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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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집 건너 친구 집으로 놀러가던 6살 제니가 실종되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경악하고 함께 노력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이웃들의 관심이 옅어져도 실종 아동의 부모들은 살던 곳에서 이사를 가지 않는다. 6살 제니의 얼굴이 찍힌 전단은 여전히 붙어 있지만, 더러는 잊고 새로 이사 온 이들은 아이의 존재를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존재를 거의 지웠을 무렵 ‘나’는 결국 집에 돌아왔다. 실종 아동을 찾고 범인을 잡고 그 과정에서 여러 비밀이 드러나는 짐작 가능한 설정이 아니라 티저북이지만 잠시 놀랐다. 돌아왔다고? 발견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시점은 ‘나’로 옮겨 간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어도 6살 때까지만 살았던 동네가 익숙하고 행동이 자연스러울 리가 만무하다. 이름을 밝히고 경찰을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라 다행이다.

 

1. 열 한 번째 모퉁이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깊이 뻗어 있다. 그리고 딱 거미줄처럼 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2. 그럴 의도가 아닌데도 가끄ㅁ가다 이런 일이 생겼다. (...) 생각만 했을 뿐인데, 또 혼자서 시부렁거리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입 좀 닫아라. “다시는 아무 말 하지 않을게요, 맹세해요…… 제발…….”

 

3. “왜 이제야 도망쳐 나왔을까요?” (...) “그 사람들은 제니가 여섯 살 때부터 부모 노릇을 했어요. 괴물 같은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제니에게는 그 괴물이 세상의 전부였죠.”

 

4. “VIDI. 라틴어로 나는 보았다라는 뜻이다.” (...) “뭘 봤어? 이것저것. 그게 뭔데? 네가 알고 싶지 않은 것들.”

 

5. “우리가 삼촌이라 부를 때까지 브렌트 삼촌이 간지럼을 태웠다는 장난 있지? 내가 지어낸 얘기야.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 그런데도 네가 기억한다니 참 이상하다?”

 

6. “네가 유괴당한 날 말이야. 뭐 기억나는 거 없어?” 잠깐만, 나는 생각했다. 잠깐만…….

 

7. 그만하세요…… 말 잘 들을게요……. 이러지 마세요, 누구세요……? 제발요, 누구세요……? 아버지…….

 

8. 그는 물에 빠진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 그러면 가족은 다시 세 명이 된다. 구성원은 달라지지만, 벤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동생 제니가 채우게 된다. (...) 동생 제니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 소식을 듣는 순간의 죽을 것 같던 느낌이, 그를 끌어안으려는 아빠가 너무 이상해서였다.

 

9. 벤은 자기 방으로 가는 길에, 부모님이 그 애에게 내어 준 방의 닫힌 문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이 방으로 갑자기 들이닥치곤 했던 여덟 살 때를 떠올렸다. 아니, 이 방에서 달아났었나?

 

10. “제발…….”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해.” 내가 돌아보지 않으면 그 여자는 여기 없는 거다. (...)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저 여자는 돌아갈 거야.

 

11. “결국 받았네.” 수화기를 들자 그 여자가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폐가 갈비뼈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잊지 마” (...) “난 네가 진짜 누구인지 안다는 걸.”

 

티저북은 끝나고 나는 홀로 온갖 상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헷갈리고 짐작을 벗어나고 반전이 거셀 듯……. 기대하는 장치들이지만, 그건 내 손에 결말이 있을 때 편안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분노를 크게 자아내는, 공감과 슬픔이 큰 소재가 아이의 실종 납치 범죄이다. 근절된 적이 없는 만큼 낯설지도 않지만, 매번 사람들은 새롭게 분노하고 안타까워한다.

