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과 안전과 예측 가능성을 누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면서 지금까지 머물고 있던 정박지에서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이동이다.
이 이동의 목적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삶에서 치료의 효과를 누리고, 또 삶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있다.
이런 심리적 이동이 일어나는 동안에, 당신은 자신을 자주 희생자로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 희생에 당신을 성장시키려는 어떤 목표가 숨어 있다는 진리를 좀처럼 깨닫지 못한다.
‘영혼‘은 당신 자신의 깊이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이고, 당신의 깊은 속을 호르고 있는 목적 지향적인 에너지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이고, 의미를 추구하려는 욕망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이고, 또 일상적인 의식이 포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무엇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직관적인 느낌이다. ‘영혼‘은 우리를 더욱 심오하고 인간적인 존재로 만든다.
개성화는 우리 각자가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일생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개성화는 부모나 종족, 특히 쉽게 위축되거나 부풀려지는 자아가 의도하는 인간이 아니라 신들이 의도한 그런 인간이 되려는 노력인 것이다.
개성화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신비 앞에 서도록 하고 또 인생이라 불리는 여행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책임을 보다 충실하게 지도록 한다. 이때 우리 모두 타인들의 신비를 존경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개성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 담을 쌓게 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개성화는 단지 사람을 집단으로부터 떼어놓을 뿐이며 오히려 진솔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범위를 더욱 넓혀준다.
결국 우리가 변화할 수 있기 위해선 반드시 우리의 내면에 어떤 의지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의식의 통제력을 상당히 벗어나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에게 옳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그런 의지 말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추구하고 이바지하고 성취한 것과, 자신이 정직한 순간에 느끼는 감정 사이에 이 같은 불일치를 조만간 경험하게 된다.
외적 기대와 내적 현실 사이의 이런 불일치가 중년에 종종 겉으로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삶을 사는 동안에 영혼의 소환을 한 번만 아니라 자주 경험한다.
어쨌든, 타고난 자기와 성취한 "자기감"(sense of self) 사이에 피할 수 없는 불일치를 경험할 때마다, 정체성의 위기가 나타난다.
매일 두려움과 무기력이라는 악마를 만날 때, 우리는 불안과 우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일상의 선택에 당연히 따르는 딜레마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혹은 영적 발달을 이루려면 반드시 불안과 모호함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힘든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상태를 참아내고, 그러면서 삶에 충실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우리의 성숙을 말해주는 도덕적 척도이다.
비관적인 인생관이라는 초대장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보다 큰 구도 안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겸손한 자세로 걷고 신들을 무서워하라는 옛날의 가르침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의미를 지닌다.
어린 시절에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상처 중 그 첫 번째 카테고리는 ‘압도‘(overwhelmment)라고 부를 수 있다. 즉 나라는 존재가 환경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압도적인 환경은 사사건건 참견하는 부모, 사회경제적 압박, 생물학적 장애, 굵직한 세계적 사건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압도적인 환경 앞에서 우리가 받는 메시지의 핵심은 다시 우리라는 존재는 외부 세계의 흐름을 바꿔놓기에는 너무 무력하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반사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와중에 자신의 의식을 온전히 지키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의 패턴이 한 번 더 강화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오랫동안 우리는 그런 낯익고 낡은 체계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믿어 왔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그처럼 자주 드러내는 그 낡은 체계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나르시시트들은 자신의 내면적 빈곤을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쓴다. 그들은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고, 자신의 평판을 크게 부풀리기도 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타인들을 얕잡아 보기도 할 것이다. 혹은 그들은 약간의 무시와 비판에도 무너져 내래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데 대해 죄의식을 느끼도록 만들 것이다. 나르시시트들의 이런 모든 행위는 우리가 그들의 핵심적인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핵심적인 진실이란 바로 그들의 자기의식은 허영심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어린 시절에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이나 불충분한 미러링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의식이 결여된 곳에서는 자유도 절대로 가능하지 않고 진정한 선택도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의식은 언제나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만 생겨난다.
고통으로부터의 도피가 바로 우리가 꽉 조이지만 익숙한 옛날의 신발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영혼은 절대로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 고통은 무엇인가가 우리의 주의를 끌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또 치유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첫 번째 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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