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의 고백 - 여자도 사람이외다 ㅣ 이다의 이유 3
나혜석 지음, 조일동 옮김 / 이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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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으신가요? 화가, 언론인, 문인이자 1896~1948년의 시기를 못 본 척, 안 들리는 척, 말 못하는 척, 글 못 쓰는 척 하지 않고 살아간 여성이기도 합니다. 저로서는 일대기와 글모음을 한 번에 만나 보는 일은 처음입니다. 이제까지는 작품이나 글 소개에 달린 인물 설명 정도만 읽었습니다.

 

군수였던 개화 관료인 아버지와 오빠의 권유와 지원으로 나혜석은 고등학교를 우등 졸업하고 일본유학을 갑니다. 지금도 비동시성이 한 가득인데 당시에 시대와 얼마나 불화하게 될 지는 이미 집안과 교육 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는 게 병’이라는 참 나쁘고 슬픈 속담처럼 내가 바라는 것이 사회와 불화하는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유학 시절부터 문인으로 글을 발표하고, 귀국 후 단편소설들을 발표하고, 만세운동 자금 모금과 확산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는 와중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애인도 사망하고 자신은 옥고를 치르기도 합니다.

 

1920년 오빠의 권유로 사귄 김우영과 결혼하고, 임신한 몸으로 21년에 유화개인전람회를 엽니다. 4월 출산 후 7월에 다시 글을 발표합니다. 만주로 이주한 후에는 여자 야학을 설립하기 위해 애쓰고, 미술작품에 출품에 입선을 합니다. 글과 그림을 발표하고 입선하는 활동은 놀랍게도 연이어 계속 이어집니다.

 

1927년 6월 남편과 함께 한 구미 여행길에서, 모스크바, 파리로,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을 여행하고, 남편은 법률 공부를 위해 베를린으로, 나혜석은 그림 공부를 위해 파리로 갑니다. 그곳에서 최린을 만나 연애를 합니다. 귀국 후 다시 전시회를 하고 연애 소문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어 이혼을 합니다.

 

이후 출품한 작품이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화재로 출품 예정인 그림들이 불에 타서 사라지고, 여자미술학사를 열어 운영하지만, 결혼과 이혼에 관한 글을 발표한 후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고 냉대 받고 결국엔 소외됩니다. 정확한 행적은 남지 않았지만 죽음의 풍경은 지독하게 쓸쓸합니다.

 

나도 사람이다 -노예도 사람이다, 흑인도 사람이다, 여자도 사람이다 등등 - 의 대가는 동서고금 목숨을 건 사실 인정 투쟁이자 금기에의 도전이었습니다. 후대에 태어난 이점으로 인해 저는 이 모든 선언들이 기막히고 서글프지만, 노예, 흑인, 여자는 사람이고 다른 소수자들은 짐승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럼에도 자유와 평등은 점점 확대되어 왔고 그러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사람은 자기 내심의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사람 일생의 일거리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 자손들을 무엇을 주어 살리잔 말이오?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잔 말이오?”

 

1920년대에 쓴 글이지만, 내용은 현재도 통상적인 여성의 경험을 담았습니다. 어머니가 되는 과정,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삶의 단절, 사회에서 가정으로 축소되는 여성의 현실,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 이혼 과정에서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관념, 현모양처를 제외하고는 고립시키는 가정과 사회... 지금이라면 비난은 덜했을까요.

 

“나는 자기를 천박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동시에 타인을 원망하기 전에 자기를 반성하고 싶습니다. 자기 내심에 천박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알고 고치는 사람은 인류의 보물이외다.”

 

영민하고 예민한 사람이니 글을 쓰면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기록해야했지요. 가정이 사회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글로 써서 스스로에게는 들려줘야 하니까요. 상처와 저항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남아 21세기에 독자들을 만납니다.

 

“우리 조선 여자는 너무 오랫동안 자기에 대한 제일 중요한 것을 잃고 살아왔습니다. 즉 나도 ‘다른 사람과 같이 생명이 있다.’ 하는 것을 억제하고 왔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제 숨소리를 들어보시오. ‘여자도 사람이다.’ 하는 자부심이 이상스럽게 전신에 흐르리다. 이렇게 여자의 눈이 뜨일 동시에 지금까지의 자기가 불행했고 불쌍했던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와 2022년 세계 곳곳의 여성들의 자리가 그리 멀리 떨어진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선을 위해 이대남을 잡았네 놓쳤네 하는 말들이 들려오는 지금은 더 그렇습니다.