 

범인 찾기도 궁금하지만, 일단 자신이 제니라고 밝힌 ‘나’가 혼란에 빠진 제니인지, 제니가 아닌지, 아니라면 기억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제니와 같은 피해자인지, 혹은 가해자 가족인지…… 어느 하나에 그럴 듯한 근거가 있어 특별히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멀쩡해 보이는 제니의 친부모는 보이는 그대로인지 숨기고 있는 다른 비밀들이 있는지, 삼촌의 존재와 역할은 무엇인지,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오빠 벤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날 혹은 더 오랜 시간의 폭력의 형태는 무엇인지 궁금해서 갑갑하다. 잠시 현실을 떠날 정도의 뒤집기 반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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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 : 서양 중세·근대 철학편 ㅣ 만화로 보는 3분 교양 시리즈
김재훈.서정욱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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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iyukk/222572426411


철학에 대한 감정(?)은 각 나라마다 다를까요? 한국에서는 독보적인 이미지가 있지요. ‘OO철학관’ 실용적인 문제들에 답을 주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못 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쓸모없는(?) ‘태도의 학문’으로서의 철학, 그 중에서도 중세와 근대철학을 짐작 이상으로 웃긴 대화처리로 소개합니다. 철학자들의 핵심적인 철학적 논제들을 몇 개의 그림과 문장으로 싹 정리하는 모습에 놀라서 두근거리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읽은 텍스트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물처럼 기억의 단편들도 소환됩니다.

 

개똥철학이란 표현이 있지요. 혹은 철학을 궤변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논리학/논리철학이 철학의 분야라는 거 아시나요. 철학적 사유는 합리적 사고, 논리적 추론을 요청합니다.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이 사유과 추론을 통해 구성해낸 것이 현대 사회에 활용된 대부분의 가치와 제도들입니다. 흔히 암흑의 시대라 언급되는 중세와 근대 서양 철학에서 정비된 것들입니다.

 

우리가 왜 이런 모습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이 시대의 철학적 논쟁들을 살펴 보는 일이 도움이 됩니다. 배워야 할 것은 철학지식이 아니라 생각하고 모색하는 방법들,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뒷산도 아니도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과 같은 철학자들이 여러 명입니다. 본인이 와서 정확한 해설 강의를 해준다고 해도 단번에 이해하기 불가능한 개념들도 많습니다. 

 

저는 중세 시대 철학을 전혀 모릅니다. 저서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해지면 좋겠단 생각으로 짧은 기록을 남깁니다.

 

1.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고백론>의 내용을 전혀 모릅니다.

라틴어 원문 번역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이 5년 전이군요.

경험과 반성을 철학의 소재로 삼은 성찰의 사상가로 기억하겠습니다.

 

2.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아리스토텔레스, 스콜라 철학, 초월적 신앙과 자연적 이성을 종합한 기독교철학 집대성

 

3. 보편 논쟁controversy of universal

 

'보편'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사유로만 존재하는가.

 

4. 합리론rationalism과 경험론empiricism

 

저는 이 시대의 언어 표현을 많이 자주 사용합니다. 아마 사고 방식도 그렇겠지요. 연도는 인간의 속도와 관련 없는 외부적 사건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갖가지 비동시성들이 동시에 모여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오해도 불통도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도 합의도 가능한 미스터리 투성이의 삶입니다.

 

5. 데카르트René Descartes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이고 물리학자입니다. 출발이 의심할 바 없어야 이후의 추론 역시 오류가 아니라 할 수 있으니, 오류 없는 사고의 출발점을 찾아야했지요. 모든 걸 다 의심해봐도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발견!

 

6.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사과나무와 관련 없습니다. 자유로울 뿐 아니라 ‘압도적인 지성’이라 불릴 인물인데, 신을 모독한 불경죄로 장례도 못 치른 채 도난당한 시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친구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지성의 기록인 저서들도 출간되지 못했겠지요. 살아서 당한 괴로움보다 더 크고 오래 기억될 철학자입니다.

 

7. 존 로크John Locke

 

스피노자와 달리,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역사에 없을 듯도 합니다. 사유의 결과물로 세상이 바뀌는 현실적 변화를 목도했으니까요.

