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메시지는 이러한 세상 질서와 뚜렷이 대조를 이루었다. 예를 들면 예수의 제자들은 계속해서 서열과 우열을 가렸다. 예수는 그들을 나무라셨고 하나님 나라는 어린이들, 즉 지위, 권력, 특권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하는 자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 섬기는 자가 높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베풀라고 말씀하심으로 후견의 원리를 허무셨다. 선물을 줄 때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황제를 아버지로 모시는 로마 제국이라는 가족의 관습이었다.
예수는 청중에게 예속과 의무의 관계로 움직이지 않는 대안적인 가족 관계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의무감을 버리고 서로 섬기고 서로 나누어 쓰기를 바라셨다.
예수는 로마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시고, 신들의 보살핌 아래 예속와 의무에 기초한 당대의 생활 세계 대신 감사하지 않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는 자비로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사고와 감정과 믿음과 행동의 본(패턴)으로 삼으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메시지는 마음가짐과 행동뿐 아니라 ‘세상 질서‘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관해서도 로마의 정치 질서와 사뭇 달랐다.
개념적으로 예수의 모습은 이사야서가 그리는 대로, 죽음으로써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종의 모습에 가깝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섬기라고 가르치셨고 스스로도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섬기려고 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목숨을 버렸고 자기보다 남을 위하라는 메시지를 실천하셨다.,
예수의 죽음이 갖는 구원 의의를 설명할 때 명확히 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이것은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에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분리하는 현대의 경향은 필연적으로 ‘죄의 용서‘와 ‘민족의 회복‘을 구분한다. 이는 시대착오다.
제2 성전 유대주의에서 이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었고 예수도 용서받는 문제를 꺼내지 않고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해 말씀하실 수 없었다.
복음서가 기록하듯이 그분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이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에 바탕을 둔 윤리를 가르치고 실천하셨고, 로마와 유대의 종교적·정치적인 생활 세계와 관습을 전하는 자들을 반대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을 지키고 세상의 가치를 거부하는 삶,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고 죽음으로써 구원하셨다고 해석할 수 있는 삶을 상징하는 죽음을 맞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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