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학자와 시인들, 성경을 바라보는 여러 전통과 관습을 통해 나의 성경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유대인의 성경 해석법은 내게 성경 속 수수께끼와 모순에 맞서 싸우지 말고 대범하게 품으라고, 성경은 본질적으로 읽는 이가 씨름하며 의심하고 상상하며 토론하게 만드는 책임을 가르쳐 주었다.

성경은 다양한 이야기의 모음집이기에 각각의 이야기는 그 쓰인 의도를 파악할 때 거기서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예술가라면 마법보다 영감을 선호한다고 할 것이다.

진정한 영감은 행운아나 인기 많은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에게 찾아온다.

영감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자와 창조의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작은 창조자가 동역하는 과정이며, 일방이 아닌 쌍방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협업이다.

기원 이야기는 흑백 사진보다는 천연색 사진에 가깝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사실과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향수와 경각심을 일으키는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그 이야기 중 어떤 것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가려져 있다가 특정한 시점에 중요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오해하는 바와 달리, 이스라엘의 기원을 말하는 이야기는 우주의 탄생이나 인류의 진화 같은 21세기 과학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야기는 하나님의 본성이나 하나님과 창조물의 관계처럼 당시 사람들이 초미의 관심을 두었던 문제에 답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창세기 2장과 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인류의 기원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착과 불순종, 추방이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패턴을 원시적 배경으로 그려 낸 이스라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로 생각한다.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빌려 왔는지 밝히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한 이스라엘이 이웃 민족들과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하며 유사한 문학 장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성경은 살아 있는 관계처럼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그것은 고결한 독백이라기보다는 정겨운 대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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