 

8. 칸트Immanuel Kant

 

"Two things fill the mind with ever new and increasing admiration and awe, the more often and steadily we reflect upon them: the starry heavens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

 

: 각자 해석해 보셔도 좋을 듯. 저는 이 묘비명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 삶에도 중요한 것들입니다. 올려다보는 별로 가득한 하늘과 내재한 도덕 법칙. 칸트의 3대 비판서 중 <실천 이성 비판>에 담긴 문장입니다. 하이델베르크는 가장 많이 오래 방문한 독일 도시이고, 칸트의 철학자의 길도 숙고 대신 토종군밤을 까먹으며 때론 글루바인Glühwein을 듬뿍 마신 뒤 걸어다녔습니다.

 

9.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정반합, 변증법적 사유. 절대정신, 미네르바의 부엉이 등 모두 유명한 말들로 기억되는 정치철학자이지요. 칸트도 그렇지만 헤겔도 뭐라 정리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사상 체계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중요한 사유방식들을 제안했습니다. 

 

젊은 체력에도 철학 공부는 무척 힘들었지만 알게 되어 벅찬 기억들도 남았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현실에 활용할 수 없는 소위 쓸모없는 공부를 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함께 공부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지만 그건 바람이고, 시간과 수고의 가성비를 따진다면 일단 독서이지요. 재밌게 웃으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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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전지나 그림 / 시공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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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로 집home과 가정house가 다르다는 구분을 하는 분들이 많지요. 가사노동자로서 여성의 지위를 이야기할 때도 housekeeper에서 homemaker로 바뀌었다는 표현도 있었지요. 제 정서나 경험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만.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말도 참 흔한데, 저는 형식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이란 ‘장소’는 인간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입니다. 토지와 더불어 애초에 기본권으로 보장받아야할 것이었지, 매매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것을 매매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반드시 구매해야만 하지요. 이토록 완벽하게 판매와 이윤이 보장된 상품은 없습니다.

 

의식주가 갖춰진 곳에서 인간다운 활동으로 삶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형식을 갖추는데 가진 것을 다 소진하느라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는 이들이 지천인 처참한 풍경입니다.

 

조부모님들이 사셨던, 부모님이 사셨던, 그리고 저도 살았던 집들은 제가 그립게 기억하는 곳입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부모님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사셨던 곳이라, 청마루에 앉아 뜰을 보면 단단한 흙마당, 나무, 담장, 바위들에게 그 시절을 물어보고 싶어지는 곳입니다.

 

황선미 작가의 집이야기를 만났습니다. 표지를 보다가... 태어나 보니 집도 없고 부모도 없는 아이들을 잠시 생각합니다. 이해인 수녀님 말씀을 떠올리며 그 아이들에게 세상이 좀 더 순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버드내 길 50-7번지 감나무 집. 사는 사람 없이 낡아 가는, 사람들이 갖다 버리는 쓰레기만 쌓여 악취를 풍기는, 동네를 부끄럽게 만드는 곳입니다. ‘모퉁이에 드리워진 더러운 그늘’이 되어 반갑지 않은 사람들, 동물들을 끌어 들인다고 구박을 당합니다.


 

그 집의 사감 할매는 가족들이 떠나자 혼자 물건들을 끌어안고 사셨다고 합니다. 한 때는 동네에서 가장 컸던 집인데, 식구들이 하나둘 떠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혼자가 된 할매가 폐지를 주어 연명하다 죽어간 집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집에 아이들을 버리고 간 일로 인해 구청에서 집청소를 시작합니다. 감나무 집처럼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 떡집 영감은 내부 청소만 할 뿐 집을 부수지 않고, 감나무도 없애지 않아 안도합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버리고, 오래된 것은 참아내지 못하는 세상에 아직 고스란히 남은 곳’이 귀하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편히 살려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집을 고스란히 지키고 산 사감 할매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겠지요. 돌아올 곳이 있어야 돌아 올 수 있을 거라고 믿으셨겠지요. 할머니 돌아가신 후 감나무만 살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 근처에서 서성거리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남자가 집을 고치기 시작합니다. 그 집 밖에는 쪼그만 여자애가 서 있거나 소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여자애는 말이 없지만 소년은 남자를 돕기 시작합니다.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남자 곁에 있는 것이지요. 달리 도망갈 데가 없습니다.


