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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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건너 친구 집으로 놀러가던 6살 제니가 실종되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경악하고 함께 노력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이웃들의 관심이 옅어져도 실종 아동의 부모들은 살던 곳에서 이사를 가지 않는다. 6살 제니의 얼굴이 찍힌 전단은 여전히 붙어 있지만, 더러는 잊고 새로 이사 온 이들은 아이의 존재를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존재를 거의 지웠을 무렵 ‘나’는 결국 집에 돌아왔다. 실종 아동을 찾고 범인을 잡고 그 과정에서 여러 비밀이 드러나는 짐작 가능한 설정이 아니라 티저북이지만 잠시 놀랐다. 돌아왔다고? 발견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시점은 ‘나’로 옮겨 간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어도 6살 때까지만 살았던 동네가 익숙하고 행동이 자연스러울 리가 만무하다. 이름을 밝히고 경찰을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라 다행이다.

 

1. 열 한 번째 모퉁이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깊이 뻗어 있다. 그리고 딱 거미줄처럼 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2. 그럴 의도가 아닌데도 가끄ㅁ가다 이런 일이 생겼다. (...) 생각만 했을 뿐인데, 또 혼자서 시부렁거리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입 좀 닫아라. “다시는 아무 말 하지 않을게요, 맹세해요…… 제발…….”

 

3. “왜 이제야 도망쳐 나왔을까요?” (...) “그 사람들은 제니가 여섯 살 때부터 부모 노릇을 했어요. 괴물 같은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제니에게는 그 괴물이 세상의 전부였죠.”

 

4. “VIDI. 라틴어로 나는 보았다라는 뜻이다.” (...) “뭘 봤어? 이것저것. 그게 뭔데? 네가 알고 싶지 않은 것들.”

 

5. “우리가 삼촌이라 부를 때까지 브렌트 삼촌이 간지럼을 태웠다는 장난 있지? 내가 지어낸 얘기야.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 그런데도 네가 기억한다니 참 이상하다?”

 

6. “네가 유괴당한 날 말이야. 뭐 기억나는 거 없어?” 잠깐만, 나는 생각했다. 잠깐만…….

 

7. 그만하세요…… 말 잘 들을게요……. 이러지 마세요, 누구세요……? 제발요, 누구세요……? 아버지…….

 

8. 그는 물에 빠진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 그러면 가족은 다시 세 명이 된다. 구성원은 달라지지만, 벤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동생 제니가 채우게 된다. (...) 동생 제니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 소식을 듣는 순간의 죽을 것 같던 느낌이, 그를 끌어안으려는 아빠가 너무 이상해서였다.

 

9. 벤은 자기 방으로 가는 길에, 부모님이 그 애에게 내어 준 방의 닫힌 문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이 방으로 갑자기 들이닥치곤 했던 여덟 살 때를 떠올렸다. 아니, 이 방에서 달아났었나?

 

10. “제발…….”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해.” 내가 돌아보지 않으면 그 여자는 여기 없는 거다. (...)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저 여자는 돌아갈 거야.

 

11. “결국 받았네.” 수화기를 들자 그 여자가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폐가 갈비뼈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잊지 마” (...) “난 네가 진짜 누구인지 안다는 걸.”

 

티저북은 끝나고 나는 홀로 온갖 상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헷갈리고 짐작을 벗어나고 반전이 거셀 듯……. 기대하는 장치들이지만, 그건 내 손에 결말이 있을 때 편안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분노를 크게 자아내는, 공감과 슬픔이 큰 소재가 아이의 실종 납치 범죄이다. 근절된 적이 없는 만큼 낯설지도 않지만, 매번 사람들은 새롭게 분노하고 안타까워한다.

 

범인 찾기도 궁금하지만, 일단 자신이 제니라고 밝힌 ‘나’가 혼란에 빠진 제니인지, 제니가 아닌지, 아니라면 기억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제니와 같은 피해자인지, 혹은 가해자 가족인지…… 어느 하나에 그럴 듯한 근거가 있어 특별히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멀쩡해 보이는 제니의 친부모는 보이는 그대로인지 숨기고 있는 다른 비밀들이 있는지, 삼촌의 존재와 역할은 무엇인지,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오빠 벤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날 혹은 더 오랜 시간의 폭력의 형태는 무엇인지 궁금해서 갑갑하다. 잠시 현실을 떠날 정도의 뒤집기 반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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