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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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 무산되고 혼자 읽은 책 2>

 

제목을 보는 순간 반발심이 감정적으로 불쑥 올라오지만, 곧 수긍하고 마는 현실에 다름 아니다. 측정할 수 없는 모든 정성적인 것들도 정량화 시켜야만 그 가치를 일부라도 인정받는 시스템은 근대 이후로 탄탄하게 구축되어 왔다.

 

우리는 무심코 생명의 가치를 절대시하고 신비화하기도 하며 위무하고 살지만, 현실의 생명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촘촘하게 세심하게 ‘가격’이 매겨져 있다.

 

해당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태생적 조건, 사회적/사회화된 조건은 물론이고, 현재 연령과 건강상태 등등 더 이상 분석할 정보가 남지 않을 때까지 가격 측정의 과정은 이어진다.

 

“어느 국가인지,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되어 있는지, 화이트칼라인지 블루칼라인지, 어떤 업계인지와 같은 요인들이 모두 추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각기 다른 연구에서 매우 상이한 추정치가 도출된 가운데 2000년 미국의 비용편익분석 전문가들이 국내 연구를 바탕으로 합의한 생명 가치는 1인당 610만 달러였다.”

 

코로나 판데믹 이전에도 일 년에 천 명이 넘게 일하다 죽임을 당하고 영원히 퇴근하지 못하게 된 분들은 원청회사에서 열심히 찾아 간신히 법의 테두리에 맞춘 가장 싼 보험금이 가격표로 붙어 있다.

 

어느 대기업에선 일인당 500만원으로 맞췄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모든 인간은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단 한 번도 유의미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 읽고 싶었던 책을 심각하게 공부하듯 읽고 필사하며, 순진하고 무지한 채로 안전하게 남아 있어 보려던 가림막들을 마저 털어낸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하지만 확실한 진실이다.

 

- 인간 생명에 일상적으로 가격표가 매겨진다는 사실 


- 이러한 가격표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 이러한 가격표는 투명하지도 않을 뿐더러 공정하지도 않다는 사실 


- 이런 불공정함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높은 가격표가 붙은 사람들에 비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적절한 생명 가격표를 책정하는 것을 논의 할 때에도 그 생명의 가치는 순전히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 현재의 1000달러가 10년 후의 1000달러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매우 명백하지만, 과연 오늘날의 1000명이 10년 후의 1000명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생명 가격표가 일상적으로 매겨지는 것은 현실이므로 우리는 생명가치의 평가 방법을 반드시 직접 결정해야 한다. 


- 생명 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 우리는 반드시 가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비극을 애도하고 이후의 보상 문제에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9.11 이후 사망한 약 3000명의 희생자들에게도 모두 가격표가 붙었다. 금전적 보상에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애도할 때는 희생당한 모든 분이었다가 보상 절차에는 갈가리 찢는 행태가 생명에 대한 올바른 존중과 대접인지 황망할 뿐이다.

 

“금액은 25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매우 컸다.”

 

“건강에 가격표를 매기는 일은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매우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 운전 교습 강사는 만약 차로 보행자를 치었을 때 돈을 아끼려면 “후진했다가 마저 일을 끝내라”라며 매우 잔인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9.11 희생자 보상기금도 부상자에 대한 보상금이 사망자 보상금보다 많은 경우가 있어 운전 교습 강사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이 경악스러운 내용이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비춰주는 풍경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생명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이제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가격을 찾기 위해선 ‘인간’은 내가 이해하는 개념 범주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의미로 모든 인간은 비로소 다 다르다는 공식 인정을 받은 셈이다.

 

어차피 가격표가 낙인처럼 부여되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계산 기준과 과정이 공정하도록 확인은 잘 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인권과 생명은 좀 더 존중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 500만 원짜리 생명보험을 합의도 없이 원청 기업 혼자 결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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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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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 무산되고 혼자 읽은 책 1>



글로서 과학을 잘 전달해주는 과학자들과 책들이 많아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다. 적어도 현대 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과학도서들이 성경만큼은 많이 팔리고 읽히기를 바란다.