 

다른 애 아버지가 된 자신의 아버지였던 건축기사, 소년은 정태오라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남자를 궁금해 하지만 대답은 없습니다. 집 바깥 놀이터에는 머리에 흉터가 길게 난 낯선 소년이 앉아 있습니다.

 

이제 동네 사람들은 남자가 감나무집의 법적 소유주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떡집 영감은 칠보 보석함을 찾아냅니다. 설날 떡국을 담아 준 자신에게 사감 할매가 냄비와 함께 놓고 간 것입니다. 설 명절이 지나 추위로 돌아가셨으니, 아마 마지막 식사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감나무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집을 고치던 남자는 할매 아들 명길입니다. 떡집 영감에게 어머니의 칠보 보석함을 받고 차마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에 주저앉고 맙니다. 그 보석함을 텅텅 비게 만든 게 자신이기 때문일까요.

 

이 집에 버림받았지만 이 집에서 엄마를 기다려야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 사람아. 집 놔두고 어딜 가려고.”

 

주소가 있다는 것, 집이 있다는 것, 떠날 집이 있었다는 것,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마음이 바뀌고 사정이 달라지고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저도 떡집 영감처럼 남아 있는 집이 고마워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돌아와서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어머니가 사시던 집이 있다는 것은 다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이고, 무슨 일을 겪었든 이제야 명길이 몸과 마음을 편히 뉘일 유일한 장소를 만난 것이 아닐까 짐작 합니다.

 

모두 떠나셔서 비어 버린 집, 제 조 부모님 댁에도 감나무가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도 있습니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벌떡 일어나 찾아가 보고 싶었습니다. 감나무 집처럼 감이 붉게 익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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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 인문학 편 - 고전·철학·예술 ㅣ 차이나는 클라스 7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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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프로그램은 시청한 적이 없지만, 이 책 시리즈를 무척 좋아합니다. 매번 마음이 편안해지는 즐거운 독서 경험입니다. 저자들의 육성이 들리는 방송은 더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책이 더 익숙한 매체인 저는 저만의 속도로 만나는 책이 좋습니다.

 

전공자가 대중서를 읽어도 늘 모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학자들이 자기 분야에 대해 쓴 글을 비전공독자가 읽으면 아무리 기획이 쉬운 전달이었다 하더라도 신기하고 재밌는 지식정보가 가득하지요. 그 분량이 버겁다는 생각이 안 드는 점이 제게 잘 맞나 봅니다.

 

새롭게 등장한 어휘들에 길을 잃은 세대Lost Generation, 탈성장degrowth가 있다고 합니다. 혼란스럽고 얼핏 불안한 단어들이지만, 저는 이 단어들이 미래를 어둡게 하는 전망이라기보다는 기성 세대들의 과오를 철저하게 분석, 비판, 반성하고 희망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통찰로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이제껏 걷던 길이 잘못되면 그 길을 빠져 나와야하지요. ‘길을 잃는’ 것이 의도적으로도 필요합니다. 더구나 ‘성장’ 주의야말로 당장 중단해야할 경제이데올로기입니다. 지구자원의 유한성이 놀란 자본주의가 우주자원을 획득하려 노력 중인 걸 생각하면 기가 막히기도 합니다만.

 

혼란이 필요한 시절입니다. 그 혼란의 도가니에서 무엇이 녹여져 나오는 지가 중요하겠지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니 최대한 신중한 선택이기만 바랍니다.

 

지구시간으로는 얼만 안 되었지만 인류에게는 전부인 역사, 그 중 고전, 철학, 예술에 관한 멋진 이야기들을 즐겁게 읽고 일부 소개합니다.