 

“다만 사람의 탈을 썼고, 여성으로 태어났으며, 사랑으로 살아갈 도리만 찾을 뿐이외다. (...) 사상적 방황이란 그다지 못된 일이오니까? 방황해야만 할 때 방황하지 말라는 것은 못된 일이 아니오니까? 그다지 조바심을 하여 걱정할 것이야 무엇 있으리까? 방황도 아니 하고 고정부터 하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화석의 그림자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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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울증을 검색한 나에게 - 정신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한 권으로 보는 우울증의 모든 것 ㅣ 손바닥 마음 클리닉 1
김한준.오진승.이재병 지음 / 카시오페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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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어렵고 치료하고자 기다려도 환자가 오지 않아 안타까운 병이 무엇일까요. 인식에 관해서는 격세지감에 가까운 변화가 있었던 신경정신과 질환들입니다.
 
‘라떼는’을 너무 자주 쓰는 듯한데, 십 몇 년 전까지도 국가기관 관련 일 - 공무원이나 계약, 협업 - 을 하는 담당자의 경우에는 치료 자체를 알음알음 몰래 기록에 남지 않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원하지 않아도 엄밀히 말하면 불법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나마 의료면허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다행이랄까요.
 
인지 수준이 그러니 당연히 보험 등의 제도도 미흡했겠지요. 상담을 받고 울기만 하고 나와서 계산할 때 새로운 분노가 치민다는 분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치료에 있어서는 난처한 상황들이었습니다.
 
“자살 생각에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 않다'라는 소극적인 소망도 포함됩니다.” 25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 비해 정신건강에 대해 상담을 받는 비율이나 평생 유병률이 매우 낮은 편이다.” 47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한 것은 이제는 전문의들이 어떻게든 의식을 바꾸고 병원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여러 방식으로 눈에 띄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여러 가지 답답했으면, 바쁜 중에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유튜브도 하고, 책도 내고 할까요. 일의 양을 잠시 상상해보니 급 피곤해집니다.
 
“정신과 의사는 정신분석과 비교해서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주도하고 환자의 무의식적인 갈등이나 고민보다는 환자가 힘들어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증상을 빨리 완화시키고 환자가 일상생활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133
 
어쨌든 그런 친절한 책들이 반가운 독자로서 감사히 읽어 봅니다. 우울증 진단을 먼저 받고 범불안장애 진단도 나중에 받은 나름 당사자이기도 하니까요. 둘의 기저가 되는 감정의 내용이 상반된다고 들어서 처음엔 당황했고 이제는 뭐, 감기처럼 여깁니다.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투병이 아니라 치병을 택하니 여유가 좀 생깁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증상도 상황은 다 다릅니다. 일반화는 절대 금물!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 전달 물질들에 불균형이 옵니다.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은 기분, 식욕, 수면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125
 
“우울증은 스트레스와 신경 전달 물질 등의 교란과 같은 신경화학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다.’, ‘의지를 가지고 극복을 하려고 한다면 좋아질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환자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158
 
제목을 주의 깊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읽다 보니 ‘검색’하는 이들을 위해 아주 친절하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책입니다. 우울증의 증상과 특징부터, 종류와 양상, 우울한 상태로 가장 먼저 찾아오는 자기 비난과 책임 관련 인지와 경계, 치료의 종류,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제가 처음 검색한 누구라도 검색할 내용들을 깔끔하게 다 담아 주었습니다.
 
경험적으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면과 기록에 대해 언급을 선명하게 해주셔서 반갑고 안심이 됩니다. 수면이 중요한데 잘 못 자면 그것 때문에 더 불안해지고 악화되는 그런 미련한 일을 반복하긴 하지만, 덕분에 수면을 방해하는 일들을 많이 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정 일기’라고 표현한 하루의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독서감상문의 형태이긴 하지만 퇴고도 없고 오타도 많은 제 글은 사실 하루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기록과 일기에 가까운 글들입니다.
 
일기를 포스팅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감정과 생각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현실적 제약이 너무 큰일입니다. 들어줄 상대, 설명할 능력, 시간 확보 등등...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지요. 그래서 쓰는 사람들, 쓸 수밖에 없는 이들은 더 많아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이 글을 읽고 완치를 포기하는 분들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 것뿐이니까요. 언급했듯이 모두의 증상과 상황이 다 다르니 치료법도 처방과 치료 효과도 다릅니다.
 
