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 인문학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주도하라
한지우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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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진지하지 않은 얘기 나눔 중에 문득 발견(?)한 것. AI인공지능이라는 것이 형태만이 아니라 기능과 생각까지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기술이라면, AI 역시 당연히 인간학/인문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진될 때까지 아무 이야기나 하고 나니, 인간이란 엄청난 나르시시스트란 결론이다. 잠시 그 밖의 아무 것도 아닌 듯했다. 자기 존재의 근원과 원리를 가장 간절히 알고 싶어 하고, 다른 생명도 인간화 시키지 않으면 공감이 어렵고, 결국엔 자신과 닮은 존재를 창조해내는데 에너지를 끌어 쓰는 중이다.

 

인간이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아무리 어설퍼도 애정과 호감으로 지켜봐준다. 로봇의 그 엉성한 움직임에 열광하는 이들을 떠올려보라.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는 그 같은 인간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해내고 자기 종의 안위와 번성을 위해 인간의 감정처럼 보이는 표정을 만드는 법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대화 이후에 이 책의 제목은 상식처럼 느껴진다. 구체적인 내용이 어쩌면 AI 양육법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며 펼쳐보았다.

 

“정보화 사회 이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기업과 개인이 주목받는 새로운 사회가 열릴 것입니다. (...) 인간성의 영적 측면이 다시 복원되며 예술, 아름다움, 사랑, 상상력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시대를 말합니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미래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권력이나 돈, 힘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 의미, 유대 등입니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는 일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믿음, 정서, 예술, 사랑, 아름다움의 가치가 부, 명예, 권위의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런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을 ‘호모 이모셔널리스Homo Emotionalis라고 부릅니다.” 롤프 옌센

 

“하이콘셉트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는 상상력’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이터치는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성’을 말하죠.”

 

AI에게 인문학을 잘 공급하게 위한 사회적 패러다임 변화와 인간의 적응에 대한 내용이 펼쳐진다. 저자는 인간이 만들어 내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무척 깊이 염려하는 듯하다- 그렇게 읽힌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인간 독자에게 관계 설정을 잘 하라고 이것저것 조언해 주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시대의 주도권이 ‘인공 지능의 시대’라고 불리는 시간에, 인간이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미래를 살아가는 가치관은 어때야 하는지를 고민하라는 조언이다. 그것도 치열하게. 더 나아가 그래야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 불가능해지는 방법은 자신만의 고유한 잠재력을 발굴하고 자신만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고 품격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쉽고 가볍게 정리된 책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될지 안 될지 실증 전이긴 하지만 일종의 스릴러처럼 느껴지는 건 과도한 상상력 탓일까. MS, 페이스북, 나이키 등이 숙고할 겨를도 없었는지 다급한 모습으로 ‘메타버스’로 속속 입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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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플레이어 그녀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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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를 읽은 분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다. 나와 지인들은 통쾌함을 지나 슬픔이 오래 머물다 떠났다고 했다. 마지막 선택은 다시 떠올려도 서럽기만 하다. 작가는 현실도 나도 변한 것이 없다, 란 항변을 전하듯 전작을 내포한 신작을 내놓았다. 이 한 페이지는 마음이 따갑게 쓸리는 오마주와도 같다.



오랜 역사와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브누아 필리퐁이란 작가 한 명이 창작의 세계에서 성폭력범들을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한 마디로 단죄하는 것이 통쾌하다. 심지어 안심도 된다. 저자의 글쓰기 동력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이고, 겨우 두 권 읽었지만 접근방식도 해법도 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베르트가 루거 총을 들었다면 막심은 포커 카드를 들었다. 베르트가 철저히 잃고 또 잃어 빙하처럼 외롭고 단단해졌다면, 막심은 동료들이 있다. 포커 플레이어인 자신을 도울 사기꾼 작크와 우울한 상습 자살시도자인 단짝 친구인 발루. 나중에 합류(?)하는 7세 자폐아 장은 연대와 친밀도를 더한다.