 

1.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연결해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아마 피해가시기 어려울 겁니다. 어딜 가든 학문의 원류에 그가 서 있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그러니 매번 놀라시지 말고 알아 두시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흔히 자연과학 관련 업적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그건 당시 학문을 science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당시 개념의 science는 현대 사회에 세상을 보는 방식, 사유 방법이 되었지요.

 

이런 사상가를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도록 가스라이팅하기 위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왜곡 번역을 하고(일본), 그걸 그대로 갖다 쓴 한국의 예전 학계와 출판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정치적인poltical 동물이다”가 올바른 번역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국가police의 사적, 공적 영역의 모든 삶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politics이니까요. 내가 사는 방식을 남들 뜻대로 두지 않으려면 참여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기회가 있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어 보시면 좋겠지요. 혼자는 힘든 일이긴 합니다. 저도 일부만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친구와 진리 둘 다 소중하지만, 진리를 더 존중하는 것이 경건한 일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6장

 

!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구 안 한 분야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지도 모르지만, 그가 500여 조의 동물들에 대해 탐구 기록해서 전체 9권으로 구성된 책 <동물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습니다. 책상에 앉아 자료 수집을 한 것도 아니고 레스보스섬에 머물면서 어부들에게 묻고 직접 관찰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의 이름을 딴 물고기도 있습니다. “가장 많은 알을 낳은 곳에서 수컷이 알을 지키고 암컷은 자리를 떠난다.”<동물지> 6권 14장. 메기인데, 1857년 스위스 학자 장 루이 아가시가 이 메기기 실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리스토텔레스 메기’로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개별 생물들을 직접 관찰한 생물학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도 무척 의미가 있습니다. 지성, 즉 정신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할 수 있지만 하위에 있는 동물들이 모두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는 독자적인 목적이 있다고 봤습니다. 다른 동물들을 일단 식재료로 보고, 동종 인간들로부터 이익을 취하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세계관은 언제 발생한 것일까요.

 

“우리는 덜 가치 있는 동물들을 연구하는 데 대한 유아적인 혐오증을 떨쳐버려야 한다. 자연적인 것들 안에는 무언가 놀라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부분론> 1권 5장

 

“내게 린네와 퀴비에는 두 분의 신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하면 어린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찰스 다윈



  

2. 인공지능

 

신화와 고전을 재미있어 하는 저는 곧(?) 읽으려고 하는 책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 반갑고 상상 못한 이야기에 정말 엄청 놀랐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인간이 AI에 해당하는 개념을 언제 처음 떠올렸는지?

 

“무려 기원전 8세기에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라는 최초의 서사시가 나온 시지요. 그 책에 보면 헤파이토스라는 대장장이 신이 등장하는데 그는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었어요.”

 

“이들은 살아 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가슴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으며 불사신들에게 수공예도 배워서 알고 있었다.” <일리아스>

 

기원전 8세기의 상상력이라니, 알고 읽어도 여전히 놀랍습니다. 현대의 AI는 마치 아이가 부모를 보고 배우듯 인간을 통해 인간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좋은 점을 골라 배우지 못해서 문제가 많아졌지요. 거울을 보듯 인간 자신을 비추는 모습에 난감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3. 신화

 

지리와 미술에 관해서도 아주 흥미롭고 우리 모두가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들이 아주 많지만 언급은 생략하고 신화 파트로 넘어갑니다. ‘신화는 인문학의 근간’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얼마 전에 읽은 책이 언급되어 뿌듯합니다. 소위 막장 드라마 저리가라는 엄청난 서사들이 가득한 이야기를 통해 인물과 권력과 신화에 대해 한 차례 배웠다는 생각이 드는 독서였습니다. 연구 번역이 잘 되어서 언젠가 읽어 보시길 추천 드리고도 싶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신성에 대한 믿음에 현혹되거나 우쭐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들을 복속시키는 데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도시국가 전체의 자산을 총동원해야 가능한 원전 전쟁이니 남다른 강력한 설득력이 필요했겠지요. 인간의 힘으로는 아마 불가능했을 일이라,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신의 아들이 되고, 그를 돕는 것은 신의 명령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되어야 가능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고 자신의 영민함도 대단했지요. 신화를 활용해 자신의 권력을 창출하고 확장시키고 공고히 한 대표적이 사례입니다. 저는 로마 제국에 대한 깊은 원망이 있는데, 그 이유가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을 불태운 일입니다. 엄청난 분량의 책과 자료들이…… 아깝고 궁금합니다. 멍청이 로마군들!

