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과 상담이 아닌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곁이 사라진 자리를 편으로 메꾸며 악몽으로 만들어간다. 곁을 파괴하고 편을 강요하는 것,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편의 언어는 공격적이고 맹목적인 경우가 많다. 편의 정치는 끊임없이 적대를 창조하고 그 적대로 사람들을 몰아가며 너는 누구 편이냐고 윽박지르며 ‘곁‘을 파괴한다.

다름과 차이를 차단하게 되면서, 서로의 경험을 참조하며 나누는 배움과 성장은 불가능해진 ‘사회‘. 곁을 만드는 언어는 소멸해 버리고 편만 강요하는 ‘사회‘.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 이 세계를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로지 자신에게만 몰입해야 하는 우리들의 삶은 낯섦으로부터 설렘은 없애고 두려움과 피곤함만 남겼다.

나를 발견하고 가늠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더이상 공포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이 나를 방문하고 다가오는 것이 공포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안전을 도모하고 관계를 규율하는 원리는 환대가 아니라 ‘예의바름‘이 된다.

자유는 시장자본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는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욕망의 노예일 뿐이다. 그 욕망이 자신에 의해 점검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기가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많은 것조차도 사실은 ‘선택‘이라는 이름의 강요였다. 진정한 자유는 그와는 반대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물러서는 것에서 나온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자신이 선택한 것을 선택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에서 자유는 사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