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돈의 역사 - 명화로 읽는 돈에 얽힌 욕망의 세계사
한명훈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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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불문 역사극을 즐기진 못하지만역사서 읽기는 재밌으니 이상한 괴리다현실이 창작보다 더 극적이라 그럴 수도 혹은 인류가 이렇게 살아 왔구나 하는 나 자신의 현존과도 연계되는 역사를 만나는 것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근래에는 하나의 소재나 주제에 집중해서 역사 이야기를 하는 주제사라는 방식의 역사서를 종종 읽는다무척 재미있다대상이 역사적historic'하다고 생각 못한 뜻밖의 조우일수록 더 재미있기도 하다.

 

지구 전체를 공격적으로 소비해야 유지되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우려와 대안 모색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울하게 접하다가우리가 의미와 기능을 오해하고 과장하고 물신으로 격상시킨 에 관한 그림 가득한 반가운 책을 만난다.

 

매혹적인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매료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세이렌의 이름을오늘날, ‘경고라는 뜻의 단어 사이렌Siren’으로 쓰는 것을 보면 일리 있는 해석이지 싶습니다. (...) 머니money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주노 모네타juno Moneta’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요모네타 또한 경고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돈의 흐름으로 알아보는 경제와 관련된 세계사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독서 대상의 폭이 넓은 좋은 책이다상세하게 분류된 목차에 비해 분량도 내용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일화와 명화를 함께 보여주는 멋진 구성이라 잠들기 전 구경하듯 조금씩 읽기에 좋았다.

 

프랑스어로 을 뜻하는 부르그bourg란 새롭게 생긴 상공업 도시를 의미하며 부르주아bourgeois는 그곳에 사는 상공인들을 의미합니다.”

 

차분하게 역사적 내용을 전해주는 파트도 있고세상엔 모르는 일이 무수하다고 탄식하게(?) 되는 놀라운 내용도 있다. <오즈의 마법사>와 미국의 화폐 역사 이야기는 나만 몰랐던 것이었나.

 

“<오즈의 마법사>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1776년 미국 독립 당시 금과 은이 모두 부족했기 때문에 금화와 은화를 공통 사용하다가화폐 독립을 목적으로 한 본위제를 채택한다처음에는 금과 은 모두를 본위화폐로 사용하자는 제안이었다문제는 1800년대 금광이 발견되면서 은의 가치가 상승하고이후 은광이 발견되면서 금의 가치가 상승하니사용자들과 사회에 혼란이 야기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결국 개혁의 내용은 금만을 화폐로 인정하는 금본위제로 채택했지만은을 주로 쓰던 농민들은 이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으면서 갈등이 심화된다즉 도로시는 농촌 사회의 미국인을 대표하는 인물이고노란벽돌길은 본위 화폐가 된 금도로시의 소원을 들어주는 은 구두는 과거의 본위화폐 은을 상징하는 것이다역사를 모르니 풍자문학을 동화로 읽고 말았다.

 

그리고 세계 통화의 기준이자 중심이 된 미국달러의 기축통화 결정 과정도 상세히 복기할 수 있어 유익했다금이 본위 화폐로 자리 잡은 후다시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하면서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가 확립된 것이다세계 경제는 현재에도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부를 안겨준 광산을 신의 축복으로 여겼고교황은 요아힘스탈에 축복의 세계를 베풀었습니다이 시기에 만들어진 은화는 요아힘 골짜기에서 나온 돈이라는 뜻으로 요하임 스탈러 (...)’ 이후 탈러Taler’로 줄여서 부르기 시작합니다. (...) 지금 쓰고 있는 달러Dollar’의 어원입니다.”

 

환원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수명이 다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역사란 결국엔 여러 분야의 근원과도 만나는 공부이다. ‘어원학이라는 것 역시 맥락context’에서 떼어낸 건조하고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수학보다는 스토리가 조금이라도 있는 물리학을 좋아한 인간의 특성이 강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더 가깝게 느끼게 되는 조선의 역사...

 

함경도 단천의 기술자 김감불과 김검동은 1503년 관가를 찾아갑니다이들은 납광석에서 은을 분리하는 연은분리법을 개발한 기술자들이었습니다이들이 개발한 이 기술은 유럽이나 중국보다 뛰어난 은 제련 기술이었습니다하지만 이 뛰어난 기술은 조선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전수됩니다.”

 

이 역시 모르던 내용이고 몹시 속이 쓰린 결과이다사농공상의 위계적 질서가 공고했던 조선에서 은광석에 들어 있는 납 등의 불순물을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 제련하는 당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여 명나라와의 무역에도 큰 기여를 했으나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적폐 대상으로 몰린다.

 

이전 정권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목적이 컸을 이 조치로 기술자들은 일본으로 넘어갔다당연시 연은분리법은 일본에 전수되었고, 16-18세기에 거쳐 세계 은 생산량의 1/3을 일본 내에서 생산하며 세계 무역사의 한 축이 되는 패권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역시 역사서 읽기는 무척 재미있다거의 모든 역사책들을 좋아하는 변별력이 약한 독자이기도 하지만이 책은 명화와 화폐가 연결된 경제사이자 세계사로서 특이하고 가독성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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