 

그러면 고대인들은 왜 신화를 열렬히 믿었을까요? 단지 권력자의 의지가 반영된 거짓 근거에 세뇌당해서? 아니면 자신의 욕망 역시 투영되어서? 혹은...

 

“신화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 정치인들이 공약이나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죠. (...) 그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시나리오를 우리가 믿고 따르게 되면 그거도 일종의 신화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신화에서 신들의 권력 계승 방법을 보면 자식들이 아버지를 몰아내는 역사가 반복됩니다. - 파트로크토니아patroktonia, 친부 살해의 전통 - 그리스 신화에서는 역사의 본질을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사이의 갈등이라고 규정한 거예요.”



 

4. 괴테

 

글이 너무 길어져서 아쉽지만 파우스트의 말로 마무리합니다. 편안한데도 지적으로 즐거운 책입니다.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유감스럽게 신학마저도 속속들이 공부했다. 죽을힘을 다해서. 그런데도 난 여전히 가련한 바보.” <파우스트>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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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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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미 린 작가의 작품은 두 번째입니다.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읽거나 감상할 수 없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느꼈거든요. 낯설어서 어려울 것 같아, 어리고 연약해서 보기에 눈이 시릴 것 같아, 피하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해 하며 계속 읽네요. 시작부터 화들짝 놀라면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욕조에서 금붕어 잡는 내용입니다. 뭐 이런 아찔한... 세 장을 채 못 읽고 잠시 쉬었습니다. 몰랐던 갈증을 채우는 아... 맘에 드는 소설... 기쁩니다. 안 읽은 분들 꼭 스포일러를 피하시길.

 

한편으로는 섬세한 정서와 문학적 감수성으로 읽어 달라고 하는 문장들이 빼곡한데, 일본 문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 글자만 읽고 지나가려니 울적합니다.

 

“매번 그렇듯이 엄마는 어제의 난동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방의 끔찍한 상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 툭하면 술 마시고 날뛰니까 집 안 꼴이 처참했어요. (...) 엄마는 내일 수술을 받을 예정입니다.”

 

감각적 표현들이 감각적으로 읽혀서 자꾸 놀라며 읽습니다. 찢어진 발이 내린 눈에 닿을 때는 머리가 쭈뼛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타인이라 여기는 타인’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우짱은 그래서 타인과 거리 두는 법을 모르고 상대를 몸 안에 넣고*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극단적인 공감을 합니다.

 

* 일본어 어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일이라, 저는 그냥 설명을 따라 읽고 맙니다. 자신이 원하는 표현에 맞는 언어조차 섬세하게 쪼개고 붙여 활용하는 감각적인 작가란 짐작만 해봅니다.

 

무심함을 가장한 잔인하고 무례한 가족은 빠지는 법이 없는 캐릭터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많겠지, 하고 잠시 우울해집니다. 자식에게 너는 덤으로 낳았다고 하는 엄마의 어머니. 그런 자신의 엄마에게 상처받고 그래도 사랑받고 싶은 엄마. 엄마의 몸에 상처와 흉터를 남기는 아빠.

 

“우짱은 중학생 무렵부터 인터넷에 불평을 늘어놓는 빈도가 차츰차츰 늘어났습니다. (...) 엄마가 발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아빠가 바람피운 사실에 집착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 때문인지 (...) 아무튼 엄마는 뿌리 깊은 무언가에 괴로워하며 망가지고 있었죠.”