 

“발루는 포커 테이블에 앉는 즉시 변신을 수행했다. 이 정신분열이 그에게 현재를 잊게 해주었고, 그렇게 존재의 고통을 잊고서 자살충동에서도 벗어났다.”



주인공이 당한 폭력의 일부가 슬그머니 잊힐 만큼, 동료들의 삶 역시 처참했다. 작가는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이렇게 연대하고 저렇게 복수하고 그렇게 웃으며 살라고 지시어를 입력하는 듯도 하다. 그럼에도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연대하고 있다는 느낌. 브누아 필리퐁은 특징이 뚜렷한 자신만의 세계를 착착 만들어가는 중일 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개인으로 솔직하게 말해보라면 나는 현실의 모든 성폭력범들이 이제껏 호소해온 말을 한 마디도 믿지 않는다. 실수, 기억이 안 난다, 후회하고 있다, 죽을 줄 몰랐다,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등의 X소리들.

 

“용서는 무슨, 용서 따위 개나 주라지. 놈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2021년 한국의 성폭력 생존자들은 여전히 신고보다 안전한 분리/격리/이별을 원한다. 왜 그럴까? 설마 신고 정신이 없어서? 기가 막히게도 프랑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국적 불문 모두 설명 가능한 현실을 대화 속에 펼쳐 둔다.

 

“남자들은 강간당한 여자들이 왜 신고하지 않는지 의문일 거야. 그건 여자들이 혹여 용기를 내어 신고를 한다 해도, 열에 아홉은 남자가 입건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거’가 없다는 게 이유지. 처방전은 아예 말도 하지 않을게. 무슨 독감이나 되는 듯 10년 뒤엔 상처가 저절로 치료된다는 식이니. 법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도와주지 않아. 사회도 나을 것이 없고, 그래.”

 

답답하고 분하고 역겹지만, 사적복수만이 유일하게 통쾌한 해법이라 부추기려는 생각은 없다. 그 이유는 생존자가 복수를 위해 감수해야하는 대가가 너무 처참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작이 서러운 이유는 결론을 다 알고도 선택했던, 삶을 염두에 두지 않은 주인공의 결정 때문이다.

 

오히려 그딴 XX 다 무시하고 지치도록 아주 잘 살아보는 것이 가장 신나는 방식의 복수라고 믿지만, 그런 생각은 마치 놀이기구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어 당사자에게는 차마 그런 말을 건넬 수 없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작가가 무거운 주제를 강인한 위트를 섞어 풀어내는, 용서와 변명 따위 용납 않는 복수가 통쾌하다는 독자들도 있지만, 망가지지 않을 수 없는 복수는 너무 아프다. 여전히 나는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가 마련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사적인 복수를 하지 않아도 충분한 처벌이 재까닥 실행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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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돈의 역사 - 명화로 읽는 돈에 얽힌 욕망의 세계사
한명훈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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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불문 역사극을 즐기진 못하지만, 역사서 읽기는 재밌으니 이상한 괴리다. 현실이 창작보다 더 극적이라 그럴 수도 혹은 인류가 이렇게 살아 왔구나 하는 나 자신의 현존과도 연계되는 역사를 만나는 것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근래에는 하나의 소재나 주제에 집중해서 역사 이야기를 하는 ‘주제사’라는 방식의 역사서를 종종 읽는다. 무척 재미있다. 대상이 ‘역사적historic'하다고 생각 못한 뜻밖의 조우일수록 더 재미있기도 하다.

 

지구 전체를 공격적으로 소비해야 유지되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우려와 대안 모색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울하게 접하다가, 우리가 의미와 기능을 오해하고 과장하고 물신으로 격상시킨 ‘돈’에 관한 그림 가득한 반가운 책을 만난다.

