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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평점 :
2021년 3월에 출간된 <피버드림>으로 처음 만난 작가입니다. 차분하게 숨 막히는 공포스러운 이야기에 압도되었지요. 괴물이나 잔혹범죄라 무서운 게 아니라,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불통의 문제, 소통의 어려움을 간단한 질문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여주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미칠 듯했습니다.
정신에 뿌연 막이 덮여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딸의 안부에 집착하는 애정에 쓰리고 슬프기도 했지요. 미스털, 스릴러, 서스펜스 장르 작품을 꾸준히 읽는 편인데 서늘하고 스산하게 강렬한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독특한 그 느낌이 내내 남아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되었을 때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_P3eM4FltM
12월에 창비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범상치 않을 것입니다. 소재는 다르지만 초연결 시대의 소통 혹은 경계의 무너짐이니 전혀 다른 문제의식도 아닌 듯합니다. 차분한데도 강렬하게 몰아치는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인형과 아이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일수도 있지만 그럴 리가 없지요. 특히 인형과 아기 혹은 아이들로 장난치는(?) 작품들에 치를 떠는, 무서워 못 보는 저는 실은 표지에서부터 이미 공포에 사로잡혀 읽습니다. 원제 ‘켄투키Kentukis’가 토끼 인형이 담긴 상자에 쓰여 있네요.
“각기 다른 동물 모습을 한 반려로봇 - 장난감 ‘켄투키’가 전세계 사용자들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켄투키의 특징은, 그것을 ‘소유하는’사람과 앱을 통해 ‘조종하는’ 사람이 다르며 서로가 서로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 모든 매칭은 서버에서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소유자와 사용자(조종자)가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일상과 세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달라진다. 핵심은 켄투키의 눈이 ‘카메라’라는 것이다. 사용자는 그 눈을 통해 소유자의 삶을 지켜볼 수 있다.”
매일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삶에 대해 이쯤해서 한번 여러모로 생각 좀 해보자, 하고 작정하고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재미없이 그런 건 아니고 은근하지만 넓게 작품의 전반에 퍼져 있지요.
현실의 우리가 겪는 모든 삶의 고비들, 못마땅한 주어진 환경, 생존, 폭력, 이별, 슬픔, 사별, 아픔, 애정과 관심에의 갈구, 그리움, 후회, 돈, 범죄... 전 세계인들의 결핍과 욕망을 노리는 상품과 사업은 네트워킹이라는 통로가 확보되면 수익이 보장되는 탄탄한 판로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켄투키 사용자(조종자)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도 내 칸투키를 포기할 수 없는 부모, 칸투키 소유자의 삶에 익명으로 존재하는 사용자에 완전하게 동일화되어 소유자를 상실하고 자살하는 이, 현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화면 속 세계에 정서적으로 함몰된 사용자……. 현실 도피처가 책과 영화인 SNS 이용자로서 긴장과 불안 없이 읽기 어렵습니다.
연령이 높은 부모님들이 혼자 사시는 게 불안해서 CCTV를 설치하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의도는 선하고 실제로 식사와 약 등을 챙겨 드리기도 하는 순작용이 있습니다. 가족 내에서 관리가 잘 된다면 별 문제가 안 되겠지요.
네트워킹도 심지어 작품 속 켄투키도 그런 방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겠지요. 저자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제는 이 기술의 태생이 인류 복지를 위한 국제기구의 협력에서 탄생하고 보급된 것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것에도 있겠지요. 목적도 의도도 다르니까요.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고 곧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메타버스의 세계는 어떨까요. 소비와 삶의 선택하는 판단력과 힘을 어떻게 잘 길러야하나... 힘겨운 기분이 듭니다. 진화하지 않는 인간의 뇌, 근절되지 않는 폭력과 범죄, 반성하지 않는 소비와 수익 숭배, 안전망이 부족한 프라이버시, 비대면의 방식으로 견디는 수밖에 없는 판데믹…….
켄투키에 심어준 카메라보다 문명을 더 선명하게 들여다보고 통렬하게 고발하고 경고하는 저자와 같은 작가가 있으니... 심연을 뒤흔드는 공포와 충격을 통해서라도 문제적 상황을 깨부수는 이런 기회를 희망이라 믿어 보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