단 한 가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남기라면, 어떻게든 ‘일상’을 일상처럼 이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잠도 못자고 식욕도 떨어지고 혹은 폭식을 하기도 하고 활동의지도 활동량도 적어지고 자책에 사로잡히고... 이런 상태일 수 있는데 무슨 말이냐 하실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래도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들을 꾸준히 받으며 일상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그곳이 유일한 회복처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도움을 청하시길, 도움을 기꺼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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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나라의 여행기 - 어느 괴짜 작가가 사상 최악의 여행지에서 발견한 것들
애덤 플레처 지음, 남명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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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글 쓰며 사는 영국인 작가, 짐작보다 더 영국적(?)일 지도 모르겠다. 투덜거림도 수다스러움도 빈정거림도 내가 만나본 영국인들에 한 두 스푼씩 간을 더한 진한 맛의 유형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 코드가 맞으면 신나게 웃을 수 있고 맞지 않으면 불편할 것이다.

 

여행에세이 중에 ‘가지 말라고’하는 글은 처음이다. 어쩌면 유일무이할 지도! 처음 책소개를 읽었을 땐 서유럽 백인 남성의 오만한 시선이면 어쩌나 불안했지만 궁금해서 읽어봐야 했다. 뭐가 되었든 다른 사람들 사는 모습을 많이 본 사람의 시야가 정말로 유치할 가능성은 낮다고 믿으면서. 그리고 나는 세상의 투덜이들이 좋다.

 

“그를 방문하고 나니 내가 다수에 속해 태어난 것, 즉 제1세계에서 백인이자 이성애자이며 영어를 하는 남자면서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행운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목적이 없이 훌쩍 떠나는 일을 못하고 산 - 가까운 강릉은 그렇게 가기도 했지만 - 나는 자신안의 ‘구멍’을 발견하고 집을 나선다는 여행의 이유가 뭉클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관광지와 맛집 투어가 아니라 자학과도 같은 여정을 택한 것도 짠하다.

 

“정신은 무너지기 쉽다. 삶이란 무딘 정신이 남기는 트라우마다.”

 

20년도 더 전에 이라크전에 반대하며 인간방패가 되겠다고 그곳으로 향한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내 동생이면 절대 못 가게 말렸을 것이 분명한. 나는 딱 스스로 그은 경계 바로 앞까지만 선선히 이동하고 누가 붙잡지 않아도 선을 넘어본 적 없이 사는구나 새삼스럽게 잠시 그런 생각, …….

 

이도저도 째려보려하면 걱정이라곤 없이 안전하고 지루해서 자아를 찾아 나선 인간들의 몸부림 정도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각자의 결핍은 의외로 다양하고 몸을 움직이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리고 경험을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용기와 끈기가 크게 요구되는 일이다.

 

“나는 기존 체제에 도전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내게 있어 기존 체제란 대부분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고마움을 모르는 마음이 적이다. 나는 따분함을 잘못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따분함은 불가능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상황인데, 나는 그걸 일상용품인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

 

관광지를 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전과 전쟁, 부패와 분쟁, 시위와 검문, 방사능 노출 그리고 북한까지 간다. 원제는 Don't go there이다. 가지마라... 네, 가지 않을 겁니다...

 

오래 전 영국에서 함께 공부한 선배를 친구와 함께 만난 적이 있다. 둘 다 이탈리아인들이다. 막 사업을 시작했는데 한국어와 영어를 하고 가능하면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도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고 취업 의사를 물었다. 이탈리아와 한국 중 어디서 근무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한국 평양이라고…….

 

네... 어쩌면 부모 형제 친척 친구를 다시는 남한국South Korea에서 만나지도 못하고 입국도 못할 지도 모를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한 취업 제안이었다.

 

어제는 물리학자가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연이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오늘은 작가가 여행기가 이상한 것은 ‘이 세상이, 모든 곳이 이상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 인상적이다. 두 이야기 모두에 공감하고 동감하니 마음이 더 간질간질하다.

 

여전히 생각 속에서는... 인간이란 국가란 문명이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이상도 구체적 이미지도 가이드도 있다고 여기지만 세상에 정답처럼 퍼즐 조각처럼 딱 맞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다 다르고 다 이상하다. 때론 다 미친 듯하고 다 무의미하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란, 망상, 희망, 꿈, 신경증, 짝사랑, 억압된 트라우마, 부정, 솔직함, 유머, 진지함, 친절함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변덕의 집합체이다.”

 

세상은 거대한 책이기도 하고 여행은 그 책을 펼쳐보는 일이기도 하다. 내 방에서 책을 열어 여행을 떠나고 경험하고 배우고 무언가가 바뀌듯, 여행의 경험도 그러하다. 작가는 쓰기를 통해 다른 세상들을 창작하기도 하는 사람이니 다른 여행자와 다른 점이 거기 있기도 하다.

