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반성과 돌아봄, 바로 그 회상은 나와 더불어 있는 ‘너‘없이는 불가능하다.
너를 만난 ‘나‘가 진짜 나이며, 너와의 시간과 공간이 비록 지난 일이라도 지난 일이 아닌 ‘나‘란 존재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것이 바로 ‘나‘이다.
우리 가운데 ‘나‘는 ‘너‘와 더불어 존재하며, 너의 고난을 ‘남‘의 고난으로 두지 않고 ‘우리‘의 고난으로 두며, 고난 앞에서 더 깊게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
우리가 한낱 ‘사유의 존재‘(ens rationis)가 아닌 ‘현실의 존재‘(ens reale)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조건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때 고난 앞에서 우리는 더욱더 단단해진다.
그러나 고난은 절망의 순간이 아니다. 아픔의 순간이고 슬픔의 순간이지만 절망의 순간이 아니다.
고난은 희망의 시작이다. 희망은 ‘나‘의 앞에 누군가를 ‘우리‘ 가운데 ‘너‘로 부르며 시작한다.
손잡고 나갈 이가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홀로 있는 나‘가 아닌 ‘더불어 있는 나‘가 되면서 시작한다.
더욱 깊어지는 철학이란 그 슬픔 가운데 아파하는 이들의 슬픔, 그 슬픔 기억으로 아파하는 이들의 슬픔. 그 슬픔을 남의 슬픔으로 돌리지 않는 철학을 말한다.
‘남’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 안에 ‘너’의 슬픔으로 안아주는 철학이어야 한다. 이들을 안아주지 않는 철학 앞에서 민중은 ‘철학의 부재’ ‘생각의 부재’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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