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공감이 사회 인지에서 하는 역할에 관해 상당한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도 놀랍지 않다.

상호인격적 이해에 공감이 어떤 기여를 하는지 추정하는 데 상반되는 영향을 미치는 상충되는 정의가 현재 제안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감이 타고난 성질의 것인지 아니면 다차원적 구성물인지에 대한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한 인간을 본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후설은 어떻게 타자의 마음 상태 즉 그의 생각, 느낌, 욕구가 제스처, 억양, 얼굴 표정 속에서 직관적으로 현전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실로 타자의 표현성은 애초에 심리적 의미로 물들어 있는데, 후설에 따르면 이 심리적 의미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1952: 240).

통상적인 지각조차 통각을 수반한다는 점을 후설이 강조한다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공감도 통각을 수반한다는 사실은 그것 자체로 공감의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특성을 부정하는 논거가 결코 아니다.

공감에는 그 자체의 원본성, 그 자체의 충족과 확증, 그 자체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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