 

“매혹적인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매료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세이렌의 이름을, 오늘날, ‘경고’라는 뜻의 단어 ‘사이렌Siren’으로 쓰는 것을 보면 일리 있는 해석이지 싶습니다. (...) 머니money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주노 모네타juno Moneta’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요. 모네타 또한 ‘경고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돈의 흐름으로 알아보는 경제와 관련된 세계사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독서 대상의 폭이 넓은 좋은 책이다. 상세하게 분류된 목차에 비해 분량도 내용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 일화와 명화를 함께 보여주는 멋진 구성이라 잠들기 전 구경하듯 조금씩 읽기에 좋았다.

 

“프랑스어로 ‘성城’을 뜻하는 부르그bourg란 새롭게 생긴 상공업 도시를 의미하며 부르주아bourgeois는 그곳에 사는 상공인들을 의미합니다.”

 

차분하게 역사적 내용을 전해주는 파트도 있고, 세상엔 모르는 일이 무수하다고 탄식하게(?) 되는 놀라운 내용도 있다. <오즈의 마법사>와 미국의 화폐 역사 이야기는 나만 몰랐던 것이었나.

 

“<오즈의 마법사>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1776년 미국 독립 당시 금과 은이 모두 부족했기 때문에 금화와 은화를 공통 사용하다가, 화폐 독립을 목적으로 한 ‘본위제’를 채택한다. 처음에는 금과 은 모두를 본위화폐로 사용하자는 제안이었다. 문제는 1800년대 금광이 발견되면서 은의 가치가 상승하고, 이후 은광이 발견되면서 금의 가치가 상승하니, 사용자들과 사회에 혼란이 야기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결국 개혁의 내용은 금만을 화폐로 인정하는 금본위제로 채택했지만, 은을 주로 쓰던 농민들은 이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으면서 갈등이 심화된다. 즉 도로시는 농촌 사회의 미국인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노란벽돌길은 본위 화폐가 된 금, 도로시의 소원을 들어주는 은 구두는 과거의 본위화폐 은을 상징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니 풍자문학을 동화로 읽고 말았다.

 

그리고 세계 통화의 기준이자 중심이 된 미국달러의 기축통화 결정 과정도 상세히 복기할 수 있어 유익했다. 금이 본위 화폐로 자리 잡은 후, 다시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하면서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가 확립된 것이다. 세계 경제는 현재에도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부를 안겨준 광산을 신의 축복으로 여겼고, 교황은 요아힘스탈에 축복의 세계를 베풀었습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은화는 ‘요아힘 골짜기에서 나온 돈’이라는 뜻으로 ‘요하임 스탈러 (...)’ 이후 ‘탈러Taler’로 줄여서 부르기 시작합니다. (...) 지금 쓰고 있는 ‘달러Dollar’의 어원입니다.”

 

환원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수명이 다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역사란 결국엔 여러 분야의 근원과도 만나는 공부이다. ‘어원학’이라는 것 역시 ‘맥락context’에서 떼어낸 건조하고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수학보다는 스토리가 조금이라도 있는 물리학을 좋아한 인간의 특성이 강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더 가깝게 느끼게 되는 조선의 역사...

 

“함경도 단천의 기술자 ‘김감불’과 ‘김검동’은 1503년 관가를 찾아갑니다. 이들은 납광석에서 은을 분리하는 ‘연은분리법’을 개발한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개발한 이 기술은 유럽이나 중국보다 뛰어난 은 제련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뛰어난 기술은 조선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전수됩니다.”

 

이 역시 모르던 내용이고 몹시 속이 쓰린 결과이다. 사농공상의 위계적 질서가 공고했던 조선에서 ‘은광석에 들어 있는 납 등의 불순물을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 제련하는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여 명나라와의 무역에도 큰 기여를 했으나,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적폐 대상으로 몰린다.