간혹 어떤 과학자는 언론인으로 변신한 듯도 하지만, 호프 자런과 같은 이는 엄정한 과학자이자 인문학적 통찰과 감수성을 함께 가진 귀한 저자이다. 잘 읽고 배울 수 있는 글을 써서 그가 발견한 과학적 지식이 널리 알려지는 일이 반갑다.


더 이상 SF의 소재도 아니고 미래의 일도 아닌 당대에 닥친 문제인 환경 문제에 대한 입장과 심정(?)을 최대한 떠올리며 혼란하고 불명료한 것들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공부하듯 읽었다.

 

“인류의 10퍼센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엄청난 식량과 연료 소비로 인해

나머지 90퍼센트의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지구의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고 우리 몸은 시들어가고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찾아온 죽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느라 시간을 쓰고 있다.

음식물을 쓰레기 매립지에 던져 넣을 때 우리는 그냥 칼로리 덩어리를 던져 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던져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풍요에 대한 무자비한 추구에 이끌린 결과,

우리가 공호하고 소모적이고 명백한 빈곤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세상의 모든 결핍과 고통,

그 모든 문제는 지구가 필요한 만큼을 생상하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우리가 나누어 쓰지 못하는 무능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식량과 안식처, 깨끗한 물을 누리는 집단이라는 사실은 지금껏 우리가 위태롭게 만들어온 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는 것이지,

사람들을 그저 두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

두려움은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고,

정보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다.”

 

“다른 무엇보다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희망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최초로 진지하게 환경 문제에 대해 배우고 고민한 지는 오래되었다. 주변에서 왜 쓰레기 치우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냐고 궁금해하던 걸 생각하면 내게는 충분히 격세지감으로 느껴진다.

 

코로나 판데믹이 시작되고, 신종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위기가 기후변화에서 초래되었다는 의견이 80%를 넘었을 때는 갑자기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 것인지, 다른 사람들 다 알고 있던 걸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 무척 놀랐다.

 

인지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기 때문에 - 완벽할 수는 결코 없지만 - 환경문제에 대한 그야말로 뉴노멀한 합의와 정책과 실천과 산업에서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으리라 기대했다.

 

변하고 있다, 분명히. 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듯해 두렵다. 인간이 손 댈 수 없는 지구의 물리화학적 반응은 거세게 이어질 것이다. 지구생태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자체적인 평형 상태를 이루려는 반응이기 때문에 막을 길은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가속도를 늦추는 것, 변화의 폭을 줄이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 늦지 않게? 충분히 빠르게? 


SNS상에서 고기를 굽거나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사진들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다행이다. 사진만 안 올리고 고기도 먹고 일회용품도 쓸 거란 비관도 있지만, 노출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많이 보면 당연한 일상이라 받아들이니까.

 

판데믹 우울만이 아니라 기후우울도 있다. 실제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 평생의 자산을 잃고 다치고 죽은 이들도 많다. 안전지대는 없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저울이 하나 있다. 지겨워서 지쳐서 귀찮아서 쉬운 선택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양팔저울이다. 내가 한 선택으로 누리는 즐거움과 고통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면 답이 보인다. 다행히 숫자에 잘 반응하는 인간 유형이라 덕분에 종종 스스로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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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ㅣ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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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런던에 머물다 독일로 바로 갈 일이 생겨서 눈에 띄는 여행사Travel Agency에 들어갔다. 상냥한 직원분이 반갑게 맞아 주셨는데, 이런…… 런던 토박이인 듯한 발음! 한국에서는 서울말을 표준말로 정했지만, 영국 영어는 행정수도 거주민들의 말에 언어학적 위계를 부여하지 않는다. 표준말이란 자체가 없기도 하지만. 런더너Londoner의 발음 특징들이 있는데, 받침 발음을 잘 안 한다거나 (예. book : 부우~. 이렇게 들린다), 개인차까지 더해져 모음 발음이 다르거나... 다양하다. 그래서 그 직원이 활짝 웃으며,

 

“Would you like to book to die*?” 이렇게 물었을 때는 당황했다. * 투 다이로 들림, 의미는 today. 

