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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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023년이 남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올 해 최고의 추리, 스릴러, 호러 작품을 만난 기분이었다. 현실이라서 더 무서웠고, 지금은 그때와 다를 거라는 생각을 되뇌며 스스로를 진정시켜야했다.

 

우선 저자의 사연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스릴러보다 더 끔찍하다. 도대체 자가면역 뇌염이 어떻게 조현병으로 오진되어 강제 수감까지 이르렀는지. 그러나 누구의 사연인가가 중요한 책이 아니다. ‘누구라도오진을 받고 잘못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그 지점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

 

마침 지난 주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추천받아 넷플릭스에서 보았다(아직 다 못 봄). 다큐멘터리가 아님에도 낯설지 않은 사례들, 먼저 본 친구가 많이 울게 된 이유를 짐작해보며 아픈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정상성이 가진 폭력성과 질병분류화 작업이 임의적인 권력의 결정이 아니가 자주 생각한다. 여러 의문만큼 정신의학의 역사는 지뢰밭이라 이 책은 무척이나 충격적이다.



 

여러 시행착오는 필연적이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미스터리 로젠한(사고)실험은 충격의 정점이다. 다른 의학 분야와 달리, 정신의학이 다루는 분야는 보이는 병변의 실체가 없고,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도 많고, 강제 수용도 가능한 유일한 분야이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로젠할 실험의 내용을 읽고 나니, 내 기준에서 그는 정직한 연구자가 아니다. 실험의 목표와 결과에만 집착해서 실험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고 결과도 조작된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신의학의 현재와 한계를 더 이상 충격적일 수 없게 드러낸 역할을 분명하기도 하다.

 

로젠한의 논문은 과장되기도 했고 부정직한 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진실을 건드렸다.”



 

2023년에도 정신병을 고친다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다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를 본다(제목만 봐서 정확한 내용은 모름). 의학이 출현하기 전 19세기 이전의 인식과 대응법이다. 물론 초기 정신의학은 과학이 아닌 개념에 기반을 둔 위험천만한 치료가 많았다.

 

제한된 지식과 정보, 기술적 도움을 받아 뇌를 들여다볼 수 없었던, 참고한 데이터가 적었던 시대에, 의사는 어떤 최선의 진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오진으로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분들을 생각하면, 변명도 설명도 무용하겠지만,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그 당시의 제한 조건들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누구라도 성급해서는 안 된다. 오래 살피고 관찰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부족함이나 잘못은 정직하게 인정해야한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정신의학에서는 그런 노력과 신뢰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의 분류는 지금도 수정되고 변화하고 있다.


 

전문가도 종사자도 아닌 나는 정신의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모른다. 다만 상담과 복약과 치료가 필요한 수많은 이들의 안전을 염려할 뿐이다. 이 책은 의학 서비스 제공자이든 요구자이든,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왜 더 신중해야 하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극적이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인지할 수 있게 돕는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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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1-21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과 또 다른.악마(?) 였나.기억이.가물하지만.상사병을 마귀들린.것으로 고문 (?)하던 소설 생각이.나네요^^;;

poiesis 2023-11-30 21:47   좋아요 1 | URL
사랑과 또 다른 악마들... 혹시...? ^^ 근래도 무당 불러 굿하고 구타하다 사망 사고가 일어나곤 한답니다... 어휴....ㅠㅠ

얄라알라 2023-11-21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요 해뒀던 책인데 올려주신 리뷰보니 미리.벌 최소 4개각입니다

poiesis 2023-11-30 21:49   좋아요 1 | URL
저는 로젠한 실험에 대해서도 처음 배웠는지라 무척 충격 속에서 복잡한 생각으로 읽고 배웠습니다. 조작과 사기 요소가 있긴 하지만 어떤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하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원칙을 버리지 않고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를 만들어 내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어서 좀 더 안전한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한 권으로 끝내는 형사변호실무 - 조문, 판례, 기재례
안갑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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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과 변호는 일상에서 멀고 드문 일 같기도 하지만, 포털의 뉴스 화면만 봐도 매일 몇 건씩의 형사법 관련 사건들을 제목으로 보게 된다. 어쩌면 이미 주먹보다는 법이 가까운 시절이 오래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관련 소송, 판결, 항소, 엄벌청원과 관련된 일에 꽤 자주 참여를 했고, 탄원서를 지검과 법원에 송부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건 사고가 많고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들은 항상 존재한다.

