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개념이 모양을 갖추면 때로 모어조차 변용해냅니다. 지적 창조와 모어의 풍요로움은 이어져 있습니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설명을 잘하는 자가들의 공통점은 먼 곳에서 거시적으로 조감하듯 내려다보는가 싶으면, 갑자기 미시적으로 현미경적인 거리까지 카메라의 눈을 들이대는 등 초점 거리의 줌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태도야말로 독자를 향한 경의의 표시인 동시에 언어가 지닌 창조성의 실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지닌 창조성은 독자에게 간청하는 강도와 비례합니다. 얼마나 절실하게 독자에게 언어가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그 바람의 강도가 언어 표현의 창조를 추동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다양한 언어가 폭주하며 겹쳐지면서 화음을 이루는 글을 쓰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든 그렇게 단순한 인격이 아닙니다.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지요.

언어는 발화하는 장소에 타자의 수가 많이 있으면 많이 있을수록 언어적으로 활발하게 기능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의 ‘바보의 벽‘, 우리 내면의 ‘평범함의 경계선‘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쓰는 일은 고역일 따름입니다.

이른바 ‘만인을 향한 메시지‘는 실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메시지입니다.

외국어는 자기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외부로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배우는 것입니다.

생생한 언어를 습득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신의 외부에 있는 타자에 동기화하는 것, 그것을 통해 기존의 자아를 일단 해체하고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자아로 재편성하는 것, 이런 과정이야말로 생명의 자연에 적합합니다.

따라서 일부러 이익을 이끌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인간은 자연스레 타자의 언어에 가상적으로 동일화하고 타자에 동기화하려고 합니다.

언어적 모험은 정형을 충분히 내면화한 인간에게만 허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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