 

(나 혼자 생각) ‘언제 죽을 지 예약할 거냐고 묻는 건가? 여긴 어디?’ “Could I?” (바삐 생각) ‘여기선 죽는 걸 예약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는 더 밝게 웃으며 추가 질문을 하였다. “Certainly, one way or return?” (진심 놀람!) ‘죽기만 할 건지, 죽었다 살아 돌아올 건지 묻는 건가요?’

 

뜬금없이 이런 추억 얘기를 하는 것은 이 책에 편도 탑승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려 왔다. (...) 이번 임무에 자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 두뇌에게는 이 정보가 새롭기만 하다. 나는 여기에서 죽는다. 혼자서 죽게 된다.”

 

두 시간 비행거리인 독일로 가는 게 아니라 헤일메리*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서 지구를 구해야하는 임무이다. 무척 좋아하는 장르물 설정이라 읽으면서 질문과 궁금증이 폭증할 흥미로운 설정이다. 화성에서 감자 심어 캐 먹는 이야기로도 독자와 관객을 맘껏 홀리는 앤디 위어이니 안심(?)하고 읽어 본다. 

* 헤일메리Hail Mary : 미식축구 용어. 경기 막판에 역전을 노리고 하는 패스에서 유래한 말.

 

탑승한 인원 중 두 명은 사망했고 살아남은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에 몸도 자유롭지 못하다. 다행히 돌보는 로봇이 있다. 지구를 구해야 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답답한 출발이라니, 덕분에 필력과 구성력에 관한 저자의 자신감에 더 감탄하게 된다.

 

기억을 찾는 과정은 퍼즐 맞추기와 같으니 추리미스터리처럼 사건과 상황이 짜 맞춰질 것이란 짐작을 한다. 그런 게임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더 기쁘다. 조각조각 찾아드는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들이 교차되며 영상매체가 주는 시각 정보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재밌다.

 

“박사님이라면 별을 먹고 사는 생명체를 뭐라고 부르시겠어요? (...) 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원을 애써 떠올렸다, 아스트로파지*라고 부르면 될 것 같네요.”

 

* 아스트로파지astropharge : 별을 뜻하는 아스트로astro와 세균을 숙주세포로 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하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의 합성어. 파장 25.984미크론의 적외선을 방사하면서 빛의 운동량을 이용해서 태양과 금성을 오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 미생물이 지구 위기 유발자인 것이다. 태양 에너지를 엄청 나게 흡수해서 지구 온도를 10~15도 가량 떨어뜨리게 된다. 현실의 우리는 온도가 몇 도나 올라갈지 불안하게 지켜보는 중이라 남일(?) 같지 않아 조금 괴로웠다. 그래도 지구에 함께 사는 인간들의 활동이 아니고 외부 요인이나 물리치러 나갈 수 있다는 점만은 부럽기도 했다.

 

“기후학자들은 앞으로 30년 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 (...) 30년이요? 엄청 나중이네!”

 

소설 내에서 과학자들이 예측한 기한이 현실의 기한과도 비슷해서 또 한 번 덜컹한다. 그래도 현실의 인간은 위기감이 없이 대범하기만 하니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는 거의 매일 무척 두렵고 괴롭다.

 

“박사님을 포함한 세 사람은 타우세티로 가겠죠. 나머지 우리는 지옥으로 가요. 더 정확히 말하면 지옥이 우리한테 다가오는 거지만.”

 

만약 내게 주인공과 같은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 나를 제외한 지구와 지구에 남은 이들을 구할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나는 죽을 것이 확실한 우주로 나가게 될까, 아니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서서히 죽어갈 가능성이 더 높은 지구에 남게 될까.

