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들은 성경 메시지의 조화와 통일성을 보는 데 도움을 주며 구속사 과정을 추적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이 구속사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구속을 베풀 것이라는 약속을 중심으로 한다(창 3:15).
언약들을 이해하는 것은, 또한 세례와 성찬식의 성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징표들은 특성상 언약적이며,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내가 "창조 언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 용어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언약이 다른 언약들과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볼 수 있으며, 이 용어는 구속사의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로 역사를 개시했으며, 이와 같이 옛 창조는 새로운 창조를 기대하고 그 새로운 창조를 향해 가리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을 통치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제사장-왕이어야 했다.
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변해야 했으며, 그들이 에덴동산에 살고 에덴동산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방식에서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선함을 보여야 했다.
그들이 죄로 타락함으로 인류를 죽음과 죄가 통치하는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전체 성경 내러티브를 볼 때,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의와 생명을 허락하는 마지막 아담임을 볼 수 있다(롬 5:12-19; 고전 15:21-22)
아담은 언약의 우두머리로서 불행과 죽음을 세상에 가져왔지만 신자들은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 가운데 통치할 것이다(롬 5:17).
노아 언약은 인간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끝의 시간이 오기까지 지상에 생명의 존속을 의미하는 보존의 언약이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노아 언약이 창조 언약의 최초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을 봤다.
인간의 깊은 악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은 인간이 지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인간을 계속 축복하신다. 홍수는 일종의 다가올 최종 심판이다(마 24:36-41; 벧후 2:5).
처음부터 온 세상이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관심이 있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일종의 새로운 에덴의 새로운 아담이었다면, 이 축복이 온 세상에 확대되는 것으로 보려는 소망이 있었다.
명백히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은 다가올 세대들의 순종에 달려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녀들은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역할을 성취해야만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의롭고 정당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만 했다.
언약의 조건적 요소와 무조건적 요소 사이의 긴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해결된다.
순종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 약속의 중개자이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들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어겼지만, 옛 언약, 곧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의 마지막이자 최종적인 말씀이 아니었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말씀은 심판이 아니라 자비이다.
다윗 언약에 오면, 이스라엘은 시내산 언약 속에 있었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소망하고 있다.
다윗 왕과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을 대변할 것이며, 나라는 그들이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들이 백성을 통치함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의로운 통치는 여호와의 지배 아래 그 땅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할 때, 새 창조는 온전히 임한다.
땅의 약속, 새 언약은 이제 전 우주로 확대되는데, 전 우주는 하나님의 도성이자 성전이 될 것이다(계 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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