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 공동체는 분파 즉 동시대의 종교적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종교 권력을 확보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집단이었다.

쿰란의 사람들은 사해 변방을 찾아 은둔하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했다.

그들은 그 땅의 죄를 씻는 대속의 제물을 드리고 종파의 창시자인 의의 교사와 공동체의 운영자들인 사독 계보 제사장들의 성경 해석에 따라 토라에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했다.

쿰란의 제사장적 성격은 사독 계보의 제사장들이 주도한 계층구조는 물론 속죄와 정결을 강조한 그들의 신학과 제의 제도에 뚜렷이 드러난다.

쿰란 종파의 묵시적 세계관은 임박한 마지막 전투에 대한 기대, 자신들의 종과 창시자에게 비의적 계시가 주어졌다는 믿음, 그리고 명확히 구별된 선과 악의 투쟁이 지상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초자연적 세계에 관한 상세한 믿음 등으로 표현된다.

사해사본의 발전과 해석은 일각의 예언처럼 기독교에 타격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해사본을 통해 공개된 풍부한 정보들은 기독교의 이해를 위한 비교연구는 물론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 기원후 1세기에 이르는 기간의 유대교를 조명하는 풍부한 광맥을 제공했다.

사실 복음서가 그리는 예수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아의 "임무 내역"과 너무나 동떨어진 존재였다는 점에서 당대의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로 믿지 않은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게다가 초기 교회가 점점 비유대화되고 토라의 영향력에서 멀어지면서 유대인들의 회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토라를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는 대다수 유대인이 이 문제를 자신들과 달리 바라본다는 사실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방법이 성경으로부터 증거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요 전략 중 또 다른 하나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유대인과 그 지도자들이 저열한 동기에서 예수에 맞서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들로,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음흉한 모략가들로 그려졌고, 저잣거리의 유대인들은 조작에 쉽게 넘어가는 무지한 자들이자 악한 지도자들과 마귀들의 도구로 전략했다.

만일 우리가 사복음서에만 의존해 제2성전기 유대교를 파악한다면 틀림없이 매우 흉한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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