 

“나는 아이들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30년 뒤면 이 아이들 모두가 40대 초반이 된다. 이 아이들이 그 모든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 이 아이들은 (...) 세계 멸망이라는 악몽 속에 내던져진다. 이 아이들은 제6차 대멸종을 겪게 될 세대였다. 나는 배 속이 꽉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로, 행복한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몇 명은 문자 그대로 굶어 죽을 가능성이 컸다.”

 

주인공은 과학 선생님이다. 직업인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제대로 대접해주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선생님이다. 지나친 이상화를 한 것일 지도 모르나, 나는... 교육자는 미래세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지 귀찮아하고 무시하고 미워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와 배경이 개인으로서의 교사나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결국 교육자는 그런 부조리까지 이해하고 파생된 분노를 아이들에게 돌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교육자는 가장 마지막까지 절망과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이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교육의 합목적성과 부조리하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가 아닐까 한다.

 

“사태가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누군가는 계속 우유를 배달해야 한다. (...) (외계의 생명체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는) 세계 멸망을 한 세대나 두 세대쯤 앞두고 있는 상황도 그랬다. 나는 아이들 앞에 서서 그 애들에게 기초과학을 가르쳤다. 이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지 못한다면 세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뭐겠는가?”

 

주인공에 대해 배우고 나니 책 곳곳에 담긴 기초과학실험과 같은 지식정보들이 다정하고 친절한 수업으로 느껴진다. 지구 멸망이라는 서늘한 비극과 대척에 선 것이 이런 작은 온기라는 것이 또한 감동적이다. 중무장을 한 초능력 탑재 어벤져스가 등장했다면 얼마나 뻔하고 지루했을까.

 

우주선 이름이 소박하고 귀여웠던 것도, 주인공 직업이 평범한 것도, 감자보다는 훨씬 멋지고 의지가 되지만, 동료인 외계인 로봇조차 순박한 지능 수준의 작고 선량한 존재 ‘로키’였던 것도 오히려 더 대담하고 멋지다. 작가의 프로젝트는 야심만만한 거대 주제를 담고 있으니까.

 

700쪽 가까이 펼쳐진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도 믿지 않을 지도 모를 존재의 평범함, 선량함, 성실함, 선의, 애정, 희망, 협력, 연대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기적과 구원이라는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다.

 

“저건 외계의 우주선이다. (...)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로봇이 내게 손을 흔든다! (...) 나도 마주 손을 흔든다. 로봇이 다시 손을 흔든다.”

 

역사의 큰 변곡점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슷한 분석과 결론에 도달한다고 한다. 특별하고 영웅적인 계기는 없었다고. 공통점은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분명한 선의를 가지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고. 여전히 유효하다면 참 좋겠다.

 

인터뷰에서 저자 앤디 위어는 우울증과 가난으로 고생했지만 ‘항상’ 인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구급차를 부르고 길을 비켜주는 일들, 인간이 서로를 돕는 일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라 보도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인류는 지속적으로 미래를 더 좋게 만들고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고 했다.

 

나도 그의 믿음과 낙관에 동조한다. 아직 못 들었거나 미처 모르는 수많은 ‘돕는’ 일들을 한 많은 분들에게 자주 감사하며 살아간다. 전작에서도 그랬고 막막한 공간에 주인공 한 명만 달랑 던져 놓고 ‘살아남아 봐라~’ 이런 이야기를 즐기는, '주인공 처절하게 괴롭힘 전문' 저자인가 했는데 말랑말랑 보들보들한 SF라니.

 

경쟁과 싸움보단 협력과 연대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당신의 끈질긴 이야기에 설득 당했다. 이제 대답을 해볼까. 지구의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외로움과 막막함을 스르륵 녹여 줄 동료 로키가 있다면 나도 헤일메리호에 탑승하고 싶다. 그리고 주인공처럼 여행을 끝마치지 못한 동료들을 우주로 보내 주고 싶다.

 

“당신의 몸을 별들에게 맡깁니다.” 이렇게 명복을 빌면서.

