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민들과 더불어 그들에게 합류한 무리가 구별되었다는 것은 공동체의 경계선을 강조했다.

그런 경계선은 누가 유월절을 경축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방식의 제의적 순수성으로 표현되었다.

공동체를 적절히 규정하는 것은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고유한 경계선을 분명히 갖지 못한 집단은 주변의 더 큰 문화세력 안으로 흡수되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곤 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예배를 요구하셨고 그것을 더럽히는 자를 처벌하셨다.

포로기가 지나면서 제사장들의 가르침과 페르시아 법령이 왕정의 권위를 대치했고, 이제 율법은 성전으로부터 독립된 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서기관들은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율법책을 펴들고 낭송한 후 제사장들이 싫어할 방식으로 해석을 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스라엘 왕정의 부재로 인해 성전의 내부적 힘이 증가할 바로 그 시기에 다른 편에서는 토라의 해석에 바탕을 둔 새로운 권력의 중심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새로운 상황은 후대에 바리새파 운동과 예수 운동을 위한 길을 터주었다.

기원전 175년에 셀레우코스의 왕좌에 오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그리스 문화를 유대에 강제하고 유대인의 종교를 금하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른다.

유대인들은 이미 수백 년간 외세의 지배를 견뎌냈지만, 이것만큼은 너무 지나친 일이었다.

토라를 불법화하는 것은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짓밟고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박탈하는 행위였다.

유대인들은 훗날 마카비로 불리게 되는 한 제사장 가문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먼저 종교적 자유를 얻은 다음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 마침내 국가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들이닥친 정복자는 너무나 강했다. 기원전 63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유대인의 독립은 종국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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