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 플레이어 그녀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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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를 읽은 분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다나와 지인들은 통쾌함을 지나 슬픔이 오래 머물다 떠났다고 했다마지막 선택은 다시 떠올려도 서럽기만 하다작가는 현실도 나도 변한 것이 없다란 항변을 전하듯 전작을 내포한 신작을 내놓았다이 한 페이지는 마음이 따갑게 쓸리는 오마주와도 같다.



오랜 역사와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브누아 필리퐁이란 작가 한 명이 창작의 세계에서 성폭력범들을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한 마디로 단죄하는 것이 통쾌하다심지어 안심도 된다저자의 글쓰기 동력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이고겨우 두 권 읽었지만 접근방식도 해법도 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베르트가 루거 총을 들었다면 막심은 포커 카드를 들었다베르트가 철저히 잃고 또 잃어 빙하처럼 외롭고 단단해졌다면막심은 동료들이 있다포커 플레이어인 자신을 도울 사기꾼 작크와 우울한 상습 자살시도자인 단짝 친구인 발루나중에 합류(?)하는 7세 자폐아 장은 연대와 친밀도를 더한다.

 

발루는 포커 테이블에 앉는 즉시 변신을 수행했다이 정신분열이 그에게 현재를 잊게 해주었고그렇게 존재의 고통을 잊고서 자살충동에서도 벗어났다.”



주인공이 당한 폭력의 일부가 슬그머니 잊힐 만큼동료들의 삶 역시 처참했다작가는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이렇게 연대하고 저렇게 복수하고 그렇게 웃으며 살라고 지시어를 입력하는 듯도 하다그럼에도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연대하고 있다는 느낌브누아 필리퐁은 특징이 뚜렷한 자신만의 세계를 착착 만들어가는 중일 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개인으로 솔직하게 말해보라면 나는 현실의 모든 성폭력범들이 이제껏 호소해온 말을 한 마디도 믿지 않는다실수기억이 안 난다후회하고 있다죽을 줄 몰랐다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등의 X소리들.

 

용서는 무슨용서 따위 개나 주라지놈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2021년 한국의 성폭력 생존자들은 여전히 신고보다 안전한 분리/격리/이별을 원한다왜 그럴까설마 신고 정신이 없어서기가 막히게도 프랑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국적 불문 모두 설명 가능한 현실을 대화 속에 펼쳐 둔다.

 

남자들은 강간당한 여자들이 왜 신고하지 않는지 의문일 거야그건 여자들이 혹여 용기를 내어 신고를 한다 해도열에 아홉은 남자가 입건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거가 없다는 게 이유지처방전은 아예 말도 하지 않을게무슨 독감이나 되는 듯 10년 뒤엔 상처가 저절로 치료된다는 식이니법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도와주지 않아사회도 나을 것이 없고그래.”

 

답답하고 분하고 역겹지만사적복수만이 유일하게 통쾌한 해법이라 부추기려는 생각은 없다그 이유는 생존자가 복수를 위해 감수해야하는 대가가 너무 처참하기 때문이다작가의 전작이 서러운 이유는 결론을 다 알고도 선택했던삶을 염두에 두지 않은 주인공의 결정 때문이다.

 

오히려 그딴 XX 다 무시하고 지치도록 아주 잘 살아보는 것이 가장 신나는 방식의 복수라고 믿지만그런 생각은 마치 놀이기구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어 당사자에게는 차마 그런 말을 건넬 수 없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작가가 무거운 주제를 강인한 위트를 섞어 풀어내는용서와 변명 따위 용납 않는 복수가 통쾌하다는 독자들도 있지만망가지지 않을 수 없는 복수는 너무 아프다여전히 나는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가 마련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사적인 복수를 하지 않아도 충분한 처벌이 재까닥 실행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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