 

월요일이라 힘에 겨워 얇은 티저북, 가제본만 집어 들어 읽는데 분량은 문제가 아니었네요. 린 작가의 서사에 찬기가 없는 실내에서 자꾸만 소름이 오소소 돋습니다.

 

“발광은 한자로 ‘發狂’이라고 쓰는데, 그건 갑작스러운 게 아니에요. (...) 낮잠을 자다가 어스레한 해 질 무렵에 깼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불안과 공포가 망가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숨어 들어오는, 그런 것이 발광입니다.”

 

이상하지요. 발작(發作)이란 단어는 꽤나 썼는데 발광(發狂)은 저는 써 본 적이 없어 낯설고... ‘망가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숨어 들어온다’는 불안과 공포가 너무나 무섭습니다.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를 스스로 몇 번이고 덧그려서 더욱 깊게 상처를 내고 말아, 혼자서는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도랑을 만드는 일이, 그리고 그 도랑에 레코드 바늘을 올려 단 하나의 음악을, 자기를 괴롭히는 음악을 이끌어내 반복해 들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 우는 일이.”

 

내 몸처럼 엄마를 느끼는 우짱은 ‘경계가 모호해서 언제나 피부까지 공유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발광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자해 행위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엄마도 우짱처럼 자신과 타인의 육체를 동일시하는 동류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웃는 척하던 아빠의 뺨이 굳더니 순식간에 산사태가 난 것처럼 무너졌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재빠르게 앞으로 쏠리자, 우짱은 반사적으로 뺨 앞을 오른팔로 가리려고 했습니다. (...) 옆에서 보면 결국 둘 다 어깨를 움직인 정도로 비슷한 동작을 취했을 뿐이지만 (...) 그건 때리려는 인간과 맞지 않으려는 인간의 움직임입니다.”

 

반복해서 마주해도 쉬워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결혼과 출산에 관한 일종의 자격시험,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하는 걸까요. 체력도 능력도 무기도 딱히 없는 생물종인 인간이 왜 이다지도 폭력적일까요.

 

“내가 여자인 것, 아이를 배고 낳는 것이 당연시되는 이 정체 모를 성별을 가장 못 참겠어. 남자 때문에 일희일비하거나 울부짖는 그런 여자는 되기 싫어,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되기 싫어. 여자로 태어난 이 울분을, 슬픔을 니는 몰라.”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상처 내는 나잇값도 못하는, 약을 대량으로 먹고 토하는, 식칼을 벽에 찌르는, 알레르기가 있는데 땅콩을 먹으려 하는... 이런 엄마를 보는 자식에게 원망이 가득 차는 일을 어떻게 막을까 싶습니다. 괴로운데 참고 참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1999년 생 작가가 2019년 이전부터 썼음이 분명한 이 작품에서,어린 시절 보고 말았던 부끄러운 어른들의 모습들을 끄지 못하는 화면처럼 읽습니다. 특히 한 때 자식의 신이었던 부모가 정리된 내용이 한숨이 나오게 허망하고 쓸쓸합니다. ‘잔소리를 퍼붓고 때리고 미치고 그러다가 곧 늙어 쓸쓸함을 남기고 가버리는.’

 

우짱에게 신이었던 엄마, 그 엄마가 집착하는 엄마인 할머니,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거듭 실패하고 자식마저 증오하게 된 존재. 그래도 우짱은 엄마만을 사랑했습니다. 오래 전 아빠의 폭력에 함께 맛 본 흙과 피 맛을 떠올리며 우짱은 기원하고 싶은 단 하나의 바람이 생깁니다.

 

타인을 그토록 사랑해서 절규가 된 바람은, 금붕어를 만난 장면의 강렬함이 수만 배로 분화하듯 사방으로 퍼집니다. 잠시 머릿속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사미 린 작가가 나이 드는 게 무섭습니다. 그가 가진 예리한 빛들이 뭉개질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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