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들은 약자를 돕기 위해 자기 일을 포기해야 하는 대단한 희생이 필요 없다. 그저 월급 받고 일하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자기 일에서 5분만 더 고민하고, 말 한 마디만 더 따뜻하게 해주어도 큰 고난의 한가운데서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황송할 만큼 말이다. .

딱히 인권변호사가 되거나 노동 현장에 투신하지 않더라도, 자기 직업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현실에 만족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세대론보다 모든 생물의 특징인 ‘적응‘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결국 변한 건 세대라기보다 시대다.

옳은 충고도 ‘싸가지 없이‘하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진심이 담긴 필요한 말이라고 해도 배려심 없이 내뱉으면 그것이 진실하기 때문에 더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말‘이라는 무시무시한 흉기를 무신경하게 휘둘러대는 대신 조금만 더 자제하고 조금만 더 친절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운 곳이 될 것이다.

순문학 작품들은 장르소설 같은 즉각적인 몰입이나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처럼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이 먹어가며 점점 순문학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그건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는 말일지 모르겠다. 책 읽는 시간도 한정된 자원이라고 생각하여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얻거나 아니면 즉각적인 재미를 얻길 원하는 거다.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한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협소한 상식에만 갇혀 있는 인간은 비상식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실패하기 십상이다.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감히 대단한 명답을 제시해 분쟁을 해결했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 멍석만 깔아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얻기는 아주 어렵고, 잃기는 아주 쉽다. 오직 진심만이 그 신뢰를 얻는 열쇠일 것이다.

아름다운 윤리와 당위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인간의 이기심,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일단 인정하고 그걸 출발점으로 타협할 지점을 찾는 냉정함이 현실적이다.

세상이 복잡하다고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신념과 분노에만 의지하다가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도 최악의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

의심하고, 근거를 찾고, 다시 생각하고, 아니다 싶으면 주저 없이 결론을 바꾸는 노력 없이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실은 제대로 된 이념이 부재한 곳인데도 이념 코스프레중인 상황은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존재다. 어릴 때부터 잘하든 못하든 뭔가를 책임지고 하는 것 자체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하고 못한 부분은 감싸주고 격려하는 문화가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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