 

좀 더 삐딱하고 뾰족하고 날카롭고 불편할 것이란 기대했는지 순순하고 선선한 고백과도 같은 문장들에 빗장이 풀리듯 마음이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마치 같이 뒷담화하고 욕하려고 했는데 진솔한 얘기만 하게 된 경우랄까. 다행이다, 좋다.

 

“인생의 모든 것은 복용량에 달렸다. 나는 그간 엉뚱한 양을 복용해왔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져도 낭만적인 신기루나 새것을 향한 방랑벽으로 달아나지 않고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베를린에, 아네트에게, 작가로서의 내 직업에 전념하고 버틸 준비가 이제 되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바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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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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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에 출간된 <피버드림>으로 처음 만난 작가입니다. 차분하게 숨 막히는 공포스러운 이야기에 압도되었지요. 괴물이나 잔혹범죄라 무서운 게 아니라,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불통의 문제, 소통의 어려움을 간단한 질문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여주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미칠 듯했습니다.

 

정신에 뿌연 막이 덮여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딸의 안부에 집착하는 애정에 쓰리고 슬프기도 했지요. 미스털, 스릴러, 서스펜스 장르 작품을 꾸준히 읽는 편인데 서늘하고 스산하게 강렬한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독특한 그 느낌이 내내 남아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되었을 때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_P3eM4FltM

 

12월에 창비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범상치 않을 것입니다. 소재는 다르지만 초연결 시대의 소통 혹은 경계의 무너짐이니 전혀 다른 문제의식도 아닌 듯합니다. 차분한데도 강렬하게 몰아치는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인형과 아이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일수도 있지만 그럴 리가 없지요. 특히 인형과 아기 혹은 아이들로 장난치는(?) 작품들에 치를 떠는, 무서워 못 보는 저는 실은 표지에서부터 이미 공포에 사로잡혀 읽습니다. 원제 ‘켄투키Kentukis’가 토끼 인형이 담긴 상자에 쓰여 있네요.

 

“각기 다른 동물 모습을 한 반려로봇 - 장난감 ‘켄투키’가 전세계 사용자들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켄투키의 특징은, 그것을 ‘소유하는’사람과 앱을 통해 ‘조종하는’ 사람이 다르며 서로가 서로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 모든 매칭은 서버에서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소유자와 사용자(조종자)가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일상과 세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달라진다. 핵심은 켄투키의 눈이 ‘카메라’라는 것이다. 사용자는 그 눈을 통해 소유자의 삶을 지켜볼 수 있다.”

 

매일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삶에 대해 이쯤해서 한번 여러모로 생각 좀 해보자, 하고 작정하고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재미없이 그런 건 아니고 은근하지만 넓게 작품의 전반에 퍼져 있지요.

 

현실의 우리가 겪는 모든 삶의 고비들, 못마땅한 주어진 환경, 생존, 폭력, 이별, 슬픔, 사별, 아픔, 애정과 관심에의 갈구, 그리움, 후회, 돈, 범죄... 전 세계인들의 결핍과 욕망을 노리는 상품과 사업은 네트워킹이라는 통로가 확보되면 수익이 보장되는 탄탄한 판로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켄투키 사용자(조종자)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도 내 칸투키를 포기할 수 없는 부모, 칸투키 소유자의 삶에 익명으로 존재하는 사용자에 완전하게 동일화되어 소유자를 상실하고 자살하는 이, 현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화면 속 세계에 정서적으로 함몰된 사용자……. 현실 도피처가 책과 영화인 SNS 이용자로서 긴장과 불안 없이 읽기 어렵습니다.

 

연령이 높은 부모님들이 혼자 사시는 게 불안해서 CCTV를 설치하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의도는 선하고 실제로 식사와 약 등을 챙겨 드리기도 하는 순작용이 있습니다. 가족 내에서 관리가 잘 된다면 별 문제가 안 되겠지요.

 

네트워킹도 심지어 작품 속 켄투키도 그런 방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겠지요. 저자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제는 이 기술의 태생이 인류 복지를 위한 국제기구의 협력에서 탄생하고 보급된 것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것에도 있겠지요. 목적도 의도도 다르니까요.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고 곧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메타버스의 세계는 어떨까요. 소비와 삶의 선택하는 판단력과 힘을 어떻게 잘 길러야하나... 힘겨운 기분이 듭니다. 진화하지 않는 인간의 뇌, 근절되지 않는 폭력과 범죄, 반성하지 않는 소비와 수익 숭배, 안전망이 부족한 프라이버시, 비대면의 방식으로 견디는 수밖에 없는 판데믹…….

