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와 교회 -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교회에 대한 가톨릭·동방 정교회·개신교적 이해를 찾아서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황은영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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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Miroslav Volf)의 가장 큰 장점은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독해 능력일 것이다. 방대하고 폭넓은 텍스트를 다루면서도 핵심을 짚는다. 또한 그 텍스트를 적절하게 배치한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비판과 대안제시는 감탄을 자아내게한다. 자칫 철학과 인문학적 사상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전혀 새로운 가치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할만한데, 그는 철저히 신학적 작업을 수행한다. 그는 결코 그 중심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신학은 삼위일체 중심적이다. 그는 삼위일체의 영원한 페리코레시스적 교제 안에서 기독론과 성령론, 교회론을 재해석해낸다.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통찰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을 보여준다. 본 서평에서는 『삼위일체와 교회』의 모든 장을 다루지 않고, 핵심적인 장들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내용을 전개함에 있어 이후의 장들은 앞의 챕터들의 내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Ⅲ장 ‘교회의 교회성’에서는 교회론에서 다루어야 할 핵심적인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의 언급대로 교회성에 대한 질문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 즉 교회가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교회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 교회론은 다른 조직신학의 각론과 분리되지 않으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저자는 교회론은 구원론과 인간론, 삼위일체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관점을 통해서만 온전한 교회론을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론은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연스럽게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속적으로 고대한다. 한편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 사건과 성령 하나님의 보냄 이후에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그것을 드러내야한다.


저자는 교회성의 공통된 두 조건으로 성례전과 하나님의 백성의 현존을 말한다. 초기의 자유교회 전통은 여기에 그리스도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교회의 성서적 조직을 추가한다. 볼프는 이와 같이 최초의 침례교도인 존 스미스(John Smyth)의 신학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스미스의 사상을 자유교회 전통의 핵심적 사상으로 간주한다. 이후에도 볼프는 스미스와 Ⅰ,Ⅱ장의 라칭거(Joseph Aloisius Ratzinger)와 지지울라스(John D. Zizioulas)의 교회론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이를 비교분석한다. 이는 곧 감독제와 자유교회에 대한 비교이다. 감독제와 자유교회의 가장 특이할 만한 차이점은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에 대한 차이일 것이다. 


저자는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을 연결하는 주요한 통찰들을 제시한다. 특히 공동체적 신앙 고백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사안을 넘어서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차원임을 말한다. 교회적 발화의 객관적 수행과 교회의 모든 개인적 구성원들의 주관적 신앙을 연결시키는 통찰도 큰 공감을 일으킨다. 다만 교회의 존재에서 직임과 성례전의 중요성을 말하는 부분에서 성례전에 비해 직임에 대한 분량이 적은 것이 아쉽다.


제Ⅴ장 ‘삼위일체와 교회’에서 볼프는 라칭거와 지지울라스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교회와 삼위일체 사이에 상응하는 지점의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하고 있다. 삼위일체적 개념을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서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 상호관계성 등을 고찰할 수 있다. 즉, “삼위일체적 용어를 통해 보편화와 다수화 사이의 이원론을 피해가는 것이다(323).” 삼위일체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통해서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더욱 다양한 발전적 논의가 가능하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이미 삼위일체적 논의를 통해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물론 서방교회 전통에서 신적 본질의 통일성이 우선되고, 동방교회 전통에서는 삼위 인격의 삼중성이 우선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차이는 서방교회는 보편교회를 우선하고, 동방교회는 지역교회를 우선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신학적인 차이가 실제적인 현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교회 전통에서는 교회와 삼위일체의 상응 관계에 대한 개념은 발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학적 근거가 기독론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프는 자유교회의 교회론을 삼위일체적으로 재구성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모든 유비에는 한계가 있지만, 추상적이고 명제화된 개념에 비해 유비는 더욱 풍성한 이해를 함에 있어 많은 기여를 한다. 교회론적 인격과 교제의 개념에 있어서도 우리는 삼위일체에 대한 유비를 통해 더욱 풍성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비록 인간 존재는 피조물적 방식으로만 하나님에 상응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점을 인정하면서 우리의 인식을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다. “교회적 교제는 언제나 인간 존재를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게 하는 세례와 그러한 교제가 완성되는 종말론적인 새 창조 사이에 있는 길에서 실현된다. 이 지점에서 교회는 역사적 최소치와 종말론적 최대치 사이에 존재하게 된다(333). “우리의 교회에 대한 이해는 이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볼프는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의 관계를 삼위일체의 개념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라칭거로 대표되는 서방교회와 지지울라스로 대표되는 동방교회의 차이는 각각의 전통이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확연하게 구분된다. 우리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하며, 저자는 이를 ‘페리코레시스’의 개념을 통해 발전시키고 있다. 물론 삼위일체의 페리코레시스를 통해서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의 상관성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더욱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성령의 내주함’이 교회의 페리코레시스적 교제의 매우 주요한 근거로 제시하는데, 어떻게 성령의 내주함이 가능한지에 대한 더욱 구체적 설명이 있었다면(물론 논지를 벗어나는 우를 범할 수 있지만), 더욱 실제적이고 현실적이었을 것 같다. 