 

오늘은 며칠 전에 소식을 들었지만, 다시 정리된 기사로 제공된 이 사건을 읽고 조금은 기쁘고 호흡이 편해졌다. 얼마만의 법정 정의(라고 동의할만한)를 목격하는 것인지. 7년이나 애써온 모든 분들의 노고가 존경스럽고 판결문의 시원하고 거침없는 지적에 안도가 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262306

<‘문단 내 성폭력가해자 박진성 감옥행··· 7년 만에 일상 되찾은 피해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262292

<‘성범죄 무고의 아이콘처럼 떠받들어지던 시인과, 동조하던 이들의 침묵>

 



법조인들이 직업으로 실무로 이 책을 보는 경우의 주안점은 일반 독자인 나와 다를 것이다. 이 책은 실무 지침서로서 활용되기에 가장 좋은 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절차를 따라가면서, 법적 구성 요건과 합법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법에 근거하여 법대로 처리한다는 말을 훨씬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성문화된 법이 있고 절차가 명시되어 있으니, 억울하게 법에 호소하지 못하는 이들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도 없기를 바란다.


 

더불어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여러 외부적 요인들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았다. 의도와 악의를 가지고 법적 판결이 나오기 전에 증거도 없이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가해하는 행위, 그 악랄한 불법 행위를 처벌한 엄중한 법이 촘촘하게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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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와인
백은주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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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이고 깊고 다양한 맛과 향의 미묘한 조화를 이룬 부르고뉴 와인처럼, 이 책은 세월 속에 깊이를 더해간 부르고뉴 와인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높여 줄 거라 기대한다. 국내 최초 본격이라니 새롭게 공부하고픈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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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 -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온 우울증, 그 우울과 함께한 나날에 관하여
린다 개스크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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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편 날은 우울감이 가볍지 않은 지난 주말이었다. 게으름이나 피곤이나 스트레스나 등등으로 명명할 수도 있지만, 익숙해서 반갑지 않은 이 무기력과 동반된 우울감...

 

그래봐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경건한 지옥 같은 일상이 있다. 용기가 가득한 책을 듯해서 읽기 전이지만 실물 책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

 

불안은 말 대신 행동으로 드러난다. 짜증, 분노, 침잠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본인도, 남들도 이유를 알기 어렵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개인의 역사도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남에게 이야기하고 반복해 서술하는 과정에서 유기체처럼 변한다. 어느 시점에서건, 내가 진짜아는 건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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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유발하는 사건들은 대개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 어떤 상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울감, 우울, 우울증, 명명과 진단 내용은 세월에 따라 변했고, 치료도 인식도 지식도 변해왔다. 주위에 우울감으로 상담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한편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다행이었고, 다른 한편 이렇게 힘든 이들이 많은가 해서 기분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받는다는 것은 (...) 자신의 감정을 애써 숨겨 문제를 악화시키는 게 아니라, 뭔가 개선하려고 행동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원인과 증상이 다른 만큼, 상담과 복약 효과도 다르다.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상담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일정 기간 복약은 심리적이든 실질적이든 도움이 되었다.

 

심리치료는 (...) 치료사와 환자가 긍정적이면서 서로 존중하는 작업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효과를 볼 수 없다.”

 

작가는 도움이 필요한 환자로서 자신의 상황을 더 이상 솔직할 수 없을 만큼 이 책에서 나누고, 도움을 제공하는 전문가 - 정신과 의사 - 로서 치료 과정과 변화에 대해서도 기록해 두었다.

 

인간으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여러 현실들이 복잡하게 함께 얽혀 있다. 저마다 안고 있는 경험들을 인정하고 다루지 않고서는 우울증이 낫도록 도울 수 없다.”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을 캐묻는 일은 전혀 할 생각이 없지만, 이렇게 나누기 위해 기록된 아픔을 만나는 일은 유사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내 상황을 타인의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경우 첫 발을 대딛을 가이드를 만나기도 한다.

 

문제는 개인이 용기를 내는 것보다 사회적 인식이다. 간혹 내 경험의 한계에 갇혀 이젠 달라졌지 않나,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다 호되게 충격을 받는 경험담을 듣게 된다. 잉글랜드 북부의 상황도 녹록치 않았구나 싶고, 한국 사회의 인식은 어떤지 새삼 궁금했다.

