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보심으로써, 그리고 나를 당신과의 사귐으로 부르심으로써만, 나는 참다운 의미의 인격자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천재성, 재능 등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어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중요한 인물, 특정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 화폐에 새겨진 인물로서의 개인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만이 하나의 인격자Person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계시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성서의 하나님은 일치를 원하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귐을 원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신화와 철학적 사변의 신은 사귐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치를 원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사귐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지를 통해서 바로 하나님의 가장 심오한 존재, 즉 삼위일체성Dreirinigkeit이 표현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성서의 핵심 단어가 사랑Liebe임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사랑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 그 자체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은 그 자체로 사귐인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간직한, 그러나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신비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안에서 사랑하는 자인 동시에 또한 사랑받는 자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종적인 말씀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동과, 하나님의 자비로운 계시로부터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역사의 한 순간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역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계시를 통해서 인간에게 다가 오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계시를 율법의 의와 대비시킵니다.
그리고 이런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하는 거룩하심과 화해로 이끄는 사랑이 바로 통일된 하나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의는 믿음의 의와 일치하며, 믿음의 의는 기독교 공동체의 삶을 위한 원리로서 작용하는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