제 Ⅶ장에서 볼프는 교회의 ‘catholicity’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교회의 보편성이 전체성을 지향하긴 하지만, 저마다의 특정한 방식을 따라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는 ‘보편성’에 대해서 강조하지만, 정작 상대방의 교회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보편성을 잃어버렸다. 즉 보편성이라는 용어를 자신들의 교회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말처럼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논의는 항상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고자 노력할 때에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보편성’은 언제나 통일성과 다수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즉 전체성에 대한 이해는 그것을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통합과 차별의 정도에 따라 다른 것이다. 결국 교회의 내적 문제임과 동시에 외적 문제인데, 이러한 외적 차원은 포용성과 배타성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편성의 문제는 양적 이해와 질적 이해로 분류되는데, 저자는 양적 이해는 교회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보지 않는다. 지리적 차원에서의 보편적 확장은 교회의 결정적 특질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보편성의 양적 이해를 비판한다. 결국 보편성은 질적 이해로 귀결되며, 이는 충만함(fullness)으로 표현될 수 있다. 구원의 충만함이 실현된 교회가 보편적임은 모두가 동의하지만, 이를 어떻게 실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볼프는 이를 종말론적 구도 안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하나님의 종말론적 새 창조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 보편성은 오로지 하나님의 새 창조의 종말론적 전체성이라는 틀 안에서만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새 창조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영화롭게 된 백성들이 상호 내주하는 것이다(계 21-22장). 인간과 세계의 전체 역사는 심판에 의해 부정성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새 창조라는 포괄적 실체로 편입될 것이다. 새 창조는 따라서 그 시초로부터 계속된 창조세계 전체의 총괄갱신(recapitulation), 즉 하나님, 그분의 전체 백성, 전체 우주가 하나의 분화된 통일성을 구현할 전체성일 것이다. 그 분화된 통일성은 교제인데, 삼위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시'게 될(엡 1:10; 고전 15:28을 보라) 그러한 교제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 전일성은 오로지 하나님의 새 창조의 종말론적 전체성이라는 틀 안에서만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 전체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전일성은 결국 창조된 실제 전체를 위한 구원의 종말론적 충만함이 가지는 교회론적 차원이다.(p. 442)"



통일성은 각각의 독특성과 함께 가야하며, 교회는 이러한 이해를 잘 실현시키고 구현해야 할 것이다. 삼위 일체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전체 하나님의 백성과의 포괄적 관계를 통해 우리는 교회의 보편성뿐만 아니라 각 그리스도인의 인격적 보편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이러한 하나됨의 핵심적 요소이며,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그동안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우리의 호소는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렀던 것 같다. 논리적인 근거가 많이 부족하여, 그만큼 설득도 쉽지 않았다. 볼프의 이러한 주장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의 관계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갖게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 각 그리스도인들은 전 세계와 우주적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 어떤 관계를 갖게 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더불어 계속되는 질문은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된 한국 교회의 현실 가운데 어떻게 하나됨을 이룰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에서 탈피해서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어떻게 하면 향상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새 창조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영화롭게 된 백성들이 상호 내주하는 것이다(계 21-22장). 인간과 세계의 전체 역사는 심판에 의해 부정성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새 창조라는 포괄적 실체로 편입될 것이다. 새 창조는 따라서 그 시초로부터 계속된 창조세계 전체의 총괄갱신(recapitulation), 즉 하나님, 그분의 전체 백성, 전체 우주가 하나의 분화된 통일성을 구현할 전체성일 것이다. 그 분화된 통일성은 교제인데, 삼위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시‘게 될(엡 1:10; 고전 15:28을 보라) 그러한 교제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종말론적 전일성은 오로지 하나님의 새 창조의 종말론적 전체성이라는 틀 안에서만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 전체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전일성은 결국 창조된 실제 전체를 위한 구원의 종말론적 충만함이 가지는 교회론적 차원이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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