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전에 한반도에 있던 나라는 임금이 주인인 왕국, 제국이었습니다. 1919년에 처음으로, 임금이 아닌 국민이 한반도 땅의 주인, 주권자로 선포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에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의 탄생만큼 큰 사건은 달리 없습니다.
미 대륙이 대영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음으로 선포한 것이 미국독립선언이듯이, 우리가 일제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우선 필요했던 것도 "독립선언"입니다.
그래서 3월 1일은 독립선언일입니다. 독립은 일제의 양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독립국이라는 자기선언입니다.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의 독립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만세운동의 방법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만세운동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총칼을 들이대는 일제의 위협이 지속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유혈 희생을 무릅쓰고 비폭력시위로 민족의 의사를 장쾌하게 표현함으로써 새 나라의 주인 자격을 당당히 얻게 됩니다.
상하이에 모인 애국지사들은 그 모든 사람들을 주인으로 세우는 바로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래서 수립된 것이 대한민국이고, 그래서 민주공화국인 것입니다.
비폭력은 시위하는 사람들의 양심과 결연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탄압하는 권력의 부도덕성과 잔인성을 대비시키는 효과를 갖습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기본 틀을 잡고 조문의 체계와 내용을 창출한 분은 조소앙 선생입니다. 그의 다년간의 법률적 지식도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탁월한 점은 애국적 민족운동의 기류를 헌법적 표현으로 일관한 바탕 위에 주조해냈다는 겁니다.
제헌 국회의원들은 이 1919년의 3·1사건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는 데는 이의가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다른 독립운동 사건에 비견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는 점에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임을 자각했고, 그러한 국민적 자각이 대한민국을 (전제왕조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으로 건립하는 토대가 되었음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구절에는 그러한 법통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애국선열들의 피눈물, 그러한 지혜를 간직한 지식인과 후손들의 한평생 삶이 녹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지막 광복군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이루어낸 쾌거이지요. 이 구절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헌법 전문에 명기하기까지의 피와 눈물과 지성의 역사, 시대의 맥박을 함께 읽어내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폄하하려는 자들은 ‘독립운동은 실패‘라고 결론 내리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성공은 인간적·민족적·세계적 차원에서 두루 살펴야 합니다. 독립운동은 인간적 주체성을 회복하고, 민족의 정기를 세우고, 세계 속에 독립한국의 필수성을 각인시킨 그 자체로 성공한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