 

이전 정권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목적이 컸을 이 조치로 기술자들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당연시 연은분리법은 일본에 전수되었고, 16-18세기에 거쳐 세계 은 생산량의 1/3을 일본 내에서 생산하며 세계 무역사의 한 축이 되는 패권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역시 역사서 읽기는 무척 재미있다. 거의 모든 역사책들을 좋아하는 변별력이 약한 독자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명화와 화폐가 연결된 경제사이자 세계사로서 특이하고 가독성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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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숲으로
장세이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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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지나치게 번다한 날, 경계심이 낮아지고 기분이 좋은 날의 마무리가 때론 이렇게 되는 걸 징크스 삼진 말아야겠다. 바빠서 정신도 혼미하고 벅찼다. 그래도 꼼짝 안하고 영화 보는 것보다 오늘 마무리는 책으로 하고 싶다. 흔히 숨 쉴 틈 없이 바빴다고 하니, <숨 쉬러 숲으로>를 읽어야겠다. 숨 쉬러 책 속으로.

 

마지막 장이 스포가 되는 경우는 많으나, 이 책은 첫 장이 (내게는) 엄청 인상적이다. 에세이인데 소설처럼 뒷장의 전개가 궁금해서 두근거렸다. 전나무 “죽은 나무가 숲을 살린다.” 계절별로 6종의 나무를 만나 묻기도 하고 대답도 듣고(하고) 그냥 쉬기도 하고, 그렇게 멋진 책이다. 쉴 휴(休)란 한자를 처음 보고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구나”, 했던 시절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나는 나무를 무척 좋아했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내가 태어난 후 아버지는 고가의 집 앞 마당에 백목련을 한 그루 심으셨다. 나는 몸과 정신의 성장 모두 별 볼일 없는데 목련은 잘 자라 고가의 지붕을 넘어선지 오래다. 대화를 즐기지 않는 분위기에 향도 노골적이지 않고 반가워서 마음이 풀어지면 어느 새 떠나버리는 꽃. 친해지는데 오래 걸렸다.

 

작가가 이 책에 담아 주셔서 반갑고 감사하다. ‘생태적 지위’를 짚어 주며 경쟁을 피하려는 성품을 가치 있게 평가해주고 아름답다고, ‘나무에 핀 연꽃’이라 불러 주니 기쁘다. 백목련 “모두의 제때는 다르다.”


내 나무가 여전히 머무는 그곳은 조부모님이 사시던 집이다. 그곳에는 목련보다 더 오래 자리 잡고 살아온 나무님들이 계신다. 내가 기억하는 나무들과의 기억 속에는 늘 돌아가신 그리운 분들이 계신다.

 

볕이 잘 드는 곳에 계신 배롱나무(백일홍나무)는 몸이 아주 매끈하다. 그게 신기해서 어릴 적에 잠시 손을 붙이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나무가 간지러워 불편해한다, 놀리셨다. 나무가 나와는 체온의 차이가 큰 것이 참 신기했다.

 

담장 가까이의 감나무는 절대 가지에 오르면 안 되는 나무였다. 죽은 나무가 아니라도 가지가 탁! 부러져 순식간에 떨어진다고 하셨다. 대신 그토록 예쁘고 말랑한 과일을 낳아 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내가 겉과 속의 색이 같은 과일을 좋아하게 된 것은 감나무의 보석 같이 아름다운 열매에 대한 여러 추억 때문일 것이다. 감나무 “잠시 쉬어감이 어떠리.”


운전을 열심히 하던 때에 어느 국도에서 만난 느티나무는 지나치게 잘생겨서 외모가 아주 멋져서 반하게 된 나무였다. 이 동네 초입에 한 때는 여기 비닐하우스 말고 아기자기한 동네 길도 주막도 사람들도 있었다고 입구를 내가 내내 지키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해가지지 않았다면 반짝이고 서걱이며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이는 멋진 나무에 홀려 곁을 떠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나무에 당줄 묶고 음식 바치고 절을 하는 사람들을 그냥 다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이 한 없이 작아지며 제 지위를 찾아가게 하는 큰 절을 해도 모자랄 존재이다. 느티나무 “백년도 못 사는 것들이.”


마지막으로 스릴러 미스터리처럼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나무를 이 책에서 만났다.

 

혹시 다들 아시나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름을 가진 나무?

 

“참나무는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를 아울러 이르기도 하지만 참나무라는 종 자체는 없다는 사실은 숲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수만 가지 놀라운 정보 중 하나다. 나무타령뿐 아니라 참나무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도 수없는데, 아예 세상에 없는 나무라니, 어찌 아니 놀랄까.”

