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대중의 인정을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몹시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도 똑같이 납득할 수 없어요.

지독히도 비뚤어진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에 영합하기 위해 계산된 노력들이 장기적으로 행해짐에 따라 대중의 지성은 타락했는지도 모르며, 대중의 눈에는 때가 묻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 문화의 실체는 대중 그 자체입니다.

바로 거기에 백합을 심을 비옥한 토양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예술을 위한 수 많은 재료가, 재탕된 것이 아니라 새로이 샘솟는 감정의 샘이, 뜻밖의 독특한 디테일의 원천이 있어요.

우리 예술가는 이 대중이라는 실체의 주변부에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핵심적인 부분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명백성이 낮아질수록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지시는 희미해지고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이, 말하자면 속기 그 자체의 양상이 부각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재현적 예술에서 비구상적 예술로의 이행을 완수합니다. 맨 처음에는 속기가 일어나지 않고 대상만 존재하며, 맨 마지막에는 대상이 부재하고 속기만 남지요.

성취된 개별 진리는 물론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만 깨달음의 순간을 표상할 뿐이지요.

예술을 통해 형상화되고 또 아마 보존되는 것은 바로 그런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언제자 자신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것(예컨대 완벽에 이른 종교적 감정, 형태의 근원, 인간의 숨겨진 본성)을 좇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예술가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첫째 교양 있는 사람이 될 것, 둘째 교육받은 사람이 될 것, 셋째 통합적인 사람이 될 것.

통합적integrated이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로 합쳐진다는 뜻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말에는 좀 더 역동적인 의미, 교육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통합은 한 사람의 선택된 일부분이 아닌 전체가 관계한다는 뜻을 함축하죠.

교육은 주안점을 두는 부분과 다루는 내용 면에서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언제나 세 가지 기본 능력을 요구합니다. 첫째는 지각력, 즉 가치를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일종의 교양이지요.

둘째는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는 능력입니다. 셋째는 그 모든 재료를 창의적인 행위와 이미지로 통합하는 능력이에요.

예술의 미래는 틀림없이 교육에,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교육에 있습니다.

오늘날 스타일이란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구체적인 의미의 형상이며, 미적 관점과 일련의 의도에서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아니라 왜 그리느냐의 문제이지요. 스타일만을 모방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이를테면 사람의 목소리 톤 혹은 성격을 가르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화가가 되고자 하는 청년에게 성공을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회화의 문제는 성공의 문제가 전혀 아니에요. 성공보다는 자아실현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얼마나 중점을 두는가의 문제죠.

예술의 공적 기능은 언제나 공동체의 창출입니다. 꼭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래 왔습니다. 어떤 시기의 예술은 종교 공동체를, 또 어떤 시기의 예술은 소작농 공동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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