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 -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온 우울증, 그 우울과 함께한 나날에 관하여
린다 개스크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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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편 날은 우울감이 가볍지 않은 지난 주말이었다. 게으름이나 피곤이나 스트레스나 등등으로 명명할 수도 있지만, 익숙해서 반갑지 않은 이 무기력과 동반된 우울감...

 

그래봐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경건한 지옥 같은 일상이 있다. 용기가 가득한 책을 듯해서 읽기 전이지만 실물 책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

 

불안은 말 대신 행동으로 드러난다. 짜증, 분노, 침잠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본인도, 남들도 이유를 알기 어렵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개인의 역사도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남에게 이야기하고 반복해 서술하는 과정에서 유기체처럼 변한다. 어느 시점에서건, 내가 진짜아는 건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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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유발하는 사건들은 대개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 어떤 상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울감, 우울, 우울증, 명명과 진단 내용은 세월에 따라 변했고, 치료도 인식도 지식도 변해왔다. 주위에 우울감으로 상담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한편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다행이었고, 다른 한편 이렇게 힘든 이들이 많은가 해서 기분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도움의 손길을 청하고 받는다는 것은 (...) 자신의 감정을 애써 숨겨 문제를 악화시키는 게 아니라, 뭔가 개선하려고 행동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원인과 증상이 다른 만큼, 상담과 복약 효과도 다르다.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상담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일정 기간 복약은 심리적이든 실질적이든 도움이 되었다.

 

심리치료는 (...) 치료사와 환자가 긍정적이면서 서로 존중하는 작업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효과를 볼 수 없다.”

 

작가는 도움이 필요한 환자로서 자신의 상황을 더 이상 솔직할 수 없을 만큼 이 책에서 나누고, 도움을 제공하는 전문가 - 정신과 의사 - 로서 치료 과정과 변화에 대해서도 기록해 두었다.

 

인간으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여러 현실들이 복잡하게 함께 얽혀 있다. 저마다 안고 있는 경험들을 인정하고 다루지 않고서는 우울증이 낫도록 도울 수 없다.”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을 캐묻는 일은 전혀 할 생각이 없지만, 이렇게 나누기 위해 기록된 아픔을 만나는 일은 유사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내 상황을 타인의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경우 첫 발을 대딛을 가이드를 만나기도 한다.

 

문제는 개인이 용기를 내는 것보다 사회적 인식이다. 간혹 내 경험의 한계에 갇혀 이젠 달라졌지 않나,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다 호되게 충격을 받는 경험담을 듣게 된다. 잉글랜드 북부의 상황도 녹록치 않았구나 싶고, 한국 사회의 인식은 어떤지 새삼 궁금했다.

 

애쓴 분들 덕분에, 그분들이 남긴 좋은 책들 덕분에, 나는 투병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질병의 정상성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완치나 극복에 담긴 폭력성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책은 환자이자 의사로서의 경험을 독보적이고 진실되게 함께 숙고한 드문 책이다. 우울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자신의 상태를 알고 싶거나, 이미 경험하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저자와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약한사람으로 보일 만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낳는 폐해는 너무나 크다. 내 주변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다.”

 

제목처럼 린다 개스크는 먼저 용기를 내어 고백하였고, 전문가로서 사회에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상담의처럼 가이드를 아끼지 않는다. 회고록이자, 의학 에세이이자, 용기를 나누는 진술서이다.

 

EBS 위대한 수업에 우울장애 연구 영상이 있으니 찾아보셔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지불한 KBS 시청료 중 70원이 만든 기적 같은 선물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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