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정된 채로 태어나지만, 자유로운 상태로 생을 마칠 수 있는 작은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 상태로 태어나지만, 주체가 될 수 있는 아주 작은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무조건 자유, 주체, 인간 등등에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이들이 사회적 행위자를 자유라는 환상 속에 가둔다는 점 때문에 책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사회학이 다른 수단에 의해 철학을 연장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만일 사회학이 명예로운 계보 안에 자리를 가질 수 있다면, 저는 최초의 사회학자 자리에 소크라테스를 놓고 싶습니다. 철학자들은 크게 화를 내겠죠.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거리로 내려가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사회학자의 문제는 그가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을 말하려 애쓴다는 점입니다. 특히 사회학자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즉 시간적 여유와 문화자본이 있는 이들]은 알려 하지 않는 것들 말입니다.

사회학자의 모든 작업은 행동의 관찰, 담론, 문서 자료 등에 기초해서 진실의 도출에 필요한 조건을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세계 안에서 지식인의 것이건 프롤레타리아의 것이건 혹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건 간에 일종의 본원적인 [진실의] 장소를 찾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 같은 발상 속에는 일종의 신비주의적 사고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인들은 이런 사고를 통해서, 그리고 극적인 자기 신비화를 거쳐서 스스로에게 사기를 불어넣습니다.

사회학자는 남들의 말을 듣고 남들에게 질문하고 남들이 말을 하게 하지만, 모든 담론을 비판 아래 둔다는 점에서 자신을 위한 또 다른 수단을 갖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학은 상징적 공격, 또는 상징적 조작에 저항하는 자기 방어의 도구를 제공합니다. 이런 도구는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이 생산하는 담론에 저항합니다.

일단 논쟁을 위해서는 불화의 지점들에 대한 합의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우리는 갈등을 통해 서로 통합됩니다. 타협이나 회피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통합에 이르는 셈이죠.

사회학은 ‘말썽쟁이‘ 학문입니다.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 없던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회학은 존재 자체를 의심받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 때문에 사회학은, 적어도 어떤 사회학은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통찰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조바심, 밑바닥에 있는 이런 불안이 [역설적으로] 과학적 진보를 촉진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회학의 기본 동력입니다.

사회학자는 즉각적인 직관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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