 

애쓴 분들 덕분에, 그분들이 남긴 좋은 책들 덕분에, 나는 투병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질병의 정상성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완치나 극복에 담긴 폭력성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책은 환자이자 의사로서의 경험을 독보적이고 진실되게 함께 숙고한 드문 책이다. 우울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자신의 상태를 알고 싶거나, 이미 경험하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저자와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약한사람으로 보일 만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낳는 폐해는 너무나 크다. 내 주변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다.”

 

제목처럼 린다 개스크는 먼저 용기를 내어 고백하였고, 전문가로서 사회에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상담의처럼 가이드를 아끼지 않는다. 회고록이자, 의학 에세이이자, 용기를 나누는 진술서이다.

 

EBS 위대한 수업에 우울장애 연구 영상이 있으니 찾아보셔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지불한 KBS 시청료 중 70원이 만든 기적 같은 선물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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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즈루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류리수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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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발표작 <마나즈루>2023년에 만나는 일이 잠시 현실의 시공간을 일렁이게 한다. 환상성을 지닌 문학에 대한 문해력이 낮아서 책점에 의지하듯 아무 곳이나 펴보았다. 전체 내용이 엄청 궁금해지는 매력적인 문장을 만났다.

 

남편은 이제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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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존재가 사라졌을 때, 남겨진 사람에게 얼른 극복하고 더 잘살아야지, 하는 격려는,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따라할 수는 없는 가혹한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비단 그 경우는 사람만이 아니어도 그랬다.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말의 뜻을 내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진단으로 이해받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우리 모두는 정해진 수명에 따라 누군가를 잃고 남겨지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경험하지 않은 것을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돌아가신 그리운 분들의 기억에 나는 여전히 문득 분해하곤 한다. 그 관계가 영원히 모두 사라졌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면서.

 

환상문학에 추리설정까지 복잡하게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일까 했던 기우는 읽는 동안 사라졌다. 오히려 나는 모호하고, 흔들리고, 분열되고, 아픈 케이를 만나 안도하고 위로 받았다. ‘상실에 대해 남겨진 아픔에 대해 차분하게 고요하게 치료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예상해도 결국엔 갑작스런 큰 상실을 겪으면, 상황을 견디고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감각을 차단하고 기억을 봉인하기도 한다. 적어도 둔화시키고 깊이 묻어두는 시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꺼내어 내가 지금은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생겼는지 시험해본다.

 

해결이라는 단어를 그리 신뢰하지도 지향하지도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상처를 봉합하고 둔중한 통증을 가진 흉터로 바꾸어 살아간다고 해도,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것들은 상실된 채로, 상처를 입은 채로, 그저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심각이라든지 경박이라든지 운운하며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죠, 살아 있다는 건.”

 

그럼에도 따라오는 유령이 케이의 분열된 일부였고, 따라왔던 이유가 케이가 자신을 되찾고 싶었던 이유였다면, 기억을 찾고 과거를 받아들이면서 사라진 결과가 다행이라 여긴다. 케이가 흘러가는 대로 살 수밖에 없어 그렇게 살다가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가야할 방향도 모르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나는 이제 장자의 호접몽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실재하는 삶을 산 것 같은데, 간혹 그 삶이 모두 현실이었는지, 현실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인지,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짧은 꿈인지, 삶과 죽음은 아주 얇은 경계라도 있었던 적이 있는지 모든 것이 모호해지곤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존재하게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나 눈으로 직접 보았던 모든 것도, 훨씬 전부터 잊고 있었던 것들도 모두 마음속에는 생생하게 존재한다. 그뿐인가. 눈으로 본 적이 없는 것, 결코 상상조차 한 적 없는 것까지도 거기에는 존재한다.”

 

그래서 태어난 존재들이 살아가는 삶이 공기 중에 그리는 어떤 무늬나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존재는 떠난 후 빛과 향이가 아름답기도 하다. 존재와 삶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모호한 환상성이야말로 정확한 기록법이 아닐까. 이 작품을 만나 다행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마나즈루가 좌표도 있고 행정상으로도 실재하는 장소라서 놀랐다. 언젠가 조금 두려워하고 많이 궁금해 하며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케이가 만난 바닷바람과 그 안개가 거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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