 

켄투키에 심어준 카메라보다 문명을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고 통렬하게 고발하고 경고하는 저자와 같은 작가가 있으니... 심연을 뒤흔드는 공포와 충격을 통해서라도 문제적 상황을 깨부수는 이런 기회를 희망이라 믿어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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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에서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7
우다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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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 작가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은 표지부터 내용까지 여러 모로 홀려서 내 문해력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며칠을 필사하며 읽은 행복한 기억이 있다. 함께 읽었던 친구가 <북해에서>를 먼저 읽고 분명 좋을 거라 선물해 주었다.

 

일단... 내게 익숙한 핀소설 표지가 아니라 무척 놀랐다. 이동기 교수의 아토마우스! 내가 오독하고 오해하는 우다영 작가의 작품과 찰떡 조합인 듯. 익숙하지만 낯설고 선입견과 편견을 뒤흔드는 두 예술 작품의 콜라보 같다는 생각.


북해는 내가 좀 오래 보았지, 대서양 보고 흘린 눈물이 적지 않다,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 작품의 북해는 창작된 가상의 세계이다. 현실의 북쪽이 사는 일보다 죽는 일에 더 가까운, 고단한 삶과 전투를 상징하듯 이 작품의 고민도 비슷한 결이다.

 

여섯 살 때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는 사실에 엄청 많이 울었다. 상례 때보다 이때 더 아프고 슬펐던 듯하다. 잊고 살다가 수명의 반환점을 대충 돌았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자 다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울림이 커진다.

 

슬프고 허무하고 허탈하다기보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 번거로웠다. 간단한 것들부터 이런저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준비를 해두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는 건 아니지만,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순간들은 종종 있다.

 

“믿기지 않아. 하지만 모두 진짜 일어난 일이야.”

 

“초석을 아무리 잘 쌓더라도 삐끗하면 잘못되는 게 생이다.”

 

뭘 애쓰고 사는 일이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는 일이 무색하게 삶이 중단되는 이들을 보면, 세상을 영리하게 사는 방법은 따로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개체는 사라지고 유전자만 남길 수 있는 생물학적 조건화에 맞춰서 재빨리 번식을 해두고, 의미라곤 없는 생의 시간을 종교든 원칙이든 고민과 갈등 없이 뭐라도 믿으며 평온하게 보내는 것.

 

예측할 수 없는, 소중한 것도 없는, 인간의 생명 따위 관심도 없는 잔인한 세상의 진실을 밝히고 메울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그 짓쳐드는 허무에 붙잡히지 않으려 무언가에 몰입하며 각자의 의미를 찾아 견디고 버티는 것이다.

 

“나는 기다린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물줄기의 근원과 나의 기원. 오래 전에 이미 시작되어 언제나 귓가에 어려 있는 자장가를 소리 없는 입술로 따라 부른다.”

 

우다영 작가의 작품, 분위기, 문장들에 왜 홀렸는지 다시 기억이 난다. 정면으로 마주하기에 무시무시한 진실을 폭력적으로 강요받지 않을 수 있어서이다. 작가는 상처가 덜할 수 있는 방법들로 길안내를 해준다. 사유 대신 감각을, 현실감 대신 몽환을, 다큐 대신 이야기를.

 

가장 생존에 최적화된 유전자들을 물려받고도 언제 왜 어떻게 죽음을 맞을지 알 수 없는 생명체들과 삶에 대해 오래 고민한 작가가 전하는 위로여도 격려여도 좋을, 아직 살아있는 몸의 온기처럼 읽힌다. 이 모든 게 다 우연이면 어떠냐고, 무수한 죽음 가운데 좀 더 살아 있는 것이 왜 무의미하기만 할 뿐이냐고.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아니라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음’을 이해하려는 끝없는 고행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태도에 있어서 나선과 중위는 닮아 있다. 삶이 형벌처럼 부여한 ‘무의미의 의미’를 두려워할지언정 그 존재를 모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 있다. (...) <북해에서>는 그 기묘함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으면서도 모래알처럼 계속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태도에 사로잡혀 있다.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없으리만치 우스꽝스럽게 보이겠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고매하고 또 숭고한 태도에.”



나이가 들면 어리석어지기만 한다는 데 삶의 의미meaning of life를 찾고 싶어 괴로운 시기가 끝나고 의미가 가진 수명life of meaning을 더 궁금해하며 늙어가니 그것만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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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

오경

미림

북해의 왕

붉은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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