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예술 그 자체에 이른바 자연스러운 환경이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예술과 예술가가 존재하는 일반 사회의 분위기는 예술가라는 직업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예술가는 일종의 자기방어와 자기긍정이 가능한 작은 사회 속에 머물죠.
그런 예술인 사회에는 예술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견해를 접할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의 사회에서 물러나 흡사 수도승처럼 지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예술 작품은 갈수록 안으로 향하고, 보편적인 경험의 생생한 흐름을 점차 따라가지 못하며, 지난날 예술을 위한 추진력과 영감이 되었던 인간으로서의 책무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예술이 현실에 뿌리를 둔다는 것입니다. 예술은 이 생명의 토양을 긍정할 수도, 전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지 예술에 자극을 제공하는 것은 때마침 공교롭게도 존재하는 삶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삶이란 삶의 어떤 특수한 갈래나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가 삶에서 자신의 성미에 맞는 재료를 발견하는 상황이 곧 예술을 위한 적절한 상황입니다.
예술이 발생하는 원천은 자극이나 심지어 영감보다 더 강렬한 어떤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술은 차라리 도발에 가까운 어떤 것에서 불붙는지도 모른다고, 단지 삶에 의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삶에 의해 강제되는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예술은 거의 언제나 건방진 구석이 있고 기성의 권위를 경멸합니다. 따라서 예술 그 자체의 권위와 번영마저 갈아 치울 수도 있습니다.
예술가가 (혹은 누구든) 그처럼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것은 오직 현실의 삶이라는 맥락 안에서입니다.
그리고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오직 냉엄한 현실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선택은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선택에는 어느 정도의 신념과 헌신이 따릅니다. 또한 정신력이라고 할 수 있을, 예술을 추동하는 힘이 수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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