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나라의 여행기 - 어느 괴짜 작가가 사상 최악의 여행지에서 발견한 것들
애덤 플레처 지음, 남명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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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글 쓰며 사는 영국인 작가짐작보다 더 영국적(?)일 지도 모르겠다투덜거림도 수다스러움도 빈정거림도 내가 만나본 영국인들에 한 두 스푼씩 간을 더한 진한 맛의 유형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코드가 맞으면 신나게 웃을 수 있고 맞지 않으면 불편할 것이다.

 

여행에세이 중에 가지 말라고하는 글은 처음이다어쩌면 유일무이할 지도처음 책소개를 읽었을 땐 서유럽 백인 남성의 오만한 시선이면 어쩌나 불안했지만 궁금해서 읽어봐야 했다뭐가 되었든 다른 사람들 사는 모습을 많이 본 사람의 시야가 정말로 유치할 가능성은 낮다고 믿으면서그리고 나는 세상의 투덜이들이 좋다.

 

그를 방문하고 나니 내가 다수에 속해 태어난 것즉 제1세계에서 백인이자 이성애자이며 영어를 하는 남자면서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행운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목적이 없이 훌쩍 떠나는 일을 못하고 산 가까운 강릉은 그렇게 가기도 했지만 나는 자신안의 구멍을 발견하고 집을 나선다는 여행의 이유가 뭉클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관광지와 맛집 투어가 아니라 자학과도 같은 여정을 택한 것도 짠하다.

 

정신은 무너지기 쉽다삶이란 무딘 정신이 남기는 트라우마다.”

 

20년도 더 전에 이라크전에 반대하며 인간방패가 되겠다고 그곳으로 향한 젊은이들이 떠올랐다내 동생이면 절대 못 가게 말렸을 것이 분명한나는 딱 스스로 그은 경계 바로 앞까지만 선선히 이동하고 누가 붙잡지 않아도 선을 넘어본 적 없이 사는구나 새삼스럽게 잠시 그런 생각…….

 

이도저도 째려보려하면 걱정이라곤 없이 안전하고 지루해서 자아를 찾아 나선 인간들의 몸부림 정도로 보이기도 하겠지만각자의 결핍은 의외로 다양하고 몸을 움직이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리고 경험을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용기와 끈기가 크게 요구되는 일이다.

 

나는 기존 체제에 도전하고 있었다유일하게 다른 점은 내게 있어 기존 체제란 대부분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고마움을 모르는 마음이 적이다나는 따분함을 잘못 바라보고 있었다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따분함은 불가능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상황인데나는 그걸 일상용품인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

 

관광지를 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전과 전쟁부패와 분쟁시위와 검문방사능 노출 그리고 북한까지 간다원제는 Don't go there이다가지마라... 가지 않을 겁니다...

 

오래 전 영국에서 함께 공부한 선배를 친구와 함께 만난 적이 있다둘 다 이탈리아인들이다막 사업을 시작했는데 한국어와 영어를 하고 가능하면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도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고 취업 의사를 물었다이탈리아와 한국 중 어디서 근무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한국 평양이라고…….

 

... 어쩌면 부모 형제 친척 친구를 다시는 남한국South Korea에서 만나지도 못하고 입국도 못할 지도 모를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한 취업 제안이었다.

 

어제는 물리학자가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연이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오늘은 작가가 여행기가 이상한 것은 이 세상이모든 곳이 이상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참 인상적이다두 이야기 모두에 공감하고 동감하니 마음이 더 간질간질하다.

 

여전히 생각 속에서는... 인간이란 국가란 문명이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이상도 구체적 이미지도 가이드도 있다고 여기지만 세상에 정답처럼 퍼즐 조각처럼 딱 맞는 건 아무 것도 없다다 다르고 다 이상하다때론 다 미친 듯하고 다 무의미하다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이상하기 때문이다우리는 혼란망상희망신경증짝사랑억압된 트라우마부정솔직함유머진지함친절함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변덕의 집합체이다.”

 

세상은 거대한 책이기도 하고 여행은 그 책을 펼쳐보는 일이기도 하다내 방에서 책을 열어 여행을 떠나고 경험하고 배우고 무언가가 바뀌듯여행의 경험도 그러하다작가는 쓰기를 통해 다른 세상들을 창작하기도 하는 사람이니 다른 여행자와 다른 점이 거기 있기도 하다.

 

좀 더 삐딱하고 뾰족하고 날카롭고 불편할 것이란 기대했는지 순순하고 선선한 고백과도 같은 문장들에 빗장이 풀리듯 마음이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마치 같이 뒷담화하고 욕하려고 했는데 진솔한 얘기만 하게 된 경우랄까다행이다좋다.

 

인생의 모든 것은 복용량에 달렸다나는 그간 엉뚱한 양을 복용해왔다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져도 낭만적인 신기루나 새것을 향한 방랑벽으로 달아나지 않고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베를린에아네트에게작가로서의 내 직업에 전념하고 버틸 준비가 이제 되었다나는 내 이야기를 바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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