 

혹은 다른 동료가 나를 우주로 떠나보내며 같은 기도를 해주어도 좋겠다. 귀향과 귀가를 위한 연휴가 끝나고, 늦은 밤에 어두운 우주를 떠올리며 최초의 고향을 향해 가는 상상도 나쁘지 않다. 인류에 대한 저자의 굳건한 믿음이 별처럼 꿈처럼 아련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 반전은 남겨 두었습니다. 안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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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나만 그래? - 언니들이 알려주는 조직생활 노하우 26 ㅣ 쏠쏠 시리즈 1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지음 / 콜라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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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의 이유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1. 이것만 아니면 된다. 2. 이것이어야 한다. 둘 중의 하나만 맞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전혀 아닙니다. 대략 이 두 가지 이유로 추동되어 이직과 퇴직을 하는 듯하기는 합니다.

 

저는 “이건 더 이상 아니다”였으니, 1번에 좀 더 가까웠을까요. 이직을 3번이나 했으나 나름 경험은 있으나 노하우는 없습니다. 해외 연구원, 글로벌기업 한국 지사, 공사, 다시 민간기업…… 점점도 연계도 없는 행로였으니까요.

 

책이 작고 가벼워서 오늘 읽을 책들 속에 넣어 나왔는데 회사 이야기를 연휴에 읽으니 살짝 억울한(?) 기분도 있지만 오랜 휴가를 끝내고 곧 복귀해야 하니 완벽한 타이밍인가 싶기도 합니다.

 

저자들의 직급은 사원부터 부장까지 다양하고, 독서모임을 통해 팟캐스트도 운영하며 출간을 하였습니다. 책에 포함된 QR코드로 팟캐스트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도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26개의 상황에 6명의 직장인들이 대답해주고 가이드를 제공해주는 형식인데, 엄청나게 건조하고 현실적입니다. 당근당근한 위로와 기도와 간식은 없습니다. 본인들이 체험한 것들이 기반을 두다 보니 팩트 체크와 해당 지침들로 이어집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딱! 정확하게 솔직하게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칼 같이 끊어 분명하게 인지하고 계시는 분들로 보입니다. 멋지시네요. “내가 네 상황에 대한 정답을 어떻게 알 수 있겠니, 스스로 생각해봐라!” “대신 경험한 것들, 깨달은 것들은 모두 제공해주마!”

 

저자들도 같은 주제에 대해 의견이 다른 경우들이 있습니다. 연차도 경험도 근무환경도 다르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독자에게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반가운 내용입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것들은 분명한 의사소통과 실천입니다. 심기 살피는 직원이 하루 종일 직원들 표정만 클로즈업 하며 체크하는 것이 아니니 누군가 내 마음, 내 기분, 내 상황을 알아주겠지, 하는 신비롭고 정신적인 능력에 기대서는 안 됩니다. 그런 태도는 협업을 아주 곤란하게 할 뿐더러 유치한 행동입니다.

 

"현실에 롤모델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며, 일을 친절히 알려주는 사람은 적다."

 

: 없습니다!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일단 발이라도 담가봐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업무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안 되면 포기하지 뭐,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은 저는 격려까지는 못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대신 마무리해야 하니까요.

 

"급여 협상 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부르는 값이 언제나 업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 직업윤리로 꼭 기억하고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태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상생의 기본 원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상황이 절박해서 이번 한 번의 계약을 어떻게라도 성사시키겠다고 헐값을 제시하는 일은 제가 언젠가 먹을 밥에 독을 뿌리는 일과 같습니다. 누군가가 그 밥을 먼저 먹고 먼저 죽게도 되겠지요. 재능기부와 봉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결이 다르니 생략.

 

이직/퇴사와 같은 굵직한 선택 말고, 직장 내 업무 이행과 관련된 여러 상황들, 사내정치가 만연한 회사 생활, 상사와의 갈등, 갑질, 진학과 관련된 고민 등, 여러 구체적인 상황들이 있습니다. 어떤 조언은 내 상황이 아닌데도 무척 설득력이 있고, 어떤 상황은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사내 동료들과는 오히려 편하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내 삶, 내 일, 양보하고 주저하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고.

