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인 공통 신학은 은혜가 보응의 한계 너머로 흘러 나갈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로의 처지에서 건져냄을 받은 후, 이스라엘은 야웨, 곧 ‘용서하시고 치유하시고 속량하시고 관을 씌우시고 만족케 하시는‘ 분의 연민 어린 뜻이 구체적인 정책에 담길 것이라고 상상한다(시 103:3-5).
하나님의 은혜가 의로운 자에게 임할 때, 참 이웃다움을 창조하는 아름다움이 만개한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이 세상 한가운데로 ‘이웃, 이웃, 이웃‘이라는 말이 내려온다.
곁에서 함께 뒤섞이며 살아가는 이 이웃이라는 존재는 새로운 존재로 규정되고, 이전과 다른 역할을 부여받는다. 해방의 하나님, 그분이 이웃 사랑의 후원자가 되신다.
참된 들음이란 사람의 전 존재를 걸고 경청하는 것이다.
들음은 실제로 귀를 기울이는 행동과 관계있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야웨께서 주시는 세계에 몸을 다해 충성함을 뜻한다.
야웨의 토라는 한곳에 고정되거나 갇힐 수 없으며, 특정한 의미로 확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메대와 페르시아의 법과 달리, 야웨의 토라는 항상 미지의 터로 나아갈 수 있게 열려 있고 준비되어 있다.
토라의 본질은 규율을 늘어놓는 데 있지 않으며, 새로운 시대와 환경, 새로운 시대정신을 고려하는 지속적인 대화에 있다.
이스라엘은 더욱 귀를 기울임으로써 ‘이웃의‘ 집, ‘이웃의‘ 아내, 모든 ‘이웃의‘ 소유를 넘어 과부의 집, 거류민의 아내, 빈민과 고아와 과부의 모든 소유에까지 이웃 사랑의 범위를 확장해 간다.
이스라엘이 들음으로써 옛 계명의 깊이와 절실함은 더욱 날 서게 벼려지고, 그들에게 무거운 책임까지 짊어지라고 요구한다.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은,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토라를 말씀하고 주석하고 강조하신다.
그분은 이웃 사랑의 관점으로 현실을 끊임없이 변화시키신다.
은혜로이 품으시고 정의롭게 회복하시는 그분께서 온 세계를 새롭게 정돈하겠다고 변함없이 고집하신다.
이스라엘에서 율법은 곧 대화다. 은혜와 정의의 하나님이 사람들과 나누시는 대화다.
이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다시 묻기도 하는 상대가 되었음을 알고 벅찬 기쁨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대화가 이끌어 내는 순종에는 청신함과 기쁨과자유가 충만하게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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