 

무려 20여 종의 나무들이 ‘참나무과’이다.

 

- 너도밤나무, 밤나무, 구실잣밤나무

-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 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졸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붉가시나무

 

나무 이름들을 따라 적어보는 일이 왜 이렇게 좋을까. 역시 사람이 너무 제 속으로만, 제 생각에만 파묻혀 있으면 해결되는 것도 없이 힘들기만 하다. 나 말고 다른 이들, 다른 생명들을 글이나마 만나는 일은 이렇게 중요하다. 읽다 보니 숨도 잘 쉬어 진다.

 

“분명 이름이 존재하고 그 이름 또한 널리 불리지만 실제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듯 한때 내가 꿈꾸던 가족, 지극히 평범한 가족 또한 다 허상 같다. 이제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생김새가 닮은, 혹은 닮아가고 싶은 존재와 진심으로 엮인 관계, 그런 가족을 이루고 싶다.”

 

실존과 허상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작가는 이 특별한 나무를 인간관계를 짚어보는 숙고에 담아 이런 멋진 통찰을 남겨 준다. 단일민족이라거나, 핏줄, 혈육, 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오래 믿어 온 한국사회에서는 이 차분한 문장들도 무척 도전적인 생각이다.

 

허상이라 결함이 너무 많아서 가리고 변명하는 이야기들도 그렇게 많은 것이다. 거듭해서 신비롭고 아름답게 믿고 믿으라고. 그 이면의 참혹한 현실이 많고도 많지만 오늘은 그리로는 가지 않겠다.

 

한 겨울에 나무를 봐야 잘 보인다는, 겨울눈을 보라는 멋진 가이드는 꼭 기억했다 다가올 겨울에 나무들 보러 진짜 숲으로 가고 싶다.

 

“나무든 사람이든 오롯이 홀로 사는 존재는 없다. 알게 모르게 모두 기대어 산다. (...) 서로에게 기댄 줄기(人), 한 줄기에서 갈라진 나뭇가지(人), 그 모습이 곧 나무고 사람(人)아니든가.”

 

나무 그늘을 좋아하니, 어쩌면 사람의 그늘도 조금만 더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살다 보면 원치 않은 그늘이 드리울 때가 있다. 누구나 그늘을 좋아할 수는 없지만 견딜 수는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늘은 내력을 키운다. 끝끝내 그늘을 견디면 마음의 근력이 치밀해져 어지간한 외력에는 휘청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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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마지막 경고 - 북극곰의 위기는 인류 위기의 예고편
서형석 지음 / 문예춘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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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6일 기준으로 약 2억 명의 확진자 가운데 427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 현대사회는 14세기보다 의학이 훨씬 발달했지만 전염병은 이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전염병의 마지막 피해자는 우리 인류다. 인류의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작이라는 위기의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세계를 멈추게 한 전염병을 겪고도 전 세계가 재발 방지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면 더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무용한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도 아직은 짜증과 분노와 범벅이 된 이런 생각을 혼자 조용히 하고 가능한 빨리 폐기할 수 있어 다행이라 안도하곤 한다.

 

우리가 IMF라고 부르는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내가 존경하는 스승은 이걸 계기로 인류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더 나은 길로 방향을 틀면 결국엔 좋은 일이 될 것이라 낙관하셨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금융자본은 그때보다 더 집중되고 빈부격차와 불평등은 커지고 스승은 그새 돌아가셨다.

 

인간의 수명을 기준으로 하면 답답한 일투성이지만 더 오랜 세월이 지나봐야 그때의 위기를 경험한 것이 결과적으로 수렴할 미래가 드러날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긴 하지만, 판데믹의 원인을 묻는 설문 조사에서 코로나19는 기후위기 탓이라 대답한 80%가 넘는 사람들은 그때만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건가, 아예 표본 자체가 잘못된 건가 혼란스러운 현실은 참 자주 만난다.