 

여성 직장인 한 정 책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위로와 함께 덜 지치고 좀 더 잘 대처할 가이드가 있습니다.

 

어떤 날은 여러 번의 심호흡이 필요하고 다른 날은 해탈의 경지에 오를 듯한 상황도 생기지만, 그런 회사생활이 중요한 일과라면 어떻게든 잘 피하고 잘 맞서며 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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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곳으로 가자 - 능력에 요령을 더하면 멋지게 갈 수 있다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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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상처 받은 만큼 상처를 주게 되고

아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겁을 내게 되어

새로운 시도 앞에서 자주 무력해진다.

그럴 때 참고할 만한 어른스러운 태도와 감정 관리의 매뉴얼을 모았다.”

 

정확한 순간은 모르지만 나의 관심사들 중 ‘어른’과 ‘죽음’은 중요한 순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심오한 철학적 숙고를 위해 동기화되었다기보다는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을 아무리 살펴봐도 ‘나’에게서 찾을 가능성이 없고, ‘죽음’이 예상 밖으로 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나와는 다소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이 균열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의 미래의 일이라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었다.


사춘기四春期에 사춘기思春期를 동시 다발로 겪고 있는 기분이다.

 

20, 30대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이든(?) 이들의 생각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나는 되지 못한 ‘어른’이 된 이들, 먼저 경험하고 고민한 분들의 생각과 이야기가 궁금하다.

 

“나쁘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 자신의 감정을 대충 처리해버리지 않을 때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 좋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추구하고 가지려고 노력하고, 그런 일들을 잘 안 한다. 에너지 레벨의 높이가 개인마다 다르다면 나는 한 다섯 칸 정도? 머릿속에 마지막 칸의 빨간 불이 자주 깜빡거린다. 그러니 취사선택에 집착하는 편이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자꾸만 나쁜 예언을 하는 걸 그만두자.”

 

: 안 그랬고 안 그러는 것 같은데…… 최악을 상상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본질적인 해답은 나의 강점을 키우는 일뿐이다. 감정의 기울기를 받아들이고 안달하지 않는 것.”

 

: 강점을 키우면 끔찍한 인간이 될 것 같지만, 백신 접종을 1차라도 맞은 이들이 많아져서 예상 보다 많은 친지와 지인들을 만나거나 안부를 주고받으며, 처음으로 상대에게 담긴 감정이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었다.

 

이제까지는 내가 세워 둔 이미지를 상대 앞에 펼치고 내 생각대로 대했거나, 혹은 상대가 보여 주고 싶은 이미지 앞에서 반응했거나, 관계가 그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확실한 순간들도 있었다.

 

다들 나이가 들고 여러 이유로 약해지고 지치고 혹은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화면을 유지할 힘이 사라지고 실상 그대로 만난 기분이 드는 경험이었다. 좋다, 편하다. 이제 와서 민낯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오래 쌓인 애정이 뒤집히진 않는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힘들면 ‘척’이나 ‘체면’ 같은 건 좀 더 편하게 그만두어도 좋겠다. 다 비슷하게 살아간다. 누구나 늙고 약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지력이 낮아지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사람을 대하도록 서로가 노력, 노력, 노력.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신세 한탄만 하는 데서 벗어나기,

내가 특별한 존재여야 하고 세상이 내게 우호적일 거란 기대를 내려놓기.”

 

“세상의 가치 있는 일 대부분은 가성비로만 따졌을 때 효율이 낮다.

‘결국 다 똑같지, 뭐’라고 세상을 뭉개서 보지 않고 (...)

세상은 자세히 알고 나서는 절대 똑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커피도 다 마셨고 눈도 아프고 읽을 만큼 읽었으니 더 좋은 곳으로 가자~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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