을 통해서 아시리아인들이나 바벨론인들과 벌이는 야훼의 투쟁에 관한 진술들이 단순히 세속적인 사건의 의미를 넘어선다. - P523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일들이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활동과 연관된다. 이스라엘의 운명이 창조와 종말 사이에 있는 사건의 거대한 맥락으로 편입된다. - P523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었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날이 도래하기까지의 시간에 토라에 따라 살아야 한다. - P543
그 시간은 지금, 즉 예언자와 그예언을 듣고 읽는 자들의 현재뿐 아니라 그것과 곧바로 이어지는 미래를 포함한다. - P543
동시에 이로써 예언자들의 메시지도 토라에 비추어 읽혀야 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상기된다. - P543
우리는 시편을 바로 "이스라엘의 응답"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그 응답 안에서 "야훼 앞에 있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구원행동에 대해서 반응한다(Rad 1962, 366). 그것은 다성적이며 다층적인 응답이다. - P551
물론 양식들의 결정은 개별시들에 대한 격리된 고찰들을 넘어설 수 없다. - P553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의 시편집이 분명 매우 의도적이며 복잡한 수집 과정을 거친 결과라는 사실이 점차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 P553
이를 통해 개별 시편은 더 큰 맥락 안에놓이게 되며, 그것을 통해 그 시편은 종종 하나의 추가적인 기능을 획득할뿐만 아니라 드물지 않게 그 진술이 하나의 새로운 강조점을 얻게 된다. - P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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