 

코로나19는 ‘감염병’이지만 기후변화와 깊이 연결된 현상이며, 그 원인은 세계 각국의 산림 벌채, 광산 개발, 댐 건설, 도로 건설, 농장 조성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무차별 파괴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생물들이 급감했고 생태계가 단순해지면 병원체의 확산은 커진다. 그리고 70억 명이 넘는 대면집단생활을 하는 인간은 이상적인 숙주이다.

 

11월 1일은 참 멋진 가을날이면서, 단계별 일상회복을 위한 첫 날이다. 축하 파티를 미리 당겨하듯 난장을 이미 치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인류가 당면한 앞으로의 현실은 한국, 서울, 이태원은 안중에 없을 수준일 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하지만 익숙해지기도 한 코로나19 말고,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바이러스 병원균은 ‘수없이’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론이다. 온난화가 더 확산되면 한 번에 병원체 하나가 아니라 쉴 새 없는 공격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는 백신을 만들어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온난화는 얼음 속 바이러스만 깨우는 것이 아니라 영구동토층에 얼어붙은 채로 저장된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해방시킬 것이다. 그 양은 현재 대기 중 탄소량의 2배, 약 1조 6,000억 톤에 달한다.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는 지혜”를 핑계 삼아 아~몰라~로 살고 싶은 생각이 소위 굴뚝같다. 채식을 지향하고, 일회용 사용을 가능한 줄이고, 분리배출에 애쓰고, 재활용과 새활용을 하는 이들이 주변에는 많지만, 우리가 평생 애써 줄여도 산업폐기물을 한 차례 덤핑하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나마도 안 하면, 초중고교에서 기후 환경 교육을 받는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이제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간신히 50%를 넘었다. 세계기상기구가 본부를 한국으로 옮겼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 선 후 첫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COP26에 참여한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결심들을 고대한다.

 

- 기후 위기 문제는 구호를 외칠 시기가 지났다.

- 이제 실천만 남았다.

- 인류를 살리는 마지막 세대는 지금의 인류다.

- 시간이 없다.

-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고서도 운 좋게 생물이 생존하는 행성으로 존재해왔지만, 지난 50년간 야생동물 58% 감소, 포유류 26% 멸종 위기이 처했다.

- 인류의 파괴적 행동으로 100년 안에 여섯 번째 대멸종이 올 수 있으며, 예상되는 생물 종 멸종은 70%이다.

-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마지막 기회는 앞으로 10년이다.

-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를 무조건 완수하고 이미 배출된 탄소도 포집해야 한다.

- 전 세계 1%의 부유층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양은 가난한 인구 50%가 배출하는 양의 2배이다

- 기후변화 문제는 불평등 문제이다.

- 2019년 7월 29일은 지구가 생태 자원을 모두 소비한 날이다. 7월 30일부터 우리는 미래 세대의 생태 자원을 미리 당겨서 사용하고 있다.

- 한국이 생태 자원을 모두 소비한 날,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는 4월 5일이다. 한국인의 소비 수준은 지구 3.5개를 필요로 한다.

-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 도시는 서울이다. 인구가 2배나 많은 광저우보다 배출량이 많다.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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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그린>(21세기 북스, 2008)의 저자 토머스 L.프리드먼은 “지정학적 팬데믹(9.11테러), 금융 팬데믹(글로벌 금융 위기), 생물학적 팬데믹(코로나 19*)에 이은 생태학적 팬데믹은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프리드먼은 기후변화를 ‘검은 코끼리’**에 비유했다. (...) 이미 기후변화하는 ‘검은 코끼리’가 우리 눈앞에 서 있는데, 이 코끼리가 온 방을 망가뜨릴 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경고한 것이다.

 

* 인간이 야생이라는 완충장치를 파괴하는 바람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흘러들어오면서 초래된 것.

 

** ‘검은 백조’(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일어나면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을 비유한 말)와 ‘방 안의 코끼리’(모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그 말을 꺼내면 일어날까 봐 두려워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커다란 문제를 비유한 말)를 합성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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