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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숲으로
장세이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10월
평점 :
하루 종일 지나치게 번다한 날, 경계심이 낮아지고 기분이 좋은 날의 마무리가 때론 이렇게 되는 걸 징크스 삼진 말아야겠다. 바빠서 정신도 혼미하고 벅찼다. 그래도 꼼짝 안하고 영화 보는 것보다 오늘 마무리는 책으로 하고 싶다. 흔히 숨 쉴 틈 없이 바빴다고 하니, <숨 쉬러 숲으로>를 읽어야겠다. 숨 쉬러 책 속으로.
마지막 장이 스포가 되는 경우는 많으나, 이 책은 첫 장이 (내게는) 엄청 인상적이다. 에세이인데 소설처럼 뒷장의 전개가 궁금해서 두근거렸다. 전나무 “죽은 나무가 숲을 살린다.” 계절별로 6종의 나무를 만나 묻기도 하고 대답도 듣고(하고) 그냥 쉬기도 하고, 그렇게 멋진 책이다. 쉴 휴(休)란 한자를 처음 보고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구나”, 했던 시절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나는 나무를 무척 좋아했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내가 태어난 후 아버지는 고가의 집 앞 마당에 백목련을 한 그루 심으셨다. 나는 몸과 정신의 성장 모두 별 볼일 없는데 목련은 잘 자라 고가의 지붕을 넘어선지 오래다. 대화를 즐기지 않는 분위기에 향도 노골적이지 않고 반가워서 마음이 풀어지면 어느 새 떠나버리는 꽃. 친해지는데 오래 걸렸다.
작가가 이 책에 담아 주셔서 반갑고 감사하다. ‘생태적 지위’를 짚어 주며 경쟁을 피하려는 성품을 가치 있게 평가해주고 아름답다고, ‘나무에 핀 연꽃’이라 불러 주니 기쁘다. 백목련 “모두의 제때는 다르다.”
내 나무가 여전히 머무는 그곳은 조부모님이 사시던 집이다. 그곳에는 목련보다 더 오래 자리 잡고 살아온 나무님들이 계신다. 내가 기억하는 나무들과의 기억 속에는 늘 돌아가신 그리운 분들이 계신다.
볕이 잘 드는 곳에 계신 배롱나무(백일홍나무)는 몸이 아주 매끈하다. 그게 신기해서 어릴 적에 잠시 손을 붙이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나무가 간지러워 불편해한다, 놀리셨다. 나무가 나와는 체온의 차이가 큰 것이 참 신기했다.
담장 가까이의 감나무는 절대 가지에 오르면 안 되는 나무였다. 죽은 나무가 아니라도 가지가 탁! 부러져 순식간에 떨어진다고 하셨다. 대신 그토록 예쁘고 말랑한 과일을 낳아 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내가 겉과 속의 색이 같은 과일을 좋아하게 된 것은 감나무의 보석 같이 아름다운 열매에 대한 여러 추억 때문일 것이다. 감나무 “잠시 쉬어감이 어떠리.”
운전을 열심히 하던 때에 어느 국도에서 만난 느티나무는 지나치게 잘생겨서 외모가 아주 멋져서 반하게 된 나무였다. 이 동네 초입에 한 때는 여기 비닐하우스 말고 아기자기한 동네 길도 주막도 사람들도 있었다고 입구를 내가 내내 지키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해가지지 않았다면 반짝이고 서걱이며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이는 멋진 나무에 홀려 곁을 떠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나무에 당줄 묶고 음식 바치고 절을 하는 사람들을 그냥 다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이 한 없이 작아지며 제 지위를 찾아가게 하는 큰 절을 해도 모자랄 존재이다. 느티나무 “백년도 못 사는 것들이.”
마지막으로 스릴러 미스터리처럼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나무를 이 책에서 만났다.
혹시 다들 아시나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름을 가진 나무?
“참나무는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를 아울러 이르기도 하지만 참나무라는 종 자체는 없다는 사실은 숲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수만 가지 놀라운 정보 중 하나다. 나무타령뿐 아니라 참나무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도 수없는데, 아예 세상에 없는 나무라니, 어찌 아니 놀랄까.”
무려 20여 종의 나무들이 ‘참나무과’이다.
- 너도밤나무, 밤나무, 구실잣밤나무
-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 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졸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붉가시나무
나무 이름들을 따라 적어보는 일이 왜 이렇게 좋을까. 역시 사람이 너무 제 속으로만, 제 생각에만 파묻혀 있으면 해결되는 것도 없이 힘들기만 하다. 나 말고 다른 이들, 다른 생명들을 글이나마 만나는 일은 이렇게 중요하다. 읽다 보니 숨도 잘 쉬어 진다.
“분명 이름이 존재하고 그 이름 또한 널리 불리지만 실제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듯 한때 내가 꿈꾸던 가족, 지극히 평범한 가족 또한 다 허상 같다. 이제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생김새가 닮은, 혹은 닮아가고 싶은 존재와 진심으로 엮인 관계, 그런 가족을 이루고 싶다.”
실존과 허상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작가는 이 특별한 나무를 인간관계를 짚어보는 숙고에 담아 이런 멋진 통찰을 남겨 준다. 단일민족이라거나, 핏줄, 혈육, 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오래 믿어 온 한국사회에서는 이 차분한 문장들도 무척 도전적인 생각이다.
허상이라 결함이 너무 많아서 가리고 변명하는 이야기들도 그렇게 많은 것이다. 거듭해서 신비롭고 아름답게 믿고 믿으라고. 그 이면의 참혹한 현실이 많고도 많지만 오늘은 그리로는 가지 않겠다.
한 겨울에 나무를 봐야 잘 보인다는, 겨울눈을 보라는 멋진 가이드는 꼭 기억했다 다가올 겨울에 나무들 보러 진짜 숲으로 가고 싶다.
“나무든 사람이든 오롯이 홀로 사는 존재는 없다. 알게 모르게 모두 기대어 산다. (...) 서로에게 기댄 줄기(人), 한 줄기에서 갈라진 나뭇가지(人), 그 모습이 곧 나무고 사람(人)아니든가.”
나무 그늘을 좋아하니, 어쩌면 사람의 그늘도 조금만 더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살다 보면 원치 않은 그늘이 드리울 때가 있다. 누구나 그늘을 좋아할 수는 없지만 견딜 수는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늘은 내력을 키운다. 끝끝내 그늘을 견디면 마음의 근력이 치밀해져 어지간한 외력에는 휘청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